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드컵 대표팀 16강 축하해요
한국 대 포르투갈전에 전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직접 카타르 현장에 간 응원단들은 정말 대단한 축구팬들인 것 같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나가서 응원하는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뉴스도 봤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이들은 응원 복장까지 제대로 갖춰 입고 한껏 고양된 분위기에 우리나라 응원을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모습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광화문에서 밤 12시에 하는 경기를 응원하러 나가다니.
속으로 “춥지도 않나, 참 젊다 젊어.” 생각했다.
저 뉴스 속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우리나라가 이길 거라는 긍정과 희망의 기대감에 가득 찬 저 젊은이들의 모습과 코로나 재확진으로 격리 중인 우리가족과 너무 대비되는 현실에 씁쓸함만 느꼈다.
평소에 K리그나 유럽리그를 즐겨보는 축구팬도 아니고, 한 번씩 월드컵 할 때에만 바짝 열광하고 마는 전형적인 냄비 근성을 바탕으로 한 응원 정도만 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결혼해서 애엄마까지 되고 보니 월드컵 응원이 좀 와닿지 않았다. 내가 목청껏 응원한다고 경기 현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경기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더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어떤 실질적인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기면 기분은 좋고 짧게나마 기쁨과 환희에 차오르긴 하지만.
2002년 월드컵에 안타깝게도 고3 수험생이었던 나는 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에서 TV를 틀어놓고 반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며 매 경기마다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었다. 축구 기사 신문을 스크랩에서 교실 게시판에 붙여두고, 경기가 있는 날에는 선생님들도 거의 초기할 정도로 수업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응원에만 몰두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걱정되긴 했지만 한일월드컵이 진행된 6월 한 달간은 제대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채 보냈고, 선생님들은 으레 그런 우리더러 “단군 이래 가장 멍청한 학번”이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데 옆반에 예쁘장하게 생긴 새침한 이미지의 한 친구는 월드컵 경기는 보지 않고 혼자 조용한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나랑은 말도 거의 섞어보지 않고 얼굴만 아는 사이지만, 우리끼리 그 아이 재수 없다며 그렇게까지 해서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험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후에 그 아이는 수시로 이대에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고, 정시 비율이 훨씬 높았던 시기였기에 수능을 치러서 더 좋은 대학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월드컵 응원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내 공부를 못하는 건 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그 시절 어렴풋이 느꼈지만, 깊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대학 입시 결과도 끝난 상태였다. 그 아이처럼 남들 응원할 때 정신 단단히 차리고 내 공부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인생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결혼하고 애엄마가 되고 이제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고 보니, 똑같은 월드컵이라고 해도 전처럼 응원 분위기에 휩쓸리지는 않게 되었다. 특히 평일 밤에 경기가 있다 보니 내일 학교 보내야 하는 아이를 재우는 게 우선이지,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안 재우면서까지 우리나라 경기를 꼭 보고 싶지는 않았다. 우루과이, 가나와의 경기는 전반전까지 보고 후반전에는 아이를 재우고 나는 조용히 폰으로 경기 상황만 지켜보았다.
포르투갈전은 금요일 밤이고 어차피 내일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서 늦잠을 자도 되지만 12시면 평소 취침시간보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코로나 증상으로 힘겨워하는 아이를 데리고 굳이 경기 시청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사실 전적이 1 무 1패인 우리나라가 강팀에다가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호날두를 장착한 포르투갈을 꼭 이겨야 하고, 이긴다 해도 또 같은 조 다른 국가와 골득실 점수를 계산하는 등 경우의 수를 모두 만족해야만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 나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16강을 진출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나전에서 선전했고, 막상막하의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패한 건 패한 거다.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이 상황에서 이미 체력 소진으로 많이 지쳤을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 모든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12시까지 버텨볼까 하다가 하품을 하며 피곤해하는 아들 얼굴을 보고 이내 불을 끄고 코가 막혀 힘들어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미련 없이 잠을 청했다. 밤 12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이웃집 함성소리에 잠을 깼다. 이건 함성인가 탄식인가 궁금했다. 골을 넣은 건가 먹은 건가 궁금해서 핸드폰을 켜보았다.
1:0이었다. 역시 골을 먹었구나.
“포르투갈에는 역시 안돼. 결국 지겠군. 16강은 무슨 대패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냥 잠이나 자는 게 낫겠다고 미련 없이 자버렸다.
그래도 겉으로는 관심없는 척 했어도 속으로 궁금하기하고, 긴장도 되었는지 새벽 5시에 나도 모르게 잠이 깨서 경기 결과를 보기 위해 핸드폰을 만졌다.
응?? 16강 진출이라니??
이게 웬 대반전 역전 드라마인가.
포르투갈을 2:1로 이긴 것도 모자라서 같은 조 다른 팀 경우의 수까지 다 조각이 맞춰진 거야?
너무 신기했다. 그때부터 경기 영상과 기사들을 열심히 검색해봤다.
우리 선수들 정말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최선의 결과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땀범벅이 되어서 우루과이 경기 결과를기다리는 우리 선수들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면서 나 자신이 참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이 선수들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 적은 가능성에서도 뭔가를 이끌어내기 위해 저렇게 온몸을 불살라가면서 노력하는데 나는 같이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안될 거라고 속단해버린 걸까.
대표팀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데, 먼저 한계를 규정짓고 포기해버리면 안 되는데, 상대팀이 강하다는 이유로, 지금 우리 팀 상황이 너무 불리하다는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로 먼저 결론지어버린 내가 틀려도 한참 틀렸구나 싶다.
아울러 내 아이를 대하고 키울 때에도 이런 태도로 임하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아이가 또래보다 조금 느리고, 부족하고, 서투른 모습이지만 내가 먼저 포기하고 한계선을 긋지 말자.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고 변할 수 있고 잘 해낼 수 있다. 내가 부모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 안에 아이를 가두고, 그 틀 안에서만 끼워 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짐짓 내 멋대로 속단하지 말 것.
0.1퍼센트의 가능성에도 기대를 품고 현재에 최선을 다할 것.
2002월드컵에 혼자 몰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지 않고 마음껏 친구들과 응원 한탓에 수능을 못 본거라는 후회도 하지 말자. 그 순간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것이기에.
스포츠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란 이런게 아닌가 싶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대표팀의 젊은선수들에게서 진한 인생의 교훈을 배운 기분이다.
꿈과 희망을 늘 마음에 품고 아이를 키워야겠다.
정말로 꿈은 이루어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