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 엄마에게 필요한 의외의 역량
여전히 아이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고, 쉬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 아이에게 학교란 견뎌내야만 하는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보내야만 한다. 아주 가끔 체험학습을 내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외에는 딱히 해줄말도 없고, 초등학교를 때려치게 하는건 더더욱 불가능한 옵션이다.
"쉬는 시간이 너무 힘든데, 외로운데 어떻게 해야해요?"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래도 학교는 가야한다는 내 말에 힘도 없고 설득력도 없고, 나 자신조차도 내가 내뱉은 말에 자신이 없다.
이 아이를 대체 어찌해야할까.
왜 나에게 이런 끝없는 시련이 주어지는걸까.
등교거부는 청소년기에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들 하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되려 마음이 편해지는 반작용 효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도 더 힘든 사람이 정말 많다.
일부러 내가 그렇게 설정을 해두었는지 몰라도 블로그 이웃이나 브런치 글들을 접하다보면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아니 견디어내며 사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다행히 인스타그램에서 나보다 훨씬 행복해보이는 온갖 인플루언서나 좀 있어보이는 사람들 팔로우를 모두 다 끊어버린 덕에, 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만 이웃을 맺고 있기에 박탈감이 덜하다. 그 어려움의 정도가 더 깊은 것 같은 사람들을 자주 본다.
어려서부터 치료에 매진했지만 사춘기가 되고 특수학교 등교마저도 거부하고 불안장애가 시도 때도 없는 폭력으로 발현되어서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에만 매달려 사는 분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래도 내 아이는 저 정도는 아니라는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기적인 위로를 받곤한다.
가정 파탄의 위기를 겪고 배우자와 헤어져서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발달장애의 그 정도가 너무 중증이라 이미 어떤 종류의 치료로도 극복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부모들을 본다.
괴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쩌면 그에 비하면 내가 가진 힘듦은, 고통은 덜할지도 모른다. 고통 자체를 비교한다는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인간은 끝없이 비교하는 천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나도 모르게 그짓거리를 하게 된다.
경계성 발달장애에, 등교거부로 인한 어려움은 누군가의 것과 비교하면 경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나는 적응이 안된다.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고, 도대체 어찌할바를 몰라서 아이를 부둥켜 안고 울고 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오늘이 주말이면 내일 아이가 등교해야할 걱정, 학교에 가서 또 얼마나 외롭게 보낼까하는 걱정은 하지 말기로 하자.
그저 오늘 하루를, 우리에게 주어진 학교에 공식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이 휴일의 달콤함을 그저 만끽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런 노력 이외에는 도대체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내 머리로는 떠오르지가 않는다.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학교에서의 시간은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된 환경에서 해내야하는 것이다. 아직 그 힘이 부족하고, 또래와의 원활한 상호작용이 지상최대의 과제가 되버린 아이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냥 오늘 하루만 살자.
앞뒤 생각 말자.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먼 미래에 대한 생각도, 과거에 내 잘못과 후회에 대한 자책감만 떠올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의 소중한 시간만 갉아먹는다는걸 알아야한다.
지금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할 것.
현재를 즐길 것.
오늘 하루 아이랑 최대한 웃으면서 지낼 것.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
아이랑 눈 한 번 더 마주치면서 장난치고 시도 때도 없이 온 몸으로 안아줄 것.
그 외에는 뭘 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로 나는 모르겠다.
지금을 살자.
오늘을 살자.
나머지는 모두 쓸모없는 걱정일뿐. 다 떠나보내고, 아무 미련도 갖지 말고, 떠올리지도 말자. 그게 유일하게 내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