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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25. 2024

정말 격하게 밥 하기 싫은 날

나는 남편의 식욕을 채워주는 존재인가

더운 여름인데도 부엌을 떠나지를 못하는 이유는,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내 입만 생각한다면 빵 한 쪼가리로도 배를 채워도 하등 상관이 없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는 빵한쪽만 내놓을 수가 없다.


가정이라는 집단은 꽤 든든하기도 하고 안전, 소속감에 대한 욕구도 채워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품이 든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맡게 되면 주어지는 커다란 임무 중 하나는 가족들의 삼시 세 끼를 챙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평일과 같은 주중에는 점심 한 끼는 학교나 직장에서 해결하기에 그 짐을 좀 덜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엄청난 금수저로 타고난 팔자가 아닌 이상 여자는 가족을 위해서, 밥을 해야만 한다.


주부 생활 10년 차에 접어들었어도 누구 손님 대접할만한 근사한 요리 하나도 해내지 못하는 부끄러운 요리 실력의 소지자임에도 불구, 부엌일은 늘 힘들고 버겁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식을 위한 삼시 세 끼를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짓눌렀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부터는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건강식단을 해주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면서 음식에 대한 더 큰 부담감에 휩싸였다.


글루텐 프니니, 유기농 자연식단이니 정말 다방면으로 발달이 느린 자녀를 위해서 노력하는 부모가 많았다. 하지만 시골에 살지 않는 이상, 온갖 과자와 음료수가 달달한 간식들이 집 앞 편의점만 가도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이의 식단을 철저히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몸소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식단을 유지하는 엄마들도 있는데 존경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건강식단 고민은 둘째치고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그 똑같은 고민이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날이 더워져서 부엌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날에는 더더욱 힘이 빠진다. 더위를 타는 체질도 아닌 데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쓰지도 않고 인덕션이라는 최첨단 기구를 갖춘 상황에서도 더운 여름에 식구들을 위해 밥을 준비한다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번아웃에 가장 취약한 직업 중에 하나가 전업주부라고 했다. 직업은 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직이 이어지면서 전업주부 생활을 통틀어 6년째 하고 있기에 전업주부 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는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한다.


번아웃이 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보상이란 물질적인걸 의미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누군가는 마약이라며 노예 생활의 증거라며 쉽게 비하하는 그 월급이라는 이름의 보상조차 주어지지 않는 전업주부는 아무리 잘해도 딱히 눈에 띄는 결과라는 게 없다.


지금 당장 신경 써서 유기농 야채에 몸에 좋은 건강 식단을 보기 좋게 차려서 삼시 세끼 챙겨 먹인 들 흐뭇하기는 하겠지만 당장 가족들 건강 상태가 눈에 보이듯 어떤 뚜렷한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건강에 좋은 음식을 해 먹였다는 위안, 그것이다.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하고, 요리를 열심히 해도 집안일이란 본래 눈에 보이는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저 집이 그전처럼 항상 그랬든 깔끔하게 유지될 뿐이다. 성향 차이일수도 있겠으나 척척 해내는 집안일로 삶의 만족을 얻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대다수인 듯하다.



그래서 더 자녀교육에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더 잘 키워보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고 죽을 둥 살 둥 엄마표영어를 시키고 부지런히 선행을 시키고 하다 보면 아이의 단원평가 점수로, 시험 점수로 나의 노력이 증명되듯 결과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애가 잘 따라와 주기라도 하면 각종 대회 상장이나 영재원 합격이라는 그럴듯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라 나 집에서 논 것만은 아니라고, 이렇게 열심히 아이 교육 시켰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밥 하기 싫은데도 오늘은 또 뭘로 한 끼를 때우나, 날도 더워서 남편도 입맛이 없을 텐데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 내가 지겹다. 지겹다고 한탄하면서도 꾸역꾸역 오늘도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어설프게 만들어내고 설거지를 한다.


내가 나서서 부엌일을 하지 않으면 한 끼 배달음식으로, 외식으로 얼마든지 때울 수 있지만 배달음식은 플라스틱 나부랭이들 처리하고 치우고 분리수거하는 게 또 일이다. 어차피 주말에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라 평일까지 외식할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고 경제적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파친코> 원서로 읽는데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이나온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서 부여되는 임무는 남편밥은 잘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하고 위안을 주어야 한다고. 그 위안이란 말이 영어 단어 comfort로 표현되는데 이는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의미로 이해된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라고 칭하는데 영어 단어로는 comfort women이라고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자에게 있어 결혼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나의 역할은 남편을 충족시켜 주기 위함인가. 

물론 백여 년 전 소설 속 이야기이고 나는 나름대로 남녀는 평등하다는 기치 아래 교육을 받은 세대지만 결혼과 육아를 겪으며 남녀역할은 상당히 불공평하고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림과 육아에 있어 여자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걸 나도 결코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경험했다.


성욕은 그렇다 치더라도 식욕이라는 생리적 욕구야말로 하루 세 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거라 인간으로서 어떻게든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 남편처럼 요리에는 아예 잼병이라 부엌 가까이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하고 살면 밥을 해 먹이는 일은 오로지 내 독차지다. 물론 요리는 못하지만 살림을 아예 등한시하는 사람은 아니고 요구하면 청소도 해주고, 아이랑도 놀아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소설 <토지> <파친코>를 보면 여자가 밥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곤 한다. 잘 사는 집은 잘 사는 대로 못 살면 못 사는 대로 그 집 분수에 맞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제철에 맞는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내고 입가심용 숭늉을 준비한다. 밥 하는 일이란, 여지없이 모두 여자의 일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나는 남편 식욕을 채워주는 존재인가. 

막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시어머님은 나에게 곧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입맛이 굉장히 까다로운 녀석인데 나는 이제 해방되어서 속이 시원하다.‘ 처음엔 그 뜻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고 살짝 약이 오르기까지 한다. 삼십 평생 자식 밥 해 먹이느라 얼마니 고생이셨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그 짐을 며느리에게 배구공 토스하듯 가뿐히 떠넘겨서 오죽 시원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


밥 하는 게 힘들어서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 부엌에 온종일 서서 꽤나 요리 좀 하는 여자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데 사실 마켓컬리나 쿠팡프레쉬를 적극 애용하며 반조리식품에 의존할 때가 많다. 고맙게도 남편은 도무지 늘지 않는 내 요리실력에 대해 뭐라 한 적도 없고 딱히 기대도 않는 눈치다. 

하나하나 다 만들어먹어야 했던 시대에 비하면 얼마나 축복받은 건지 감사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그치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죽을 만큼 부엌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몰아칠 때가 있다.


다 날씨 탓이겠지. 더워서 그런 거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나리고 별 수 있나.


이상, 더워서 밥 하기 싫은 여자의 하소연이라고 가볍게 보고 넘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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