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컥하게 만든 그 단어, HOPE

느린아이 엄마가 바라본 세상

by 레이첼쌤

미술관에 갔다. 미술사적 지식도, 미적 감각도 없고 예술에 대한 소양은 더더욱 없다. 그냥 애 방학이니까 시간 떼우러 간 목적이 크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공백이 지속되는 이 방학이라는 시간을 뭘로든 채워넣어야한다. 그래야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흐른다.


이것 저것 거장들의 작품이라고하는데, 들어본 사람도 있고 안 들어본 사람도 있고 했다. 아름다운거, 멋진거 많이 보는게 아이한테도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열심히 감상하는척 해보지만 평소처럼 크게 와닿는건 없다. 어느 멋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하나의 미술 작품 앞에 서서 고고한 몸짓과 태도로 푹 빠져들어 감상하는 그런 교양을 갖추진 못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데 어느 한 쪽 벽면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았는데, 나는 순간 멈칫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숨 쉬기가 힘들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그 자리에서 떠나질 못하겠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이런게 사람들이 말하는 감동인건가.

잘은 모르겠다. 나는 아주 단순한 작품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HOPE라는 단어가 연달아 큰 글자로 쓰여져 있는 액자 세개가 전부였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작품이다. 낯설지 않다. LOVE라는 단어로 된 조각상 앞에서 뉴욕의 어디 길거리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찍는걸 본 기억이 있다.


희망은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가.

나는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잡고, 붙잡아보려고 얼마나 애썼는가.

한가닥 희망을 붙잡아서 제대로 키워보려고 발버둥친 그 시간들.

희망만이 살 길이었고, 희망이 없는 삶은 무의미했다.

내게 희망은 진리였다.


앞으로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

아이가 언젠가는 정상발달이 되어서 남들처럼 대화도 편하게 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평범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될 거라는 희망.

내가 이렇게 노력하면 다 이루게 될 거라는 희망.


매일같이 처절하게 희망했고, 희망은 언젠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처럼 여겼다. 그러지 않으면 삶의 이유가 없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박경리, 토지>



우리는 한해를 희망으로 시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희망이 망상이 돼서도 안 된다.
진실을 마주 보는 용기와 현명한 판단이 진정한 희망을 만들고 결실을 낳는다.

<무명 역사학자>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종교이자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고통의 근원이다. 그래서 이 단어를 접하면 가슴이 설레면서도 숨이 막히면서 조여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과연 나의 희망은 이루어질까.

희망없이 사는 삶을 나는 상상할수나 있나.

나는 희망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꿈꾼다.

어느 역사학자가 말했듯 망상이 아닌 희망을 꿈꾸기 위해서 얼마나 큰 용기와 현명함이 필요할까.

그게 나한테 있기는 할까.

그래서 희망은 늘 어렵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