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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Dec 02. 2022

코로나 재감염, 믿을 수 없는 현실

adhd아이 키우기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목에 가래가 차서 침 삼키기가 힘들다며 괴로워했다. 콧물, 기침도 없었고 열도 나지 않았기에 환절기에 갑자기 한파까지 찾아와서 그런 건가 싶었다. 아침을 먹이고 집에 있던 가래 시럽을 찾아 한 포 먹이고 등교시켰다. 심한 가래가 혹시 감기 초기 증상인가 싶어서 하교하고 집에 오면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사 맞을까 봐 병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겨우 설득해서 데리고 갔고 진료를 보면서 따로 말하지 않아도 감기 증상인 환자는 검체를 채취해서 PCR 검사를 해주었다. 결과는 내일 아침에 나온다고 했다. 일단은 가래가 주증상인 염증성 질환 감기라고 처방해주셨다. 온 김에 독감 예방접종도 맞추자고 하기에 그러기로 했고 아이는 생각보다 용감하게 접종 주사를 맞았다.


저녁을 먹고 약도 먹이니 가래도 한층 나아진 것 같고 열도 없어서 별생각 없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들을 청천벽력을 생각지도 못한 채.




여느 때처럼 아침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상쾌한 기분으로 씻고 나서 로션을 바르려던 차였다.

아침 7시 20분 정도였을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애가 깰까 봐 얼른 받았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 원장님 목소리였다. 자주 들어서 익숙한 그 목소리.


코로나 확진이면 직접 아침에 전화를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설마.


”자녀가 코로나 확진되셨습니다. “

“네? 저희 6월에 걸렸었는데요?!”

“감염 후 45일이 지나면 공식적으로 재감염 가능성이 인정됩니다. 보건소에서 곧 연락 갈 거고, 아이 상태 잘 지켜보시고 필요하면 진료받으러 오시고요.”


꽤 오랫동안 이러저러한 사항을 설명해주신 거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너무 황당했다. 우리 애가 코로나에 또 걸리다니? 재감염이라니?

상상해보지 못한 현실이었다.


사실 1차 감염 때는 어느 정도 미리 각오한 부분도 있었다. 주변 지인들, 아이 친구들도 여럿 확진되기도 했고, 이런 감염속도라면 언젠가 우리 가족에게도 코로나라는 손님이 오시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기왕 걸리지 않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감염률이 국민의 절반 이상 넘어갈 때는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먼저 증상이 오고 확진되었을 때는 많이 아프고 고생할까 봐 걱정이 되었지, 엄청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이 확진 후 하루 차이로 나도 확진되어서 격리기간이 동시에 걸리니 차라리 낫다 싶었다. 아이는 열이 주증상이고 아프긴 했지만 어렸을 적 고생했던 독감만큼은 아니었다. 그에 반해 내가 열을 동반한 오한과 근육통으로 연이틀은 통증과 약기운에 취해서 몽롱한 시간을 보냈다. 내 몸이 아프니 아이 간호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밥만 겨우 차려주고 유튜브를 보든 말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항상 그렇듯이 바쁜 남편은 코로나가 휩쓴 우리 집 육아 현장에서도 제삼자가 되어 빠져 있었고 조심한 탓에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 번쯤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고, 격리 기간이 끝나고 일상을 회복했을 때는 더없이 기뻤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번쯤 걸릴 사람은 다 걸린다 싶어 지니 점차 코로나 재감염될 수 있다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고, 주변에도 재 확진까지 돼서 고생한 지인들은 없었기에 더 마음을 놨다. 설사 재 확진이 된다고 해도 비교적 최근에 걸렸으니 최소한 해는 바뀌고 나서 내년쯤 한 번 더 창궐할 시기가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렇게 각오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 일찍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멘. 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학교 담임 선생님께 연락드려야 한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자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전화는 차후에 통화 가능한 시간에 드리기로 했다. 학교 이외에도 연락드려야 할 학원, 센터, 방과 후 수업, 학습지 등이 족히 열 군데는 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생각보다 사교육으로 다니는 곳이 많다는 걸 새삼 인지하면서, 동시에 그럼 앞으로 일주일간 학원에 가지 않는 그 모든 빈시간을 집에서 어떻게 채워줘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아이 아플 것보다 둘이 집에서 24시간 같이 뭐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때울지가 더 걱정하다니, 나 진짜 엄마 맞니 자괴감도 든다.


곧바로 나와 남편도 집에 있는 진단키트로 급하게 검사를 해봤다. 우리 둘 다 한 줄, 음성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도 한 번 더 해봤는데 아주 선명하게 두 줄이 나온다. 1차 때와는 다른 변이 바이러스라 더 쉽게 감염돼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천천히 다른 가족들에게도 알렸고 다들 재감염까지 걸려본 적이 없는지라 더욱 놀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코로나에 두 번 걸릴 수도 있구나.



다행인 건 콧물과 기침은 점점 심해지지만 아직 열은 심하게 않고 계속 같이 놀아달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니 컨디션도 괜찮아 보인다.


하루 종일 단둘이 같이 있는 것도 처음 격리 때보다는 좀 더 할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내가 확진이 되지 않고 컨디션이 괜찮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올해 일 년 가까이 휴직하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도 온전한 엄마 역할에 좀 더 적응해서 나아진 건도 모르겠다.


콧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곽티슈 한 통을 하루 만에 다 써버리고 윗입술도 다 헐어버렸다. 삼시세끼 밥 먹이고 나면 부지런히 약을 챙겨 먹이니 아이 숨소리에서 약 냄새가 난다.




더욱 감사한 일은 우리 가족의 코로나 소식에 안타까워하면서 힘내라고 치킨 쿠폰 보내주는 동네 엄마, 지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랑 아이 평소 취향에 맞춰서 간식까지 사다가 집 문 앞에 두고 간 엄마까지. 우리 아이 학교 안 나와서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반 친구까지도. 아이와 둘이 집에 격리되어 있지만 그래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지인분들의 배려와 친절에 감사하고 정말로 힘이 난다.


큰 고통 없이 잘 견뎌내 주었으면 좋겠다. 부지런히 밥 먹고 약 먹어서 두 번째로 찾아온 이 코로나 바이러스 녀석이 얼른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 번씩 크게 아플 때마다 새삼 깨닫는 진실이자 삶의 진리.


건강이 최고다.

다른 무엇도 다 필요 없고 건강하게 밥 잘 먹고, 잘 놀고, 별 탈없이 학교 다니는 일이 가장 기본이고, 삶을 살아내는 튼튼한 초석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몸소 배우고 있다.


굳이 이렇게 코로나에 두 번 걸리면서까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긍정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얼른 나아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격리 기간 내내 힘들다고 짜증 내지 않고 아이 회복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내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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