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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1. 2024

시어머니 화법은 언제 적응돼요?

며느라기 10년 차인데도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5분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렸다. 간단하게 근황 이야기하거나 특별히 전할 말이 있으면 그것만 하고 끝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는 늘 이 모양 이 꼴이다.


시종일관 내 입장을 백번 이해하고 있으며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신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거기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당신도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쉽지만은 않은 삶을 사셨기에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됐고 걱정하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 끝에 상황이 점점 당신에게 조금 불편하게 들리셨는지 그때부터, 발끈하면서 정색하시는 거다.


그때부터는 한 발 물러서시면서,

'너희들끼리 해결할 일이지 늙은 부모가 무슨 참견을 하겠니'

'둘이서 의견 일치를 봐라'

'우리 아들 입장도 나는 백번 이해한다'

'네가 알아서 잘 결정해서 확실히 말을 해'

'그런 부분은 네가 남편한테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게 나을뻔했다'

'내 아들 성질 뻔히 알면서 그런 얘기를 왜 꺼냈니'

라고 하시면서 다분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그전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시면서 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구원투수처럼 행동하셨는데 갑자기 돌변하시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 심한 말들이 쏟아지기 전에 모양새가 이상하더라도 거기서 끝맺고 그냥 통화를 중단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 억울했고, 어이가 없었기에 내 입장을 소극적이나마 납득시켜보려고 했는데, 그 후부터 나오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네가 뭐가 성가실 게 있니, 너처럼 편한 며느리도 없다'

'시어머니가 너한테 잔소리를 하니, 시아버지가 너를 귀찮게라도 하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굉장히 편하게 며느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 왜 나오는 건지 그 맥락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내 귀를 의심, 또 의심했다.


나 때와는 달리, 이렇게 편하게 며느리 역할 할 수 있게 이렇게까지 내가 배려를 해주는데 왜 너는 그런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이렇게 나를 불편하게 하느냐, 하는 뉘앙스였다. 순간적으로 어머님이 발끈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금전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 직후였던 것 같다.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생각지 못한 지출이고 큰 금액이라 조금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 선에서 해결가능한 정도다,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그게 듣기 싫으셨는지 아니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네가 잘못한 거다' '네 남편 성질 알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라는 내 탓만 반복되기에 전화를 급하게 끊어버렸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지, 왜 내가 남편한테 숨 길건 숨겨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났다.


그런데 이 화법, 이번에만 당한 게 아닌데. 몇 년 전 또 큰 이슈가 있었을 때도 비슷한 패텬으로 당했던 적이 있는데. 악몽의 기억이 불현듯 소환된다.


처음에는 전적으로 내 편을, 우리 편을 들어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한 발 물러서시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서 마치 검사 같은 자세로 내 행동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패턴. 결국 내 잘못이고 네 실수라고 결론 내리고 너희가 해결할 일이다라고 선을 긋는 이 패턴.


전에도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고 혼자 해결하자 다짐해 놓고 결국 또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도 나는 아직 시어머님의 화법이 적응이 안 된다.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신경 안 쓰면 될 일인데 자꾸 그 말이 머릿속에 반복재생되어서 마음속에 생채기가 남는다.


도대체 몇 년의 세월이 지나야 이게 적응이 될까?

언제가 되면 시어머님이 어떤 말을 하든 말든 그냥 쿨하게 적응하고 넘어가게 될까?

내 성격이 그러하지 못해서 소심해서 이렇게 속이 상하고 잊히지가 않는 건지.


그래도 한 가지 발전된 점이 있다면, 전 같으면 남편에게 바로 이야기하면서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말도 안 꺼내고 참아냈다. 어차피 말해봤자, 본인 엄마 욕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러면 피차 감정만 더 상할 뿐이니까. 또 다른 싸움의 빌미만 제공될지도 모르니까. 요 며칠 사이도 안 좋았는데 더 싸울 힘도 없으니까.


먼 훗날 시어머니가 되더라도, 며느리와의 통화는 5분 이내로, 아니 웬만하면 2분 이내로 끊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떤 대화든 '잘하고 있다, 네 생각을 존중한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이 말만 하고 마무리하는 멋진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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