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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11. 2024

모두가 나의 복직을 기다린다, 남편 빼고

그러나,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하는 이유



"OO 엄마, 언제 복직해? 이제 휴직 기간 다 끝나지 않았어?"


동네 엄마들을 만날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이다. 우선, 나는 어떤 동네 모임에도 속해 있지 않은 포지션이라 자주 만나는 엄마들도 없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학부모회에도 가입하고 참여해보려했으나 그들만의 친목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모임에 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타고난 내 성격 탓도 있겠으나, 아이들끼리 우선 친하고 자주 어울린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동네 엄마들 관계가 형성되는 분위기인데 아이는 아직 그럴만큼 친한 친구 무리들이 없어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덕분에 나도 동네 카페 곳곳에 존재하는 그 수 많은 엄마 모임에 정규 멤버로 속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다.


그래도 가끔 이런 나를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치원, 어린이집을 계속 같이 다녀서 비록 그 아이들과 내 아이는 관계 형성에 실패했지만, 엄마들끼리 친분이 생겨서 한 번씩 만나곤 한다.


엄마들을 만나면 요새 같은 학년 아이들 분위기도 들을 수 있고, 동네 학원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한 두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답답한 내 생활에 일말의 활력소 같은 것도 느껴진다.

그러나 대화 끝에 꼭 잊지 않고 나오는 한 마디가 있다. 나의 복직에 대한 여부다.


왜 이 분들은 그런게 궁금할까? 솔직히 내가 더 궁금하다. 왜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하는지 마는지가 그렇게 궁금한건지 내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복직한다고 해서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큰 변화가 있는것도 아니고, 전에 근무를 할 적에도 놀이터에서 자주 얼굴을 봤기 때문에 뭐가 달라질 것도 없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궁금한 것 같다. 남의 집 사정이.

아니면 내가 일을 아예 그만두기라도 할까봐 그런걸까? 걱정이 되어서?



처음 휴직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날아갈듯이 홀가분했다. 아무런 속박없이 오로지 아이에게만 올인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주어졌음에 날마다 감사했다. 나의 하루 일과가 오로지 아이의 스케쥴에만 맞춰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마저 느꼈다.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발달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라는 나의 존재는 절대 없어서는 안될 커다란 자리였다.


코로나를 두 번에 독감까지 걸려서 학교를 못 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내가 출근을 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지도 상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지곤 했다. 이래서 많은 엄마들이 유치원때까지는 어찌해서 일을 하다가 초등 입학한 이후로 포기하는가 싶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엄마가 일을 하는 아이들은 다들 가까이 조부모님이 살아서 보살펴주는 것 같았다. 가까이 살면서 도와줄 친정, 시댁도 없고 일에 매여있어야하는 남편 덕에 오롯이 아이 케어는 내 몫이었다.



그렇지만 휴직이 2년차에 접어들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첫 해에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소위 미라클모닝이란 것을 하면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N잡러가 되어야한다는 자기계발 분위기에 편승해서 뭐라도 열심히 하면 정말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이룰 수 없는 목표들을 쓰면서 읊고, 감사일기를 쓰고, 매일 반성일기를 썼다. 뭐 크게 달라지는건 없었다.


이제는 모닝루틴도 다 집어치웠다. 아침에 그렇게 에너지를 한바탕 소진하고 나면 나머지 하루의 시간이 버거워졌다. 특히 오후에는 몸이 말도 못하게 무거워져서 낮잠을 꼭 자야만했다. 40대 타이틀을 달면서 체력도 바닥 나는 기분이 들었고, 통장 잔고도 같이 바닥을 쳤다. 살림이 빡빡한 편은 아니었고, 남편이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었으나 남편 카드로 생활비를 부담없이 쓰는 것과 내 통장잔고 사정은 철저히 다른 영역이었다.



슬슬 일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의 사정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학교 부적응으로 불안감이 신체화되어 자주 배가 아파서 급하게 조퇴할 일도 생겼다. 내가 대기조처럼 집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점점 아이 곁에 내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가고 있었다. 나는 항상 아이를 위해서, 아이 곁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남편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더러 아예 사표를 내고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한창 교권 추락으로 인해 교사 자살 이슈가 한창이었다. 몇 명의 교사가 과중한 업무와 극에 달한 민원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학교에 돌아갈 수 있을지 적응이나 할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남편은 어차피 요새 학교에서 일하는것 너무 힘들고 네가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며 그냥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본인 내조나 하면서 집에 있는게 모두를 위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했다. 매일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나도 그 논리에 넘어가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박봉의 월급 받자고 가족 모두를 희생시켜가며 꼭 일을 다시 해야만 하는 필요가 있을까? 아이도 아직 손이 이렇게 많이 가는데..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주변 가족을 다 통틀어 남편 밖에 없었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동네 엄마들도 모두 내가 일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했다. 가장 안타깝게 말한 사람은 아이 양육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 시댁 형님이었다. 40대 중반이 되니 아무리 전공자이고 젊을적 경력이 적지 않아도 다시 일자리를 잡기가 참 어렵다고 했다. 시부모님도, 친정엄마도 은근히 내가 복직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남편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오후가 되면 요동치는 감정과 식욕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두고, 도저히 일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년이 이년이 되고 이년은 삼년으로 넘어가고, 쓸 수 있는 휴직 기간을 다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연장했다. 나도 잘나가는 인플루언서처럼 SNS를 열심히 키워서 일인 기업가나 되볼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다. 그러기엔 나는 꾸준함이라는 성실성 외에 별로 갖춘게 없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세상에 나와 아이를 가감없이 노출하는것도 두려웠다. 어설프게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내 삶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걸까? 아이 치료에 매진하고, 남편 챙겨주면서 사는게 나에게 주어진 업일까?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주어진 업무를 해내야할 의무도 없으니 편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몸은 분명히 일할 때보다는 편하다. 하지만 마음이 문제다. 자꾸만 내가 이렇게 헌신한다고 해서 애가 더 좋아지리라는 보장은 있는건지, 내가 없으면 이 집이 정녕 굴러가지 않게 되는건지 자문하게 되었다.



내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는데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요즘 의원면직하는 교사도 공무원도 많은데.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일 자체가 너무 힘들고 못 견딜것 같아서 스스로 그만두고 싶다는 결정을 내린게 아니다. 물론 일은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휴직전까지는 그런대로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일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면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소한 내가 겪어본 이후에 내려야할 결정이고 선택이다.


친정엄마의 기대에 부흥해서 일도 멋지게 해내고, 남편 내조도 하고, 아이도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키워야하는데 지금 내 기준으로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같다. 대체 그걸 다 해내는 여자들이 있기나 한걸까.



남편은 내가 복직 이야기만 꺼내고 소스라치듯 놀라면서 화를 내고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애아빠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있어도 적응할까말까인데, 이렇게 두손 두발 들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는 어떻게 혼자서 해나갈 수 있을지, 겁이 난다.



남편, 자식 없던 결혼 전 시기에는 일을 하는게 당연했고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하며 의미가 큰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겠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를. 결혼한 여자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물심양면의 도움 없이는 도대체 가능하지가 않다는 것을. 오늘도 고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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