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각성하라

브리저튼 시즌4 앓이중

by 레이첼쌤

넷플릭스의 Bridgerton(브리저튼)을 좋아한다.

브리저튼가 셋째 자제 콜린과 외모에 자신감이 없고 소심한 페넬로피가 주연이었던 시즌3를 아주 재미있게 봤다.


처음 시즌1을 봤을 때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일정도로 수위가 높아서 놀랐던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시즌이 발표될 때마다 놓칠 수 없었다.


이번 시즌4를 보고 나서는 뭐랄까, 더 심하게 푹 빠져서 도저히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왜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18세기 영국 왕정 귀족 청춘들의 사랑놀음 이야기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것인가. 한심스럽게.


그래서 브리저튼이 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있고 재밌을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내가 빠질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거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브리저튼 매력요소1

브리저튼의 영상미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볼거리가 정말 풍성하다. 18세기의 영국 왕실 내외부, 귀족들의 저택과 별장이 기본 배경이다. 아무래도 실제보다 더 화려하게 재연해놓은것 같다. 그 배경에서 하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살아가는 귀족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사교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딯은 젊은 처자들의 주요 인물이다보니, 그들이 입는 드레스와 헤어스타일도 당대 최고로 예쁘고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정말 매일 저렇게 예쁜 드레스만 입고 살았을까 싶다.


저택 내부의 인테리어 디테일도 처음에는 대충 봤는데 자세히 보다보면 옷장이며 티테이블, 소파, 찻잔까지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지 모르겠다.


스토리 요소를 다 떠나서 화려한 볼거리에만 집중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여길만큼 굉장히 공을 들인 느낌이다.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어서 눈을 뗄수가 없다.




브리저튼 매력요소 2

인종의 다양성이다. 현재 영국 왕실 해리 왕자의 배우자 매건 마클을 제외하고는 현실속 영국 왕실은 온통 백인인걸로 알고 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전통이고 현실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브리저튼에 출연하는 여왕은 흑인이다. 피부색이 밝은 편이기는 하나, 아무튼 인종적으로는 흑인이다. 과거 영국 왕실에 흑인이 과연 있었을까, 아니 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브리저튼이 판타지인거겠지.


그래서 참 마음에 든다. 주요 가문 출연자들은 대부분 백인 위주긴 한데 시즌2 첫째 아들 앤써니 배우자도 인도계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왕 곁을 늘 보좌하고 사교계에서 힘 깨나 쓰는 레이디 댄버리 역시 흑인이다. 이것만해도 놀라운데 이번 시즌4의 여주인공은 아시안이다. 그것도 한국계 호주 출신 배우라니. 처음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아시안이 브리저튼의 주인공 포지션을 잘 소화해낼지, 과연 브리저튼가 둘째 아들과 잘 어울리기는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보고나서는 그런 의심들이 싹 걷혔다.


시즌4 여주인공 하예린은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정통 미녀상은 아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수지, 고윤정같은 느낌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얼굴형까지 완벽하게 교정된 요즘 느낌의 미녀상이 아닌데도 브리저튼을 보다보면 이 배우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지컬이 자연스럽고, 길고 깡마른 비현실적인 느낌보다 적당히 날씬해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배우의 연기가 더 돋보이는듯 하다. 브리저튼 연출진의 영상미가 이 배우를 아름다워보이게 하는건지, 소피백 자체가 원래 예쁘고 빛나는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인것같다.




브리저튼 매력요소 3

배경음악이 너무 좋다. 물론 과거 궁정 배경이기 때문에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 위주 음악이기는 한데 모짜르트나 베토벤 느낌이 전혀 아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새로 만들어내는 음악인것 같다. 심지어 시즌3에서는 BTS의 다이너마이트 음악 오케스트라 버전 박자에 맞춰 귀족들이 파티에서 춤추는 장면이 연출됐다. 어찌나 반갑던지.


백미는 19금 장면에서 나오는 배경음악인데, 그 분위기에 어쩜 그렇게 절묘하게 맞춰서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내 가슴이 다 떨려서 죽을것만 같았다. 에피소드마다 상황과 스토리에 맞게 음악을 따로 짜는것 같다. 음악감독 진짜 상줘야된다.




브리저튼 매력요소4

19금 장면을 맛깔나게 연출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너무 야한거 아닌가 싶어서 보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다시 자세히 보면(?) 노출이 그다지 심한 편도 아니다. 시대 배경도 있고 귀족들의 지체도 있다보니 노출은 최소화 하면서도 섹슈얼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아주 신경쓴 것 같다.

어딘가에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야한 장면은 한 번도 안나오는데 유독 긴장감과 섹슈얼함을 은근히 뿜어내는 씬이 있다고, 그걸 분석해놓은걸 본 적이 있다. 나도 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좀 거시기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 장면에 각도와 배우의 위치들이 아주 교묘하게 섹슈얼함이 배어나오도록 배치해놓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브리저튼도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얼굴 표정과 음악 등으로 거부감 들지 않으면서도 야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장면을 잘 연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관음욕구를 아주 만족스럽게 충족시켜준다.





브리저튼 매력요소5

귀족집안 자제들 중에서도 선남선녀들의 사교계 이야기가 주도니 소재이지만, 이 로맨스는 외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외모로 끌리는 면도 있지만 서로 나누는 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되는 경우가 많다. 브리저튼 남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면들을 자극하는 요소를 여주인공들은 지니고 있다.


시즌4의 베네딕트도 소피 특유의 천진난만해보이고, 순수한 인상에 처음에는 끌린걸로 묘사된다. 하녀로 나오기는 하지만 소피는 사실 사생아라고는 해도 귀족 집안의 자녀였고 어릴적부터 귀족 수준의 교육을 받아서

독서수준도 높고 외국어도 잘하고 예술을 보는 안목도 있다. 그런 교육수준, 문화적 수준같은게 짧은 대화속에 간간이 숨길수 없이 터져나온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대화 수준이 맞지 않거나 각자의 취향을 애초에 이해할 수가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베네딕트가 과연 소피에게 끌렸을까 싶다.


시즌3에서 콜린이 페넬로피에게 반하는 장면 중 하나에도 콜린이 쓴 저널을 페넬로피가 우연히 읽고 잘 쓴 글이라고 칭찬해줄 때가 있다. 외모를 치장하고 조금이라도 남들 눈에 더 띄어서 시집 잘가는게 목표였던 당대 귀족 아가씨들에게 페넬로피처럼 책과 글을 좋아하는 특성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글을 읽는 안목이 있었기에 콜린의 글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도 됐던 것이다.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호감, 외모 하나를 무기로 삼아 첫눈에 반하는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넘어서는 장면들을 보여줘서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특별히 시즌4가 더 재밌는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동안은 아예 다뤄지지 않았던 귀족 이외의 사람들, 하녀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저 고귀한 계급들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기만 했지, 그 정도 수준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하녀들의 노동이 필요로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매일 그들의 응접실에는 예쁜 그릇에 디저트와 찻잔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건 모두 집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거였다.

하인, 하녀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줘서 그 당시 사회상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시즌4 전까지는 레이디휘슬다운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면이 아주 컸는데 그 부분에서는 너무 느슨해져버렸다.


심지어 여왕이 대놓고 페넬로피를 데려다가 레이디 휘슬다운 글을 읽어보라는 둥, 다음 내용을 뭘 쓸건지 등 대놓고 물어볼 때는 저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럴수록 더더욱 레이디 휘슬다운은 더 위축되지 않을까.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가 더 솔직하고 뾰족한 글이었는데 말이다.


브리저튼 가문은 8명의 자녀들이 나오는데 다들 개성있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그 중에서도 결혼을 거부하고 책에만 묻혀사는 엘로이즈가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파티에 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아무 의미 없는 형식이라고 치부하며 여성의 인생에는 시집가는거 말고 뭔가 더 있을거라고 믿는다. 기존의 사회체계나 관습을 거부하는 모습이 나오고 그러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낀다. 기존 귀족 여성들의 평범한 모습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그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또 다른 감초 역할이 있는데, 그건 바로 페넬로피의 엄마 레이디 페더링턴이다. 정말 이 분 때문에 웃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집안 체면밖에 모르고, 딸들을 혼사를 통한 거래 도구로 여기며 다분히 이기적이고 얄밉기까지하다. 오로지 재산과 지위와 체면유지 궁리에만 몰골하는 여주인 캐릭터다. 처음에는 밉기까지 했는데 시즌이 지날수록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정이 들어버렸다. 더 많은 장면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나는 브리저튼에 대한 글을 이렇게 길게 써버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시즌4가 정말 어이없게도 전체 8화 중에 절반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뒷 이야기가 너무 너무 궁금한데 거의 한달이 지난 후에 공개 예정이다. 정말 황당하다.


원래 넷플릭스는 태생 자체가 정주행하라고 만들어진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게 본질 아니었나?

그런데 넷플릭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절반 공개라는 황당한 정책을 만들어냈으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날마다 브리저튼 팬들이 쏟아내는 시즌4 뒷이야기 추측성 글들에 의존하면서 허망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보던거 또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당장 후반부를 공개하라. 넷플릭스는 왜 이런 장난을 치는것인가.

얄팍한 마케팅에 내가 넘어갈거 같으냐.

후반부가 공개될 때까지 나는 길잃은 어린 양이 되어 방황하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