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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09. 2024

감자샐러드샌드위치를 만들다가

화가 나는 이유, 아세요?

얼마전에 김밥 만드느라 부산한 아침을 보낸 글을 썼다. 언제나 그랬듯, 요리라고 칭할만한 어떤 음식을 하나 만들고 나면 나는 지치고 에너지가 다 소진되고만다. 요리란 아무리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취미지만 삶에 있어서 먹는것만큼 중요한게 없으니 살림하는 주부로써 의무의 영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부엌에서 밥을 차려내는 일은 안 하면 안되는 짓이다. 어느 주부가 밥하기 싫어서 우울증이 와서 정신과 상담을 갔었다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처음엔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중엔 나에게도 언젠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에 짐짓 엄숙해졌다.


이번 종목은 바로 감자샐러드샌드위치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철 식재료가 바로 감자다. 나는 감자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게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고공물가 시기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감자 가격을 확인하고 나면 꼭 집어들게 된다. 반 상자 정도 되는 사이즈에 꽤 큰 감자 박스를 집에 들여놓고 나면 그 때부터 무얼 해먹을까, 어떻게 해치울까 고민이 시작된다.


감자가 들어간 된장국도 좋아하고, 감자볶음도 자주 해먹지만 항상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메뉴는 감자샐러드다. 부드러운 감자샐러드가 아낌없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가끔 파리바게트나 시중에서 파는 감자샌드위치도 사먹어보면 맛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 속재료의 부실함은 피할 수 없다. 집에서 만들면 훨씬 더 두껍게 해서 먹을 수 있는데,하는 지극히 주부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감자를 산 다음날 아침, 바로 감자샐러드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나는 능숙한 요리사 주부가 아니기에 시간이 오래걸린다. 감자를 물에 넣어 20분을 삶았고 중간에 계란도 넣어서 함께 삶았다. 그 사이에 아이가 기상해버렸다. 보통 이 때쯤이면 아이 아침밥을 차려놓고 대령해두어야하는데 오늘 따라 감자가 늦게 익는 바람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배꼽시계가 울리는지 아이는 아직 밥이 안 차려졌냐는 표정을 비친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콕콕 쑤셔보지만 아직은 확실히 덜 익었다. 덜 익은 감자로 만드는 샐러드는 최악이다. 확실히, 푹 익은 감장여야만 보드랍게 마요네즈와 어우러져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데. 계란은 대충 다 익은 것 같은데 감자 익는 속도가 따라주질 않아서 답답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씻기 전에 먼저 감자를 삶기 시작할껄 후회된다. 아니면 전처럼 감자를 깎고 이등분이라도 해서 삶았다면 훨씬 덜 걸렸을텐데 오늘 따라 왜 통감자를 그대로 삶았을까.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샐러드에 들어갈 당근채도 준비하고 고소함을 더해줄 옥수수알도 버터에 볶는다.


마음이 급해져서 삶는 중간에 먼저 익은 작은 크기의 감자부터 꺼내본다.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사정없이 수저로 짓눌러준다. 여섯개의 감자를 몽땅 집어 넣고 계란도 넣고 마요네즈, 설탕, 후추 뿌려서 비벼주니 그제양 감자샐러드 모양새를 갖춘다. 약간 아쉬운것은 감자 한 두개가 약간 설익은 것 같다. 그 부분은 그냥 내가 먹고 말지.


이제 식빵을 꺼내고 딸기잼과 허니머스타드 소스를 양쪽 빵에 발라준다. 남편이 먹을 것에는 햄과 치즈도 추가해서 넣어준다. 만들다보니 역시나 부엌은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좁지 않은 공간인데도 내가 요리 좀 할라치면 금세 선반이 좁아져서 제대로 요리하기도 부족할 정도다. 만들면서도 이걸 언제 다 치우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편은 빵은 싫어하지만 샌드위치는 좋아하는 양반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콘, 소금빵이나 깜빠뉴 같은 빵은 아주 식겁하면서 거부한다. 그런 종류의 빵을 먹는것 자체를 죄악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대신 소세지가 들어간 정통식 피자빵이나 고로케, 혹은 본인 취향의 속재료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맛있게 먹는 것 같다. 감자 샐러드샌드위치를 만들어 대령할 때마다 주면 주는대로, 곧잘 맛있게 먹는 눈치였다. 그것도 한 입 아주 크게 베어 먹어서 만든 사람이 허무하다 느껴질정도로 두세입에 금세 다 먹어치운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잘 먹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일단 잘 먹어주니 흐뭇하기는 하다. 보람도 되고. 그런데 갑자기 화가 나고 괘씸한 기분도 든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거 만드느라 한시간 이상 소요 된건 모르지? 이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 만들고 나서 뒷정리하고 설거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냥 오천원 주고 사먹으면 끝날걸 왜 애써 만들었느냐는 말이 지금 그 입에서 나와? 밖에서 사먹는거랑 내가 집에서 만든거랑 정성과 영양 차이에서 비교가 돼? 밖에서 사먹는 샌드위치가 더 맛은 좋을지몰라도 내가 만든것만큼 풍성하겠냐고? 참 허무하게도 쉽게 빨리도 먹어치운다..쩝.


이상하게 애가 잘 먹어주면 그저 고맙고 사랑스러운 마음만 들 뿐인데 남편한테는 왜 이중적인 감정이 드는걸까. 잘 먹어주니 일단 고맙기는 한데.


이번에 감자샐러드를 만들때는 오이가 빠져서 상큼함이 좀 줄어든 것 같다. 다음번에는 오이도 꼭 추가해서 만들어야겠다. 화려한 제철 요리를 해다 내놓는 실력은 못되지만, 그래도 제철감자만큼은 매년 챙겨 먹는 편이다. 남은 감자로는 또 어떤 요리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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