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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백점 받지 않아서 다행이야

초1 받아쓰기

by 레이첼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담임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2개의 숙제를 내주셨다.


그것은 바로 그림일기와 받아쓰기다. 그림일기는 일주일에 한 번, 받아쓰기도 일주일에 한 번 10개의 문장을 두 번씩 써서 제출하면 된다. 그림일기는 선생님께서 읽어보고 코멘트를 달아주는 것으로 숙제 점검을 해주시고, 받아쓰기는 시험을 본다. 시험을 보고 나면 시험지에 부모님 확인 사인을 받고 틀린 문장은 다시 세 번씩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신다.


2학기에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는 건 우리 학교에서 1학년 공통으로 하는데, 다른 반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세부적인 방식은 담임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각기 다르게 운영하는 것 같았다. 받아쓰기를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써오게 하시는 분도 있고,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긴 하지만 매주 검사하지는 않는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는 한글을 워낙 빨리 뗐고, 시각적 학습자이기 때문에 한글 맞춤법은 따로 붙잡고 연습시키지 않아도 어느 정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주 오시는 학습지 선생님께서 1학기 때부터 매번 5 문장 정도 받아쓰기 연습을 시켜주신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숙제만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가끔 "싹을 틔웠습니다." "얇은 그물처럼"같이 어려운 받침이나 헷갈릴만한 글자가 들어있는 경우에만 주의 깊게 보라고 말해주었다


무슨 기준으로 급수가 나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학기초에 나눠주신 받아쓰기 학습지에는 총 16급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일주일에 한 개씩 하면 2학기 말까지 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받아쓰기 시험 채점은 생각보다 꼼꼼하게 이루어지는데, 온점이나 물음표, 띄어쓰기가 맞지 않으면 틀린 걸로 간주된다. 당연하긴 하지만 띄어쓰기라는 게 생각보다 헷갈려서 신경 써서 연습하지 않으면 백점은커녕 두세 개는 속절없이 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반 엄마들도 받아쓰기는 초등학교 보내고 공식적으로 보는 첫 시험 같은 형태라서 꽤 공을 들여 연습시키고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5세에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긴 했지만 주로 "화용 언어"가 뒤쳐진 상태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영역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그저 한 번 써본 문장을 듣고, 받아 적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언어 영역인 받아쓰기는 못할 것 같진 않았다. 아이의 특성마다 달라서 시지각 능력이 떨어지거나, 맞춤법에 유독 약한 아이들은 받아쓰기 자체도 어려운 과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역시나 몇 주 연속 백점을 받아왔고 나중에는 받아쓰기 시험이 있는지도 깜빡한 날들이 많았다. 나중에 물어보면 당연하다는 듯 백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의 언어능력은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은데, 지금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화용 언어능력인데,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앞 뒤 맥락을 잘 이해하고 파악한 뒤 자기가 할 말을 눈치껏 해내는 능력이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집중해서 들어주는 어른과 일대일 대화를 할 때에는 비교적 원활한 편이지만 또래들끼리만 있을 때 그들이 하는 말장난이나 유머, 은근히 약 올리기와 같은 말로 가르치기 힘들어서 직접 부딪히고 배워야 하는 영역이 아직도 매끄럽지 못하고 서툴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계속 백점을 받다 보니, 나는 문득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강박과 불안 증상이 있어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게임이나 경쟁에서 지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고 떼쓰거나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이겼다고 억지를 쓸 때가 많다. 이 부분을 작년부터 센터 수업에서도 집에서도 다양한 보드게임을 하면서 계속 연습하고 단련시키고 있지만 쉽사리 좋아지지가 않는다. 센터 선생님은 한 번 아이의 이런 성향이 너무 안 고쳐져서 죄송하지만 한계를 느낀다며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심스레 추천까지 하셨다.


충격을 받은 나는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보고 승부에 집착하는 아이들 다루는 법 영상을 찾아보고, 가족이 보드게임을 하면 아빠는 일부러 져서 "져서 기분이 좋다! 너무 행복하다!"라고 오버스럽게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함께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수십 번, 수백 번 말해주었다. "게임에서 져도 괜찮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


하지만 ADHD 아이들은 전두엽 발달이 느린 탓에 워낙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아이가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 발달지연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행동이다. 자기 스스로도 그렇게 어린애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지만,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그것에 관해 더 혼내고 지적하면 자존감이 점점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사실 경쟁에서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 하잘것없는 보드게임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지는 순간, 그게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머리로는 이런 특성들을 이해하지만 일상에서 아이의 이런 어린애 같은 행동과 마주할 때는 매번 좌절하게 된다. 집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밖에서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을 때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드는 감정이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렇게 잘못된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보니, 행여나 받아쓰기 시험에서도 백 점을 받지 못하고 한 개라도 틀려서 90점을 받게 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교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라리 한 번쯤은 백점을 받지 않고 틀려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경험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학년이 올라가고 학습 수준이 높아지면 늘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잘하는 과목, 약한 과목이 생기게 마련이고 결국 자기가 자꾸 틀리고 약한 영역을 보완하고 더 많이 집중하면서 학습이 이루어진다. 수능 만점자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시험에서 완벽한 기계처럼 만점만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차라리 아직 공식적인 시험이 아닌 담임선생님이 매주 숙제 점검 차원에서 하는 가벼운 받아쓰기 시험에서 미리 겪어보는 게 아이의 성장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매주 받아쓰기 시험 보고 온 날 아이가 오늘도 백점 받았다고 말을 하면,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정말 잘했어. 그런데 받아쓰기 백점 받지 않아도, 한 두 개 틀려도 괜찮아. 연습해서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한 개 틀려도 절대 속상해하지 말고 울면 더더욱 안돼. 알겠지?" 아이는 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나는 못 미더웠다. 행여 한 개 틀리면 수업 진행을 방해할 정도로 아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거나 의외의 행동을 보여줄까 봐 불안했다.


16번의 받아쓰기 시험에서 14번째까지 백점을 받았으니 올해는 그냥 다 백점 받고 끝이 나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시험에 대한 부정적 경험은 하지 않고 이대로 지나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드디어 저번 주에 아이가 받아쓰기에서 백점을 받지 못했다!

하굣길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오늘은 받아쓰기 한 개 틀려서 9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뭇 놀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울었어?" 물어보았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학교에서 우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행동이잖아요. 저는 울지 않았어요."


아이가 정말 대견하고 기특했다. 한 개 틀려도 실망하지 않고, 결과를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바로 남편에게 연락해서 이 소식을 알렸다. 한 개 틀렸는데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고 했더니 남편은 정말 멋지다고, 그게 더 백점보다 대단한 거라고 아이를 격하게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 처음으로 틀린 문장 세 번 쓰기 숙제를 해서 제출했다.


다행이다. 받아쓰기 16번 모두 백점 받는 것도 대단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개 틀렸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대처해준 내 아이를 더 많이 칭찬해주고 싶다.


앞으로 살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할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일일이 부모가 옆에서 도와주고 지지해주면서 위로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작게나마 하나씩 겪고,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다시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더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받아쓰기 경험이 올해의 큰 수확 중 하나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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