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에서 만난 꼰대아저씨

패키지투어의 장단점에 대한 고찰

by 레이첼쌤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주로 대가족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행의 형태도 바뀌었다. 결혼 전에는 주로 자유여행이나 아니면 자유일정을 동반한 투어상품을 선호했다.


가이드에 질질 끌려다니는 그런 여행 아닌 여행은 질색이었다. 책을 보고 내 두발로 그리고 눈으로, 직접 그 나라 교통수단도 이영해보고 언어도 써가면서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는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가족, 조카들과 여럿이 다니는 여행을 하면서 세끼니 해결과 투어버스로 편하게 이동하는 장점이 있는 패키지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질색할 정도로 내키지 않아서 그냥 아무 기대 없이 내 몸만 비행기에 실었다.


그게 벌써 세번째다. 나 혼자만 가는 여행이라면 정말 자유롭게, 스스로 써치해가면서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딸린 식구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어쩔 수 없이 패키지 투어를 가게 되었다.


패키지 투어는 참 희한한 점이 있다. 그것은 여행 일정자체보다 같이 다니는 한국인 투어팀 구성원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전에 갔을 때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팀이어서 별다른걸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녀온 여행에서는 거의 30명 가까이 하는 거대한 규모의 패키지팀이었다. 나이, 성별 상관없이 랜덤으로 사람들 30명이 모이니 참으로 그 구성은 가지각색이었다. 그 안에서 그야말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관광지보다 우리 패키지팀 사람 구경이 더 재밌을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너무 사람이 많으니 우리 가족 챙기는데에도 급급해서 다른 사람들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다. 비행기 타기전 공항 대기 시간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은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부터도 이미 상당한 피로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초반에는 각자 짐 챙기고 호텔 체크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 이틀 일정이 시작되면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극외향성의 사람들이라고 해야할까.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크고 말이 많은 분들이 있었다. 특유의 사투리 억양도 굉장히 세서 어딜가나 눈에 띄었다. 그 멤버 중 한 아저씨가 영화 나홀로집에 나오는 도둑 중 키 작은 배우랑 너무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케빈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케빈아저씨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꼰대였다. 일단 목소리가 너무 컸다. 어딜가나 눈에 튀었다. 단체 관광이기 때문에 시간 약속도 성실히 지키고 모이라는 시간에 모여야하는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어디선가 늦게 나타나고 그러면서도 나머지 사람들에게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나타났다.


가이드에게도 이것저것 거침없이 질문을 해댔다. 중간에 말을 끊는건 기본이고 자기보다 어린 가이드에게는 본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서 반말을 했다. 불평불만도 많았다. 다들 속으로 생각할만한 이야기도 생각나는대로 그냥 떠들어댔다.


저 아저씨 정말 뭐냐고, 비호감이라고 우리는 욕을 했다. 또 저 아저씨만 늦게 왔다고,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이번에는 어디 간거냐고 우리끼리 계속 이야기를 했다. 결국 일정 내내 그 케빈아저씨는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같이 여행온 멤버들도 가족이 아닌것 같았다. 뭔가 수상했다. 친구라고 하기엔 좀 어색해보이고 그렇다고 가족도 아닌것 같아서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십여년전 태국 패키지 여행에서 만나서 친해져서 그 인연으로 또 같이 여행을 오게 된 거라고 했다. 참 희한한 관계다 싶었다.


케빈아저씨는 외국 현지 사람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거나 궁금한게 있어서 물어볼 때도 거침없이 우리 말을 썼다. 우리 말을 이해하는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긴 말, 짧은 말 할 것없이 우리 말로 엄청 길게 말을하면 다들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뒤늦게 가이드가 나타나서 도와주거나 옆에있던 우리가 나서는 식이었다. 고마워하는 기색도 별로 없이 똑바로 해야지 하면서 가버렸다.


저녁에 일정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가면 좀 안보인다 싶어서 편했는데 호텔 복도에서도 옆 방에 있는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조식 먹으러 가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가이드가 여행지 설명을 하고 있으면 듣고 있다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전혀 다른 화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치 이야기까지 하면서 가이드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라서 좀 근엄해보이는 멤버가 뭐라고 한 마디하면 금세 꼬리를 내리고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짧게 주어지는 자유 관광 시간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거기 투어버스 있는데 아니라면서 우리를 챙기려고 그랬는지 엄청 큰 목소리로 자기를 따라와야 출구가 나온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길래, 우리는 화장실에 가는거라고 같이 악을 썼다. 누가 보면 이십년지기 친구의 대화로 느껴질 정도로 나도 편하게 화장실 가니까 갈길 가시라고 소리를 질렀고 케빈아저씨는 그제야 알겠다면서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챙겨주려는건가 싶었다.


패키지투어의 일반적인 일정 중 하나인 쇼핑센터 투어에서도 물건을 잘 못 사서 카드 결제가 잘못되는 바람에 한참을 또 가이드 욕을 하고 쇼핑센터 직원들 욕을 해대는걸 들어야만 했다.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꼰대가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는 그냥 그 아저씨가 무슨 말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이 케빈아저씨 말고도 투어구성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가 지긋이 있어보이는 여성분과 좀 젊고 스타일 좋은 남성분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두 관계가 뭘까 의심했다. 처음에는 나도 당연히 모자 관계가 아니겠냐고 했는데 다른 분들은 아닐거라고 그러기엔 여성분이 너무 젊고 세련되었다고 연인관계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등떠밀면서 가서 물어보라고 했는데 결국 일정 끝날때까지 못 물어봤다.


평범한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또 나이가 있어보이는 어떤 할아버지 관광객은 혼자 오셨다고 했다. 그 분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를 못했다. 여행 내내 사진만 열심히 찍으시는것 같았다. 왜 혼자 오신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보는건 실례인것 같았다.


우리가 타인을 궁금해하는것만큼 다른 분들도 우리 가족 관계를 물어보고 자세히 알고 싶어했다. 설명해주니 그제서야 알겠다면서 궁금증을 해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이트한 일정을 다 마치고 우리 나라 공항에 들어오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여행이 즐겁다고는 해도 다시 돌아올 내 나라, 내 집이 있어서 즐거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엄청난 한파로 추운 날씨였지만 우리 나라 냄새를 맡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공항에서도 케빈 아저씨는 튀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근데 정말 이상한 건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투어 멤버들이 자꾸 생각난다. 다들 집에 조심히 가셨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특히 케빈아저씨가 자꾸 떠오른다. 설마 며칠동안 미운 정이 든건가? 그 아저씨도 집에 잘 가셨겠지. 생각해보면 그 분 덕분에 더 많이 웃었고 빵 터진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5일동안 머나먼 타지, 해외에서 같이 놀고 먹고 다닌 그 농축된 시간의 힘이 생각보다 큰 듯하다.


여행지에 대한 기억보다 같이 다닌 투어 관광객 기억이 더 크게 남는다는게 우습기도 한데, 이렇든 저렇든 여행은 즐기고 추억하기 위해 가는거니까 나쁘지 않은듯 싶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음 번에는 그냥 단촐하고 편하게 자유 여행을 가는게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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