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거라서

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by 레이첼쌤

하루는 아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하던 아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밖에 나가서 놀겠단다. 친구가 자전거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면서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는 채비를 한다.


이 장면을 내가 얼마나 꿈꿔왔던가.

이건 꿈이 현실이 된 게 틀림없는 거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잖아.


불과 7살 적만 해도 또래 친구들과 거의 대화가 안 되었고 의사소통장애진단을 받은 아이다.

매일 다이어리에 쓰면서 빌고 또 기도했다. 제발 제대로 대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이랑 대화 좀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이 아이도 친구랑 의미를 통하는 대화라는 걸 해보고 친구 한 명 사귈 수 있을 정도의 소통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당시 나에겐 그것 말고는 소원이 없었다. 그것만 이루면 정말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아이에게 먼저 자발적으로 친구라는 애가 전화를 걸어서 함께 놀자고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고, 그 전화를 받고 놀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아이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게 그냥 너무 부자연스러운 거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나?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나는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가.


물론 부모로서 느린 아이를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은 할 수 있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 몇 년간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나 자신은 지우고 철저히 이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를 위해 하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모든 게 다 아이 위주였고 그래야 했고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아마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 아이가 몰라보게 좋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늦은 오후에 나간 터라 점차 어두워질 무렵이었고 이내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이미 밖에 나간 아이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걱정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는 즐겁게 잘 놀 수도 있고 잘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물 떠놓고 기도하며 종종거리며 안절부절못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없다. 결국 또래 관계도 친구랑 노는 것도, 아이가 해내야 할 일이다. 이걸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저녁이 다되어서 차가운 바깥공기를 머금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뭐 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니 자전거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까지 가서 친구들이랑 빵을 사 먹고 왔단다. 우리 아이가 돈을 가장 많이 냈다는 사실이 좀 찝찝했지만 여러 번 그런 것도 아니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애가 즐거웠으면 그만이다.


그냥 이 정도로 아이가 성장해 주었다는 것, 친한 친구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연락이 와서 밖에 나가 어른의 동행 없이 잠깐이라도 놀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그날 내가 천국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건 내가 너무나 간절히 꿈꾸었던 미래였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이런 날이 과연 올까 믿지 못했고 매일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더군다나 조금 특별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렇게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은 학원 스케줄을 통으로 까먹어서 해맑은 얼굴로 집으로 와버린 일도 있다. 물론 보통의 아이들도 아주 가끔은 할 수 있는 실수다. 다음 학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와버린 일.


그렇지만 우리 집 아이는 그다음부터가 더 큰 문제다. 왜 집으로 바로 와버렸냐고, 바로 센터로 갔어야지 놀라면서 물어보는 내 표정을 보면 저는 더 놀랐던지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아기 어린아이처럼 엉엉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어재낀다.


이런 순간에는 어떻게 대처할지가 참 어렵다. 이 아이가 진단을 받지 않은 평범한 아이라면 그냥 맘 놓고 혼내거나 적당히 달래서 늦게라도 학원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스케줄을 깜박 잊어버린 건 전형적은 ADHD 증상이다. 일상생활에서 깜박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자주 상기시켜 주고 매일 아침 그날 하루 해야 할 일을 같이 확인해 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까먹어버릴 때가 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이제 곧 초등 고학년이 될 아이를 달래야 할지 혼내야 할지, 증상에서 기인한 행동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한숨은 숨길 수 없었다. 완벽한 아이는 아니지만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녀석은 자기가 이렇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면 스스로도 못 견뎌하면서 괴로워한다. 순간의 감정에 압도돼서 머릿속이 멍해지는가 보다. 그냥 유아기적 행동으로 돌아가서 유치한 리액션을 내보이는 것이다.


한참을 달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육아에 또 지옥이 찾아온 느낌이다. 사실 배가 아파서 그냥 집에 온 거라면서 거짓말까지 하는 아이를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린다.


하는 수없이 그날 센터 스케줄은 과감히 취소하고 쉬기로 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 나아진 건 다른 때보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시간이 좀 줄었다는 거다. 한참을 못 견디게 괴로워하더니 생각보다 빨리 진정이 되었다. 아마 끝까지 원래 스케줄대로 하라고 했으면 더 오래갔을지도 모른다.


ADHD 아이의 이런 사소한 실수들은 자존감을 형성하는 시기에 독이 된다고 들었다.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엄마도 그런 적 많다고 말로 설명하고 납득시켜 봐야 아이 스스로가 느끼는 타격감이 크다면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상처받고 치유하는 과정을 부딪혀가며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아이로 인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아마 내 아이처럼 특별한 문제를 지닌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아이를 키운다는 건, 육아를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행불행,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줄타기하며 오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저 나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크고 세서 감당하기에 더 힘이 든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평범한 아이라도 자식을 키운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원칙이 생겼다고 한다면, 아이로 인해 천국을 느낄 만큼 행복하더라도 너무 행복해하지는 말 것, 지옥나락에 떨어져 한없이 괴롭게 한다고 해도 진짜 지옥은 아니니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말 것, 정도이다.


이것도 한순간이고 스쳐 지나갈 테니 순간을 적당히 즐기거나 잘 견디고 또 넘어갈 것. 그렇게 가다 보면 아이도 나도 훌쩍 커있을 날을 또 만나게 된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저 잔잔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무엇보다 베스트임은 말할 나위 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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