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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재확진, 나는 끝까지 음성

코로나 재감염 격리 이야기

by 레이첼쌤


참 이상한 코로나다.


아이의 재확진 연락을 병원 원장님께 직접 받고도 믿을 수 없는 패닉에 휩싸였는데, 격리 들어간 첫날 곧장 보건소에서 온 문자를 보니 이게 현실이 되었음을 여지없이 깨달았다. 한창 확진자수가 쏟아지던 올해 봄 시즌에는 보건소 일처리가 너무 느려서 확진이 되어도 연락을 못 받고 전화를 해도 먹통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 확실히 시스템화 되었나 보다. 요새도 꽤 많은 수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걸로 아는데 보건소 문자가 빨리 온 걸 보면 말이다.


5월 말에 처음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에도 아이가 먼저 감염되고, 하루 차로 다음날 내가 확진되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수순을 밟을 거라 각오했다. 가정에서도 마스크 끼고 조심하면 가족끼리라도 감염을 피할 수 있다고 듣기도 했지만, 내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나한테 꼭 붙어있는 애라서 애당초 거리두기 따위 가능할 리 없었다. 사춘기 중학생 정도 되면 코로나 걸리면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기꺼이 격리 생활을 만끽한다고 들었지만, 그런 모습은 아직 8살인 아이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마스크 쓰고 집에서 생활하는 건 포기하고, 기왕에 걸릴 것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진단키트 두 줄을 겸허히 기다렸다.


1차 때 증상처럼 목소리가 잠기면서 가래가 차고, 코가 막히고, 목 통증이 시작될 거라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음날 아침 나타날 증상을 상상하면서 잠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저번에 느꼈던 그 온몸이 묵직하면서 무겁고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평소와 비슷하다. 아주 가벼운 감기 증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잠복기가 길어지는 건가? 그렇다면 더 곤란한데. 기왕이면 격리 기간도 아이랑 겹쳐서 동시에 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 아닌가.

올 거면 빨리 와버려라 이 코로나 녀석아, 사람 간 보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진단키트는 성실히 한 줄만 나온다.

남편 역시 계속 음성이었다.

어차피 남편은 서재방 하나 차지하고 퇴근하면 그 방에 들어가 따로 차려준 밥 먹고 자고, 거실에 나올 때는 마스크 쓰고 아이와는 눈인사만 하고, 철저히 하숙생 생활 방식으로 방역을 했기 때문에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와 수시로 뽀뽀하고 부둥켜안고, 같이 먹고, 씻기고 하면서 평소보다 더 진하게 24시간을 함께 너와 나라는 자아의 분리 없이 뒤엉켜서 생활하고 있었다. 안 걸리는 게 더 이상할 일이다.


이런 걸 보면, 코로나 재감염은 전파율이 낮은가?


그렇다면 아이는 이렇게 낮은 감염률을 뚫고 어디서 걸려왔단 말인가?

학교, 학원을 평소대로 다니긴 했지만 워낙 유치원 때부터 마스크 착용 교육을 철저히 받은 탓에 집 밖에서는 마스크 방역을 나보다 훨씬 더 철저히 지키는 아이다.




저번 1차 코로나 격리 기간에는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아이도 열이 38도 이상 오르면서 많이 아파했고, 나는 오한과 몸살로 침대 밖으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이틀은 꼬박 아팠었다. 내 컨디션이 엉망이다 보니 아이 밥 차려 주는 일 자체도 너무나 고되게 느껴졌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침대에서 경우 몸뚱이를 비집고 나왔어도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거의 누워만 지냈다. 아이는 이틀 정도 열나고 아프다가 4일째부터는 제 컨디션을 찾고나서부터 심심해하면서 놀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에너지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고, 결국 아이는 유튜브를 끼고 하루를 보냈다.


ADHD 아이에게 과도한 미디어 노출은 독이다. 일반 아이들도 유튜브나 게임 영상 노출로 인한 악영향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시각적 자극에 취약하고 전두엽 발달이 느려서 자기 조절력이 또래보다 부족한 특징의 ADHD 아이들은 미디어 노출에 더 제약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독을 뛰어넘어 아예 그것의 노예가 돼서 부모보다 스마트폰을 더 찾을 정도로 눈에 뵈는 게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격리 생활이 나에게는 두 배, 세 배 더 스트레스였다. 하루 종일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와 상호작용하면서 놀아주기가 힘든 상황에서, 계속 동화책만 읽으라고 할 수도 없고, 밖에 나가지를 못하니 결국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고 평소에 제한하던 시간마저 통제가 되지 않고 고삐가 풀려버리는 것이다.


이게 가장 힘들었다. 아이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지금까지 내가 발달이 느린 아이를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통 아이들이야 격리 기간에 평소보다 티브이 좀 더 많이 보고, 게임 좀 더한다고 해서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생활 패턴이 무너져서 격리 해제되었을 때 다시 잡아줘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 힘든 부분이겠지만.


시각 자극에 매우 취약해서 그로 인해, 언어 발달 지연까지 온 케이스인 내 아이의 경우, 내가 가장 후회하고 지금도 발등을 찍는 부분은 어려서 3,4살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준 일이다. 영상물 노출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하루에 3,40분 정도로 정해서 보여주었다. 외출했는데 정말 통제가 안 되거나, 외식할 때 가만히 앉아 있게 하는 용도로 스마트폰을 보여주었고 그마저도 죄책감이 들어서 노출 시간을 줄이고자 밥을 마시듯 급하게 먹고 나와버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엄마들도 그 정도의 영상 노출은 필수불가결로 여겼고, 나는 적게 보여주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특히 시각이 예민한 내 아이 같은 경우에는 그 한 가지 감각에만 너무나 집착을 해서 보는 것 말고는 다른 감각을 쓰지 않게 돼버린다. 가장 중요한 청지각 같은 감각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알아먹고 이해하며 상호작용을 시도하면서 언어 발달이 이루어져야 할 결정적 시기를 그렇게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번째 격리생활이지만, 나는 양성도 아니고 컨디션도 괜찮으니 최대한 게임이나 티브이 노출은 피하고 내가 많이 놀아주자고 다짐했다. 매일 아침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나름 전보다 더 좋아져서 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와 24시간 딱 붙어 하루 종일 함께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니, 거의 극기 훈련 수준에 가까웠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면 바로 아침밥을 해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대충 청소기 한 번 돌리고 나면 아이는 혼자 놀고 있다. 아이는 나에게 같이 놀자고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그러면 같이 역할놀이를 하든, 보드게임을 하든, 잘 설득해서 책을 읽든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놀아보려고 애를 쓴다. 시간은 참 느리게도 흐른다. 핸드폰에 잠깐 눈이라도 갈라치면 아이가 뛰어와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뭐하냐고, 자기도 보자고 한다. 마음대로 핸드폰을 볼 수도 없다.


아이의 감각발달을 위해 집에서 감각통합운동훈련을 시켜보겠다고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몸놀이 목록을 만들어서 프린트해서 냉장고에 붙여둔 게 있다. 50가지 넘는 간단한 몸놀이 리스트가 있는데, 짬짬이 여유될 때 서너 개씩 아이와 해 볼 요량으로 해둔 건데, 아이는 그게 맘에 들었는지 그 50개를 한꺼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자고 한다. 씨름, 앞구르기, 닭싸움, 멀리뛰기, 햄버거 놀이 등 하다 보면 정말 20분도 안돼서 에너지가 바닥난다.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다. 학교도 태권도도 가질 않으니 남아나는 에너지를 쓸 곳이 없으니 한 시간 넘게 몸놀이를 해도 쌩쌩하다.

반면, 나는 아이 발달을 위해 내가 만들어둔 몸놀이 목록을 불태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아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면 고맙고 감사해야 하는데, 당장 몸이 힘들고 지치니 못난 생각만 든다.




어설픈 피자 만들기


그나마 좋아하는 흔한 남매 만화책을 집중하면서 보고 있으면 나도 슬그머니 내가 읽고 있는 책을 꺼내 들어서 읽기 시작하면 서너 장 채 읽기도 전에 엄마 무슨 책 읽냐며 또 옆에 와서 집중 못하게 방해한다. 나는 절망한다. 잠깐의 책 읽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너.


하루에 40분 정도는 코딩이나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는데도, 그때에도 나보고 옆에 앉아서 자기 하는 거 봐주라고 한다. 그 시간마저 나는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박탈당하니 고통처럼 느껴진다. 혼자 책도 읽고, 브런치 글도 좀 쓰거나 아니면 멍이라도 좀 때리고 싶은데 아예 틈을 주지 않는다.


나의 한계를 몇 번씩이나 느꼈다.

왜 나는 엄마면서 하루 종일 제자식이랑 함께 있는 게 이다지도 힘든 걸까.


나는 엄마 자격이 없나.

나는 엄마라는 역할을 해낼 자질이 애초에 없는데 무턱대고 덜컥 엄마가 돼버린 걸까.


어느새 커버리고 사춘기가 오면 엄마랑 함께하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을 텐데, 그때 되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지금의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힘들다고만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그래도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면서 자식만 바라보는 삶보다, 출근해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육아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자잘한 집안일을 남편 신경 쓰이지 않도록 해치우고,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면서 밀착 케어를 하고 보살피는 일은 여러 능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출근해서 일이라도 하면 워킹맘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라도 있지, 전업주부로 지내다 보면 돈 버는 일도,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 천지인지 더 허탈하고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고 지쳤을 남편에게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하소연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나 자신에게 약속하고 다짐했건만, 이번에도 나는 몇 번이나 힘들어 죽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남편이라고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좀만 더 견뎌보라고 하는 수밖에. 평일에는 퇴근 시간이 늦어서 어차피 저녁밥만 먹고 잠자리에 드느리 바쁜 남편이라 육아 참여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지만 격리 기간까지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하는 육아는 참으로 버겁다.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결국 다 흐르고 격리기간도 끝이 났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끝까지 음성이었고, 가벼운 감기 증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귀에는 아이가 하루 종일 꽂혀서 계속 틀어달라던 <문어의 꿈>과 <애국가>가 귀에 맴돈다.


그래도 감사한 일은, 아이가 학교에 나가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로 학원 못 가는 건 괜찮은데, 학교 못 가는 게 아쉽다고 말해주는 녀석이다. 다시 등교하는 날 아침에는, 격리 기간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을 텐데도 불평 없이 밥 잘 먹고, 싫어하는 양치도 세수도 군말 없이 잘하고, 스스로 옷도 챙겨 입고 등굣길에 나선다.


그저 뿌듯하고 감사하다. 학교를 가고 싶어 해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거부하지 않아 주어서.


두 번의 격리 기간을 견뎌낸 나 자신도 마구 칭찬해주고 싶다. 걸리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격리이기에 이게 무슨 칭찬받을 일이냐 싶겠지만, 그래도 아이 밥 삼시세끼 챙기고, 집안일도 해내면서, 평소보다 더 아이와 자주 눈 마주치고 놀아주려고 노력한 내가 사뭇 자랑스럽다. 매일 학교, 학원 다니다 보면 막상 아이랑 이렇게 찐하게 한 몸으로 붙어있을 시간이 많지 않은데, 차라리 더 잘된 일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다시는 이런식으로 겪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다시 찾은 내 일상에 두 번, 세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매일을 살아나가야겠다.

코로나여, 두 번 우리 가족을 휩쓸고 갔으니 더 이상의 방문은 사절이오.

그대 다시는 오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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