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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맨날 화만 내

나도 정말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by 레이첼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다이어리를 쓴다.

간단하게 오늘 해야 할 일, 스케줄, 감사한 일 몇 가지, 미래에 대한 다짐을 한 페이지 정도 써나간다. 매 페이지에서 가장 상단에 위치해있는 중요한 목표 중 한 가지는 "아침에 아이랑 최대한 즐겁게, 기분 좋게, 신나게 등교 준비하고 학교 보내기"이다.


발달장애와 ADHD육아에 관련된 다수의 책을 보면, 공통점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모든 걸 다 떠나서 아이가 자주 웃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발달의 어려움 그 자체에서 오는 증상들과 더불어 더딘 발달로 인한 불안증과 예민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의사들이 자폐스펙트럼이나 ADHD 약물을 처방할 때에도 꼭 불안을 잠재우는 약도 함께 처방된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래보다 서투르고 부족하기에 자신감이나 자존감이라는 게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상처받고 있거나 바닥을 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아이들을 위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밖에서 상처받은 아이를 위해 가정에서만이라도 항상 웃을 일을 많이 만들고, 엄마가 광대가 되어서라도 바보같이 웃겨주고, 그러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다.


학교에 가면 부족하고 서투른 사회성으로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게 아이에게 부담되는 과제 중 하나인데, 아침에 등교할 때 만이라도 내가 기분 좋게 해 주고, 자신감 심어주는 말도 해주면서 보내자고 어느 순간부터 다짐했고 매일 아침 다이어리 to-do 리스트에 꼭 쓰곤 한다. 항상 현관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외치고 "잘할 수 있어"라는 말과 함께 아이를 꽉 안아주고 등교시킨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다이어리에 아이 기분 좋게 등교시키기,라고 써놓았다.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고 있는데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으려고 대기했다. 오늘은 늦잠 자지 않아서 등교 준비 여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방금 만든 애호박 볶음에, 두부 부침과 검은콩 낫또 그리고 최애 반찬인 미니 돈가스까지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아침밥을 차려서 먹였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돈가스에만 집중하고 내가 신경 써서 만든 애호박 반찬은 맛없어서 못 먹겠다며 울상을 짓는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보라고 달래 보았다. 돈가스가 맛있었는지 "엄마, 밥 더 줘." 하는 아이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밥솥에서 한 술 더 떠주었다.


평일에는 매일 아침 ADHD 약을 복용하고 등교하기 때문에 오후 3시 정도까지 아이는 입맛을 잃는다. 이 약물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인 식욕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급식은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몇 술 뜨다 말기 때문에 아침밥이라도 꼭 든든히 먹여야 한다.


밥을 먹고 나니 거실에 널브러진 어제 하다 만 러시아워 게임을 하겠다며 온통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손에 치약 묻힌 칫솔을 쥐어주고 함께 러시아워 게임을 해주었다. 5분 이상 지났기에 이제 물 뱉을 때가 되었다고 일렀지만, 풀리지 않는 러시아워를 끝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거의 10분 가까이 양치질을 하면서 같이 푸는데 집중했지만 결국 풀지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덕에 오늘은 여유로운 등교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내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계는 8시 30분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때부터 부지런을 떨며 얼른 양치 마무리하고 세수시키고 머리 정리하고 로션도 바르게 했다. 아침 일찍 담임 선생님께서 오늘 눈까지 오고 날이 많이 추우니 방한 복장 든든히 입혀서 등교시켜달라고 문자가 와서, 방수장갑과 귀마개, 모자, 목도리를 챙겨 입히는데 그것도 고르고 입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정신없이 챙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거의 촉박해져 버렸고 내 마음도 다급해졌다.


학교가 코 앞인데 지각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나도 담임할 때 늘 아침마다 지각하는 아이들이 못마땅했고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지각하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으로 만들고 싶은데, 아이는 오늘도 세월아 네월아 하며 마스크 목걸이 줄에 마스크 연결하는 것도 한참 걸리고, 그 와중에 나에게 계속 코딩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한 번 참으며 화까지는 내지 않았고 말투가 조금 냉랭해졌다. "지금 벌써 47분이야. 시계 보고 얼른 챙겨." 아이는 달라진 내 목소리에 굉장히 민감하다. 나는 분명히 화낸 말투가 아니었는데, "엄마 또 화낸다."며 엄마는 맨날 자기한테 화낸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또 화가 났다.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매 순간 참을 인을 새기면서 이렇게 노력하고 살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맨날 화만 내는 인간"이라는 딱지를 이렇게 쉽게 붙이는 건지, 억울했다.


엄마 또 화낸다고 말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면 되는 거였는데 아이에게 못내 억울했던 나는 "언제 엄마가 그렇게 화냈어? 엄마는 너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해줬지, 화는 아주 가끔 내잖아."라고 했다. 아이는 아니라며 엄마 저번에도 화 많이 냈고 오늘도 화내고 있다고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이 시간에 울어버리면 다시 달래서 학교 보내야 하는데, 그럼 정말 지각이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급히 사과하고 가방을 챙기고 현관으로 나가는데 눈까지 와서 털부츠를 찾아서 신기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지각이면 어쩌지." 나는 이렇게 신경 쓰이는데 아이는 그 와중에도 여유 넘치게 다른 소리만 하고 있다.

하이파이브와 꽉 안아주기는 생략하고 잘하고 오라고 한 마디 해주고 아이를 보냈다. 밖은 눈까지 내리고 기온도 많이 떨어져서 공기가 어제보다 훨씬 차갑다. 눈이 쌓인 미끄러운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무겁다. 오늘 아침에 다이어리 상단에 쓴 "기분 좋게 등교시키기" 항목을 달성하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하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며 카톡을 보내보았지만 하교하면 잘해주라는 짧은 답변이 왔다. 그래, 이건 내가 해결하고 풀어나가야 할 내 문제다. 남편은 현장에 함께 있지도 않았으니 공감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더욱이 지금은 일터에 있는 시간인데 아이 등교 준비하느라 힘들었다는 내 말에 마음 깊이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인지도 모른다.







세탁기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마무리해놓고 무거운 마음으로 노트를 펼쳤다. 문장 한 개를 첫 줄에 써보았다.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지 않고 그냥 내 의식의 흐름대로 한 번 생각하고 써나가 보기로 했다.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정도의 우선 조건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내 마음이 평안해야 함.

둘째, 인내심을 길러야 함.

셋째,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 함.





덧붙여서 아침 등교 준비 시간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느긋해질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 또한 필요하다. 사실 지각 좀 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허용적인 성향이시라서 몇 분 늦는 것 가지고 따로 혼내실 분도 아니다. 기본 생활 습관 형성 면에서는 등교 시간 내에 가는 것이 꼭 길러주고 습관화되어야 할 자질이지만, 큰 틀에서 바라봤을 때는 아침부터 화내고 기분 상하면서 감정 소모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나에게도 좀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진실이고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늘 웃으며 한결같이 다정하게 대하는 일은 정말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아이는 특히나 내 말투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약물 부작용인지, 아니면 더 어렸을 때도 이렇게 예민했는지 모르겠는데 최근 들어 부쩍 느껴지는 특징인데, 내가 조금만 언성이 높아지거나 엄한 말투라도 쓰면 울거나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엄마가 자기한테 또 화낸다고 억울해한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자고 매일 다짐하고, 다이어리에 기록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자책하는 중이다. 언제쯤 나는 상냥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지 위한 3가지 필요조건은 떠올리긴 했지만, 그런 생각은 어느 누구나 엄마라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이자 자세다. 그럼 그 덕목을 기르기 위해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실천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았다.


첫째로, 내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가장 처음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매일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루틴이다. 이미 하고 있는데도 잘 안된다는 것은 그 강도가 약하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독서와 글쓰기를 해야 하나 보다. 책 읽는 양을 더 늘리거나 같은 양이라도 더 집중해서 읽는 연습을 해야겠고, 글쓰기도 브런치든 블로그든 대충 쓰지 말고 생각을 충분히 깊이 한 후에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낙관주의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 긍정적 사고방식을 주입해주는 유튜브 영상들도 많으니 시간 날 때마다 찾아보면서 내 안에 있는 부정적 기운을 최소화시키도록 해보는 것도 좋겠다.


"마음의 평안"에 관해서 한참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떠오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남편.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야 내 마음이 편안하다. 저번에 아이에게 폭발하고 나도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적에는 남편과도 대판 싸우고 사이가 틀어져서 일주일째 대화 없이 투명인간으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웬만하면 남편과의 갈등을 피하고 조금 더 양보하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이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내 아이를 위해서 더 필요하다. 엄마, 아빠가 몇 번 크게 다투는 모습을 본 후로 불안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이미 불안한 아이에게 더 큰 불안을 안겨준 꼴이 되고 말았다. ADHD 아이를 잘 키우려면 일단 부모 사이가 좋아야만 한다.



둘째로,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나는 그런대로 인내심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육아를 시작한 뒤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일에 관한 한 인내심이 있는 편이지만, 내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또 다른 인간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인내심은 형편없음을 수백, 수천번 넘게 확인하고 있다. 인내심을 기르는 방법으로 꾸준히 운동하기와 영어 공부 매일 하기 등을 생각했는데, 이것들도 어차피 매일 하고 있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인내심 기르는 법"을 한 번 검색해보았다. 인내심을 기르는 법에 관한 주제로 몇 가지 글을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자기 계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환경을 통제하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해가면서 매일 실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이거나 육아하면서 아이의 인내심을 기르는 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육아 과정에서 인내심이 바닥난 엄마가 참고할만한 내용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도움이 됐던 건 한계를 느끼거나 기분이 나쁠 때, 호흡법으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5분간 모든 행동을 정지하고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하면서 호흡하면서 명상까지 병행하면 인내심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이에게 화내기 직전에 한 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셋째로,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내 화난 기분이 말투에서 묻어나기 때문에 아이는 자꾸 내가 화내는 엄마라고 치부해버리는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내 기분을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도 있었던 것 같은데 관련 책도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유튜브에 도움 될만한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검색해보았는데 세바시 강의 중 정신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씨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강의 제목은 <엄마도 사람입니다>였다. 왠지 위로가 되고 배울 점도 있는 영상일 것 같아서 나중에 시간 날 때 천천히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에게 백 번 잘해줘도 한 번 화내면 아이는 그게 기억 속에 각인이 되어서 우리 엄마는 맨날 나한테 화내요라고 말하게 된다고, 오은영 박사님이 어디선가 했던 말인 것 같다. 내가 지금 그렇다. 아이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욱하고 터지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한다. 그리고 또 자책한다. 아마 내가 이렇게 휴직까지 하면서 너 하나 잘 키워보자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고 있는데, 라는 생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이 마음이 부정적인 상황을 만나면 터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를 대하는 것을 차라리 직장 생활에 빗대어 생각해버려야겠다. 직장에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슬프고 우울한 일이 있어도 대놓고 슬프다거나 화난 티를 내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고 일에 몰두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게 돈을 버는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고 프로의 자세다. 직장 생활한다는 마음으로 아이 앞에서 내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일을 조심하고 경계해야겠다. 아이에게 올인하고자 일을 쉬고 집에 있는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업무는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이므로, 그 업무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업무 상황에서처럼 아이 앞에서 늘 밝게 웃고, 친절한 태도로 임하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저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다정한 엄마가 되보기라는 목표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남은 하루는 화내지 않고, 아이 앞에서 웃기고 즐거운 엄마가 되도록 꼭 노력해야지. 하루만이라도 다정한 엄마가 되는데에 성공하면, 또 다른 하루를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고, 그렇게 반복되다보면 정말 나는 꿈에서나 가능할것이라고 여겼던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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