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해지와 인스타그램 언팔

디지털 디톡스 도전기

by 레이첼쌤

정말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드디어 넷플릭스를 해지했다.

한 달에 만원 가량의 이용료가 아깝다기보다 점점 넷플릭스에 중독되어가는 나 자신을 붙들어 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전에도 남는 시간에 무한정 넷플릭스를 켜놓고 보지는 않았다. 주로 설거지할 때, 빨래를 개면서 그리고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으면서 보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자투리 시간 혹은 조금 느슨해져도 되는 시간에 보는 거라 덮어놓고 하루 종일 넷플릭스 모니터만 바라보는 중독자는 아니었다.


휴직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전업주부 생활 중인데 낮에 여유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미드만 멍청하게 바라보며 사는 건 내 얄팍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름 볼 수 있는 시간을 정해서 보고, 자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설거지를 하면서 보다가도 설거지를 끝내 놓고도 너무 재미있어서 더 보게 되고, 점심 먹는 시간도 더 빨리 먹을 수 있는데 넷플릭스를 더 많이, 길게 보려고 일부러 더 천천히 먹거나 아니면 계속 후식을 추가하던지 해서 더 많이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정해둔 그 자투리 시간에만 짧게 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선택하는 데에 고민하는 시간도 꽤 많이 든다. 리얼리티쇼도 봐야 할 것 같고, 찜해두었던 미드도 봐야 하고, 우리나라에서 뜨고 있는 드라마도 봐야 할 것 같고 너무 봐야만 할 것들 천지였다.

게다가 나는 영어 전공자로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미드를 통해 영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단순히 보기만 한다고 해서 영어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한 달 전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그동안 팔로우하던 100명 정도의 계정을 모두 삭제했다. 그건 나의 유령 계정 같은 걸로 사진은 올리지 않고 남의 인스타만 염탐하는 계정이었다. 각종 유명 인플루언서, 쇼핑몰, 연예인, 일반인 금수저 훈녀, 미국 리얼리티쇼 출연진에 이르기까지 관심 가는 사람들은 모조리 팔로우하고 그들이 올리는 피드를 구경했다.


그야말로 "그사세"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 너무나 다른, 비교 불가한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부러움은커녕 이번 생에서는 감히 경험하지도 못할 그들의 대단한 삶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 부러워만 할 거면 안 보면 그만인데도, 계속 궁금하기도 했고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박탈감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큰 마음먹고 팔로우하던 인플루언서들을 다 삭제했다. 삭제하면서도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각오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나와 실제 인생에서 연관이 1도 있지 않은 그들의 삶을 굳이 매일 확인하지 않아도 내 인생에 큰 영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 도서 관련 계정 몇 개만 놓아도가 다 지워버리니 굉장히 삶이 심플해진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끊임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사진들이 나의 뇌를 자극하고 거기에 끌려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기분이 사라지니 여러모로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디톡스를 할 때인가?
미국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에는 일상생활에서 SNS를 계속 사용하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을 한 번에 최대 10분, 하루 최대 30분만 사용하게 했다. 3주 뒤 하루에 30분만 사용한 그룹은 기분이 개선되었으며 우울증 증상이 있던 학생들은 우울감과 고독감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인스타 브레인, 안데르스 한센 저>


<인스타 브레인> 책에서는 과도한 SNS 사용이 우울증과 사회적 소외감을 야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본인은 SNS에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피드만 보는 소극적 사용자들이 더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소통도 하면서, 무엇보다 그것을 이용해 수익까지 얻고 있는 사람들은 되려 더 만족스럽고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SNS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의 인플루언서들은 소수다. SNS에서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멋진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올릴 시간적, 경제적 여유, 혹은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를 가지지 못한 평범한 우리들은 거의 관망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1980년대 이전으로 시간을 되감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비교하는 그룹은 우리와 격차가 훨씬 더 크다. 우리 선조들은 자기 부족 사람들과 경쟁했기에 실질적으로 경쟁자는 2,3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수십억 명과 경쟁한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항상 당신보다 더 잘하는, 더 현명한, 더 멋진, 더 부유한 혹은 더 성공을 거둔 누군가가 있다. 새로운 온라인 세계는 여러 가지 가능한 범위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게 하는 곳이다.
<인스타 브레인, 안데르스 한센 저>


나 혼자서 조용히 시도한 인스타그램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가 나름 성공적이었기에, 이번에는 끊임없이 내 주위를 흩트리는 또 다른 주범, 넷플릭스를 나로부터 차단해보기로 한 것이다.


넷플릭스만큼은 굉장히 고민됐다. TV 켜서 채널 돌리는 것조차 귀찮아진 나는, 넷플릭스를 켜면 TV보다 훨씬 재밌는 콘텐츠들을 한 번의 클릭으로 볼 수 있는 빠른 접근성이 좋았다. 그리고 아직 봐야 할 위시리스트들이 무궁무진했다. 요즘엔 넷플릭스 말고도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웬만큼의 콘텐츠는 커버하고 있어서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괜히 해지했다가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나 미드가 생기면 따로 일일이 구매해서 봐야 하는데, 그게 더 돈 낭비가 아닌가.


몇 주의 고민 끝에 나는 정말 큰 결심을 하고 해지했고, 정 아쉬우면 다시 재가입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 한 번 시도나 해보기로 했다.

그 후로 설거지를 할 때는 그저 설거지만, 빨래 갤 때는 빨래만 개고, 점심 먹을 때는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영상을 켜서 봤다. 그렇다. 유튜브만 해도 보고 싶은 영상, 봐야 할 것만 같은 영상들이 넘쳐난다.


약 2주일 정도는 큰 불편함 없이 살았는데, 결국 복병이 생겨버렸다.

그 이름은 송중기가 나온다는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가 꽤 재미있어서 요새 많이들 본다고 듣기는 했지만, 원래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지도 않고 특히나 제목에 대놓고 "재벌"이 나온 류의 드라마는 더욱 내키지 않는다. 돈 많고 잘 생긴 재벌이지만 진정한 사람을 해본 적 없는 순진하고도 철없는 남자가 예쁘지만 자기가 예쁜 줄 모르는 가난하지만 매력 있는 여자와 만나서 사랑을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제 나에게는 좀 진부하기도 하고 손이 오그라들기도 한다.

그렇고 그런 재벌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한 신데렐라 설정의 내용이 아니고 스토리가 꽤 신선하고, 송중기가 연기도 워낙 잘해서 하루가 다르게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남편까지도 <재벌집 막내아들> 엄청 재밌다고 요새 난리라며 자기도 보고 싶어서 짬짬이 틈날 때 보는 중이라고 했다.


돈 아끼자고 TV 편성표 시간에 맞춰서 1회부터 찾아볼 수도 없고 그냥 한 회씩 구매해서 보려고 하니 회당 천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럴 거면 그냥 넷플릭스에서 보는 게 훨씬 이득이잖아? 왜 나는 넷플릭스를 해지해버렸지? 다시 재가입해야 하나? 이거 보자고 다시 가입하면 다시 넷플릭스에 빠져서 살려고? 그래도 너무 인기 많은 드라마라 보고 싶고, 내용도 궁금한데 어떡하지?"


오만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나란 인간이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넷플릭스 중독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고민 끝에 중대한 결심을 내렸으면 최소 한 달은 견뎌봐야 할게 아닌가. 불과 1,2주밖에 안돼서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겼다고 다시 또 가입할 생각을 하다니. 나란 인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한 번 더 실망하고 만다.


요새 한창 읽고 있는 책 <인스타 브레인>에 극 공감하면서 나는 디지털기기에 중독되지 말아야지, 내 뇌가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조절해야지,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짐해놓고 또 다시 흔들리다니. 나는 내 스마트폰, SNS, 디지털기기 사용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쓸 때보다, 스마트폰이 나를 쓰는 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어서 5분이고 10분이고 정신없이 남의 피드를 훑거나 클릭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썸네일에 이끌려 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들을 모두 합치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대략 5년은 된다고 한다.


참 무서운 일이다. 내 인생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스마트폰 속 세상을 들여다보느라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다고 해서 요즘 같은 시대에 아예 디지털기기와 담쌓고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당장 스마트폰을 없애고 90년대 폴더폰을 구해서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재가입하는 지경까지 가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기 굉장히 힘들어하긴 하지만, 그깟 자존심 한 번 모른척하고 구겨지게 하고, 즐거움과 재미를 쫓아갈지도 모른다.


온갖 휘황찬란하고, 눈 돌아가게 하고, 입 쩍 벌어지게 하는 이 볼 것 많은 디지털 세상에서 작고 초라한 존재인 내가, 나를 잃어가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조금은 통제하고 조절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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