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를 읽고

by 레이첼쌤

감히 나를 러너라고 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수십년 마라톤을 뛰며 매일 달리기를 한 하루키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이건 갓 3주 차 러너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피트니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 시작한 지 20일 정도 되어간다.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 호기롭게 걸어 들어가서 겉옷을 걸어두고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러닝머신 위로 올라선다. 익숙하게 티브이 리모컨으로 볼만한 채널을 훑어보다가 하나 정한 뒤 속도 7.3 정도에 두고 살살 달리기를 시작한다.


아침 6시경 피트니스에는 운동하는 중년의 아저씨 두, 세분이 늘 있다. 그분들은 원래 아는 사이인지, 아니면 운동하면서 친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대화를 한 두 마디 나누며 헬스를 하는 것 같았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 짐작할 뿐 나와는 전혀 모르는 타인이기에 나는 내 운동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러닝머신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다짜고짜 러닝머신을 정지하라는 거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스마트워치에 기록도 재고 있는데 지금 갑자기 러닝머신을 끄라는 건 뭐야. 할 말 있으면 끝나고 하던가 무슨 중요한 볼 일이기에." 하고 생각했다. 속으로는 아주 못마땅했지만 일단 당장 끄라고 하니 멈췄다.


"지금 운동하는 거 보니까 달리기 폼이 아주 엉망이에요. 그런 자세로 달리면 무릎이랑 허리랑 다 나가요. 잘못된 자세로 뛰니까 뛸 때마다 러닝 머신 위로 소리가 너무 크게 탁탁 나는 거예요. 제대로 된 자세는 이러이러한데.."


하시면서 달리기 자세에 관한 길고 장황한 설명을 늘여놓으셨다. 나야 따로 달리기 기초나 자세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본 적도 없어서 아는 지식도 없으니 할 말도 없고 그냥 네네 하면서 듣고 있었다.


한창 설명한 후에 내가 뛰던 러닝 머신 위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며 뛰기 시범을 보이시겠다고 하며 뛰더니 "이 러닝 머신에 문제가 있네요. 바닥 재질이 안 좋아서 소리가 너무 크게 나네. 다른 것 사용해 보세요." 하신다. 그래도 달릴 때 자세는 정말 중요하다며 가끔 오면 모르겠는데 매일 아침 와서 운동하길래 조언해주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옆에 좀 더 멀쩡한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이미 흐름도 끊겨버리고, 그때부터 내 자세와 발돋움이 신경 쓰여서 제대로 달리기가 잘 안 되었다.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그냥 내가 가장 편한 자세, 하던 자세로 뛸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신경이 쓰이고 내 발바닥 소리까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가 뛰는 모습을, 내 엉터리 자세를 보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불편해졌다. 가까스로 그날의 목표량은 마치고 나오면서 그분에게 가볍게 목례 인사까지 하고 나오긴 했는데,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가는 피트니스가 아무도 나를 잘 모르는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이라 더 마음 편히 나에게만 집중하며 뛰었는데, 왠지 내일부터는 그게 잘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트니스를 벗어나 보자고 결심하게 된 건 그 순간이다.



내일부터는 그냥 추워도 참고 밖에 나가서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밖에서 아침 일찍 나가서 운동하자면 11월 말의 날씨는 3,4도로 꽤 추웠고 달리다 보면 추위야 잊어지겠지만, 수족냉증에 워낙 추위에 약한 체질을 타고난 탓에 그 추위를 뚫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달리기에 관심이 생기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 하루키는 무조건 야외에서 달렸다. 충격적인 건 단순히 건강 관리를 위한 달리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백 번의 마라톤에 출전할 정도로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42.195km의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은 물론이고 100km 마라톤도 도전한 그야말로 진정한 러너였는데, 그의 글을 읽고 있지만 달리면서 보는 바깥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밖에서 달리는 기분이 어떤지 사뭇 궁금해졌다.


조금만 더 날씨가 따뜻하면 나도 집 앞 천변에 나가서 뛰어볼 텐데. 추운 날씨 탓에 야외 달리기는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피트니스에서 일이 있고 난 다음 날 나는 한 번 큰맘 먹고 피트니스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은 아무래도 많이 추울 것 같아서 아이 등교시키고 난 후에 9시경에 나가보기로 했다. 그때쯤이면 찬 바람도 덜하고 코와 귀의 시림도 덜하지 않을까 하는 철저한 계산이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도 그냥 평소대로 피트니스로 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밖에 나가서 뛰어보겠다는 거야.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하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았다.


하던 대로 하려는 습관. 이게 관성인가.

오늘 딱 한 번만 해보고, 너무 춥고 힘들어서 안 되겠으면 피트니스로 돌아가는 거야.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옷을 평소보다 더 여러 겹 갖춰 입고 집을 나섰다.


처음에 뛸 때는 내 속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러닝머신에서 제공해주는 그 일정한 속도 위에서 달리다가 내 가 내 속도로 뛰는데 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숨이 너무 가빠왔다.


내가 비록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런린이긴해도 달리기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팔, 다리보다 호흡이라는 건 한두 번 달리고도 깨달을 수 있었다. 밖에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동안은 호흡 조절이 너무 안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너무 가빠서 굉장히 힘들었다. 왜 러닝머신보다 훨씬 힘든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참고 해보기로 하고 속도를 확 늦춰서 천천히 뛰어 나갔다.






뛰다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본 인상 깊은 페이지가 떠오른다. 그가 미국 캠브리지에서 지낼 때 달리기를 하며 마주치는 하버드 여대생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른 아침 찰스 강변을 내 페이스로 달리고 있노라면, 하버드의 신입생처럼 보이는 여자애들에게 점점 추월당한다. 그녀들 대부분은 날씬하게 마른 몸집에, 하버드의 로고가 붙은 붉은 벽돌 셔츠를 입고 있다.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고, 신제품의 아이팟을 들으면서, 바람을 가르듯 일직선으로 도로를 달려간다. 거기에서는 틀림없이 알지 못할 공격적이고 도전적이 것이 느껴진다. 사람들을 차례로 추월해가는 것에 그녀들은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굉장히 자세하고 세세한 그의 묘사에 안 봐도 이 하버드 여자 신입생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상상이 간다.

금발의 포니테일에 하버드 로고 후드를 입고 힘차게 달리는 그녀들의 모습이.




그녀들은 한눈에 봐도 우수하고 건강하고 매력적이고 진지하며,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에 차 있다. 그녀들의 유유히 흔들리는 자랑스러운 포니테일과 호리호리한 호전적인 다리를 쳐다보면서 나는 하릴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인생에도 그런 빛나는 날들이 존재했었을까? 그녀들은 어쨌든 천하의 하버드 대학의 반짝반짝 빛나는 새내기들이니까. 그러나 그녀들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멋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확실하게 이어져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소박하게 실감한다.


하루키는 그녀들을 보며 꽤나 오랫동안 상념에 젖은 듯하다. 인생에서 실패란 겪어보지 않았을 듯한 젊고 밝게 빛나는 하버드 여대생들의 달리는 모습이 그로 하여금 젊은 날을 회상해보게 한다.


나도 이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리고 직접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이 찰스 강변에서 뛰던, 하루키가 봤던 하버드 여대생들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나는 혼자 상상했다.

그녀들은 어떤 분야로 진출해서, 어떤 업적을 남기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 책은 2007년경에 출간된 것 같은데 그러자면 그 사람들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겠구나.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아니면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비혼으로 살고 있을까.


책에서 읽은 한 페이지에 나온, 그것도 저자가 달리다가 잠깐 마주친 하버드 여대생 이야기에, 나는 웬 오지랖이냐 싶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내 젊은 날도 그녀들만큼 훌륭한 성과로 반짝반짝 빛났다면 더 잘 살고 있을까. 나와 그녀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단 하나 공통점을 발견해내자면 포니테일로 단단히 머리를 묶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녀들처럼 달릴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가 있고, 지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내 보잘것없음에 약간의 위안이 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갓 3주 차가 되어가는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근처 지역에 혹시 마라톤대회가 있는지 검색해보기까지 했다. 정말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마라톤이라니. 나를 아는 가족과 지인들이라면 분명 경악할 것이다. 마라톤과 나라는 인간은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성질의 것이니 말이다. 5km, 10km 완주 마라톤 대회가 있다. 5km 정도면 나도 도전해볼 만한데? 보통 이런 대회는 날 좋은 봄, 가을에 열리는 것 같으니 내년 봄 정도라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까?


갑자기 마라톤 대회에 출발선에서 수많은 인파와 섞여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아들의 응원을 받으며 눈부신 햇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다.



러닝머신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천변에서 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러닝머신 위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성취감 있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4km 달릴 때쯤 너무 힘들어서 이제 좀 걸어볼까 싶던 시점에 어디서 부는지 정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 말을 내뱉었다.


아 시원해. 아 행복해.


행복하다는 말을 나 혼자서, 나에게 들릴 정도지만 말해본 적이 언제였더라. 땀 흘리며 뛰고 있을 때 부는 차가운 바람이 너무나 감사하고 그로 인해 무한한 행복감이 든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왜 나는 항상 멀리서 찾고 있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똑같은 그 천변을 걷기만 했다. 걸으면서도 종종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달리기는 내 영역이 아니야. 평생 뛰지도 않던 내가 갑자기 뛰면 심장이 깜짝 놀라서 터져버릴 거야. 나란 인간은 걷기 운동이 딱이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한계선을 정하고 그렇게 믿어버렸다.

왜 뛸 생각도 못해본 거야, 바보같이.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달리기를 하는데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걷기를 한다고 체력이 엄청 증진되는 건 아니겠지만, 전혀 아무 운동도 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집에 와서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니 어디서 나왔는지 자신감이 불쑥 차오른다. 무슨 일이든 해낼 것 같은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 말이다.


때마침 유튜브 영상에서 한 심리학 교수가 하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가 혁신적인 새롭고 진기한 변화보다 뇌를 더 자극하고, 발달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 줍니다. 그래서 매일 걷던 길, 매일 하던 일 말고 조금 다른 길,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해보세요."


나에게는 날씨 탓으로 피트니스만 고집하다가 처음으로 야외에 나가 달리기를 시도해본 것이 "일상의 작은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은 변화가 나에게 굉장히 신선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한은 한동안 바깥에서 달리고 싶다. 그때 느낀 그 시원함과 행복감을 또 느끼고 싶다.


달리기로 인해 건강해지고,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지고, 몸에 근육이 붙는건 부차적인 것이다. 그저 달리는 순간의 그 기분이 좋아서 달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내일도 또 달리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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