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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20. 2024

비생산적인 수다가 필요한 이유

수다는 나의 힘

아이 어렸을 때 문화 센터 다니면서 친해진 엄마들이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같은 유아 수업을 듣고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아이들끼리는 전혀 친해지지 않았다. 동갑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성별도 성격도 다르고 개성도 강한 편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같이 모여놔도 잘 어울릴 줄을 몰랐다. 내 아이는 타고난 사회성 이슈가 있어 그렇다 쳐도 다른 두 아이들도 함께한 세월이 무색할 만큼 데면데면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들끼리는 죽이 잘 맞았다. 만나면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배려가 몸에 밴 분들이기도 했고, 서로 적당히 선을 지킬 줄 알아서 그런지 더 격의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다들 출신지역도, 나이도, 본인 직업도, 남편 직업도, 사는 동네도 달랐지만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할 이야기가 넘쳐났고 헤어지고 나서도 찝찝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개운한 만남이었다.


동네가 다르기에 아이들도 각기 다른 초등학교로 배정되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센터 수업도 같이 다니기 어려워졌다. 나머지 엄마들은 그래도 학원 하나를 같이 다니면서 여전히 친하게 지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학원 대기실에 앉아 수다 떠는 재미를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다. 애들 학원이라는 공통분모가 사라지자 따로 만나려면 시간을 내서 약속을 정한 다음에 만나야 하니 그것도 상당히 번거로웠다.


남들에게 먼저 자주 연락하는 성격도 아닌지라 몇 개월씩 연락이 끊기곤 했는데, 고맙게도 잊을만하면 한 엄마가 연락을 해서 근황을 물어주었다. 덕분에 분기별로 한 번씩은 점심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공통분모가 거의 사라진 상태라서 공유할만한 이야기도 많지는 않다. 동네가 다르니 애들 학교나 학원 정보도 나눌 게 없고, 내 아이와 다르게 그 아이들은 발달 문제도 없어서 정상적인 사교육 코스를 밟고 있기에 나 스스스로는 더 이질감만 느낄 뿐이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후로 나에게는 피해의식이 생겨서 정상발달 아이 엄마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어쩌다 대화에 끼게 되더라도 내 아이와는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현타만 세게 와서 우울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을 못 만나지 거의 반년이 지났는데 이번에 연락이 와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각자 일정이 바빠서 시간 내기도 힘들었지만, 적극적인 한 엄마 덕에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건 좋지만 약간은 귀찮은 마음도 한 구석에 들었다.


그런데 만나고 나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고, 어느 누구보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높여 수다에 열렬하게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먼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꺼내서 하면 그분들은 또 열심히 들어준다. 이야기라고 해봐야 정말 별거 없다. 부끄럽지만 남편 험담도 많고 시댁 이야기나 그 외에 시시콜콜한 일상사들이 전부다.


나는 본래 좀 이기적인 성향이 있기도 하고 내성적인 면이 강해서 사람들과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나면 기가 빨린다. 에너지가 바닥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동네 엄마들과의 만남 약속도 다분히 수동적으로 응하기만 한다. 아이가 진단을 받고 난 후로는 이런 성향이 더 심해졌다. 이 시간에 집에 혼자 앉아 발달 관련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주로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씩 꼭 동네 엄마들 만남에 끼었던 것은, 아이에게서 들을 수 없는 학교 이야기나 동네 학원 정보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내가 알지 못했던 소소한 동네 근황들을 얻을 수 있었고 꼭 필요한 정보라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흥미롭거나 다소 유익한 것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다분히 생산적(?)인 양상을 띤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엄마들은 사는 동네도 다르고 아이들 사교육 패턴도 달라서 뭐 공유할만한 정보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동네 엄마들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나도 모르게 어디에서도 말하기 어려웠던 속마음이나 고민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분들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무리에는 꼭 내 편을 들어주신다. 내 입장에서 한 이야기라 주관적인 것은 당연하고 어찌 보면 내 입장만 너무 강조되었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도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준다.


"OO 엄마가 억울했겠다. 화날 만도 하네 정말."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상대방이 너무했네."

"다음부터는 참지 말아요. 하긴 근데 나라도 별 말 못 했을 것 같긴 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아묻따 내 편만 들어주는 이 분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끔은 가족도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서로에게 바라기만 하고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는데 이 분들은 비록 말이 전부라지만 무조건 내 편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들어준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혹자가 봤을 때는 이런 종류의 만남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만 소비할 뿐인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라고 여길수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자주는 아니라도 아주 가끔은 이런 만남이, 수다가 꼭 필요한 삶의 윤활제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번 만남에서 쓴 시간과 돈이 전혀 아깝지도 않았고, 되려 위로를 받고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별 의미 없을 것 같은 신변잡기식 수다라고 해도 인생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언제나 무조건적인 내 편만 들어주는 이들과의 만남이라면 전혀 아까울 게 없다.


이번에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은 두 계절 지나 추운 겨울에나 보기로 했다. 아직 멀었지만 다음번 만남이 또 기대된다. 어설픈 충고나 조언은 싹 빼놓고 전적으로 내 편만 들어주는 그네들의 넓은 아량이 나에게는 상당히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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