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기대 보려고요
나는 종교적 믿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혹시나 신실하고 신앙심 깊은 기독교 신자분들께는 이 글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음을 미리 언급한다.
그러나 교회에 관해서는 할 말이 굉장히 많다.
어릴 적 유치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성실하게 일요일마다 교회에 출석했고, 친척분 중에 신학대학을 나와 목사님이 되신 분도 있고, 교회 권사님을 지낸 분들도 여럿이다. 집안에 우리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가족 친척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집만 예외가 되었던 이유는 바로 제사 문화를 중시 여겼던 친할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아빠가 큰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엄마도 큰며느리였기에 제사에 대한 의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으면 교회를 나갔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안 계신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종교 생활을 하시진 않으니까.
막내삼촌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굴지의 대기업에 어렵사리 취직해서 다니다가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신학대학을 나와 개척교회를 운영하셨다. 경제적 안정을 버리고 돈벌이가 보장되지 않는 신학자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아빠를 포함한 온 가족이 반대하고 비난했지만 이미 성인이 된 삼촌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친할머니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는 갑자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서 할아버지의 화를 돋우곤 했지만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며 죽음을 직감하셨을 때는 장례를 꼭 교회식으로 치러달라고 자식들에게 부탁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어려서부터 평생을 유교 문화 속에서 일 년에 몇 번씩 집안제사를 치르며 살아왔던 할머니가 어떻게 해서 기독교적 신앙심이 생겨나게 되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시골마을에 교회당에는 일요일이면 할아버지들보다는 부쩍 할머니들이 많이 오는 걸 볼 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평생 집안일과 살림, 시집살이와 농사일 등에 지쳐버린 할머니들의 일종의 반란이 아닐까 싶다. 일주일에 하루, 단 한 시간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어딘가에 기대고 의존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할머니를 교회로 이끈 건 아닐까.
집안 친척들이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많았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녀서 그랬는지 나도 일요일이면 매주 교회에 부지런히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주말에 딱히 가족끼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따로 나를 데리고 어디 체험을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니 할 일이 없어서 교회에 보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어린 마음에 무슨 생각으로 교회에 나간 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가면 열심히 기도도 하고 찬송가도 부르고 부활절, 성탄절 각종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주기도문도 열심히 외우고, 성경책도 무슨 뜻인지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 교회에서 나눠준 양식에 매일 체크해가며 성경 전체 1회독하기 같은 과제를 달성하기도 했다. 예배 중에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기도 시간이었다. 예배를 하면 몇 차례의 기도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답답해서 가끔 실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도 정말 다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있는지 몰래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다시 질끈 눈을 감고 그 지루한 기도시간이 언제 끝날지 마음속으로 시간만 재고 있었다.
하느님, 예수님에 관한 성경 이야기와 감동적인 일화들만 수없이 들었지만 그 당시 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토록 전능하신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지, 예수님은 왜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고 멀고도 먼 나라에서 사시다가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건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원초적인 의문과 의심을 신앙심 깊은 친척들에게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왠지 이런 내 생각을 들키면 사탄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깜짝 놀라실까 봐 말을 꺼낼 생각조차 못했다.
중학생이 되고 갑자기 왜 그만 다녔는지는 모르겠는데, 교회에 함께 나가던 친척분들도 다 멀리 이사를 가버렸고 부모님의 강제도 없었기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무교인으로 살았다. 그토록 신앙심 깊고 교회에 헌신했던 삼촌은 개척교회 목사님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어려워졌고, 아빠는 그런 자신의 동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때 그 대기업을 스스로 나온 것에 대해 두고두고 비난했다. 주변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사람들이 내 눈에 모두 한결같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어느 정도 행복이 보장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믿으면 되니까 굳이 종교에 기댈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시어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과 그에 반해 시아버지는 제사를 중시하는 정통 유교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시어머니를 시아버지는 늘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내 남편과 친형인 아주버님도 교회를 싫어했고 무교였다. 시어머니는 결혼할 때 며느리 두 명을 얻게 되었는데 둘 다 믿음이 없어서 아쉽다, 고 표현하셨지만 시아버지께서는 그런 어머님이 안 계실 때마다 우리에게 절대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하면서 어머니는 교회에 너무 빠졌다고 못 말리겠다면서 은근 험담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교회 권사님 자리까지 올라가셨지만 나에게 교회를 절대 강요하지 않으셨고, 나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교회에 다시 한번 나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 때문이었다.
발달이 느리고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를 위해 주말마다 남편과 나는 여행을 가든지, 멀리 사는 조카들을 만나게 해 주던지, 체험을 시켜주려고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4년 가까이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아이를 데리고 다닐만한 곳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근교 지역 웬만한 곳은 다 가보기도 했고 어릴 때는 멋도 모르고 잘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조금 시시하다 싶은 곳은 가기 싫다고 의사표현까지 하다 보니 더 고민이 되었다. 남편은 별 계획 없이 늘 내가 검색하고 알아본 곳으로 따라다니는 편인데 거리가 좀 있고 피곤한 일정이다 싶으면 내켜하지 않아서 눈치가 보였다. 언제까지 일요일마다 어디 데리고 다닐지 고민해야 하나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우연인지 같은 센터에 다니는 엄마들이 모두 교인이었는데, 주일학교에 나가면 또래들이 있어서 사회성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니까 코로나 때는 쉬다가 최근에 다시 열심히 데리고 나간다고 하는 걸 들었다. 우리 아이도 차라리 일요일에 주일학교 나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예배를 드려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를 다시 나갈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니, 나의 어린 시절 교회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로서의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렇게 지루했던 기도 시간은 인내심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주기도문 암기나 성경 암송대회에 참여하면서 암기력 연습도 되었고,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인 성경책이지만 읽어보고 낭독하는 과정에서 독해력에도 조금은 도움이 도지 않았나 싶다. 어린이 성가대를 하면서 찬송가를 음에 맞춰서 함께 부르고, 가사도 외웠다. 성탄절에는 무대에 올라가 연극도 했는데 단역이었지만 분장을 하고 대사를 외웠던 그 해의 크리스마스가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생각보다 교회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아이도 일요일에 이런 경험을 하는 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나쁠 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교회에서 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직접적으로 인지적인 능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알 수 없다. 그저 주일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외동인 아이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대뜸 싫다고 대답했다. 교회에 나간다고 없던 사회성이 갑자기 생기느겠냐며 별 의미 없을 거라고 내 의견을 일축했다. 어려서부터 아빠가 그렇게 엄마 교회 나가는 거 싫어했는데 엄마는 끝까지 아빠 말 안 듣고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 살았다며 예전 얘기를 꺼냈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시각이 이러하니 나도 사뭇 당황스럽긴 했다. 이렇게까지 부정적일 줄은 몰랐다. 억지로 설득하는 건 어렵겠다 싶어서, 그냥 이번에 성탄절이고 하니까 체험시켜볼 겸 한 번 데리고 나가보고 애가 영 싫어하면 안 가겠다고 말했다.
센터 엄마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규모가 굉장히 컸다. 그래서 주일학교도 유아부, 유치부, 초등 저학년부 이런 식으로 나이대로 구별되어 있었다. 교회 내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도 있고 신축 건물이어서 그런지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이었다.
주일학교 교실로 데리고 갔더니 선생님들이 아주 반갑게 아이를 맞이해 주었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물어보면서 살뜰히 챙겨주셨고,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나에게 어서 본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재촉했다.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주일학교교사가 여러분 계시는 와중에 그 안에 멀뚱하게 지키고 서있는 꼴도 우스운 것 같아서 나는 따로 성인 예배를 드리러 갔다.
거의 25년 만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큰 교회라서 그런지 성가대의 노래 실력이 정말 대단했다. 가수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잘하는 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성경책도 없었지만 가운데 크게 빔 화면으로 성경말씀도 다 나오고 찬송가 가사까지 보여줘서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오늘의 말씀 구절을 함께 읽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왜 내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나간 교회에서 갑작스럽게 그동안 없던 신앙심이 차올랐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조금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내가 교회에 다시 나간 이유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발달장애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주일학교에서 또래들 좀 만나서 사회성 늘려보게 하려는 것 때문이다. 오로지 내 자식만 생각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종교적 신앙심이 없는 내가, 자식 잘 되게 해 보겠다고 수십 년을 무교임을 자처하면서 살다가,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신 따위는 믿지 않아. 나는 나 자신을 믿어."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던 내가 이렇게 다시 교회에 나와 신성한 예배를 드리는데 함께해도 될 자격이 있는지 몹시 부끄러웠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중에 몇 가지 와닿는 구절이 있었다.
이 세상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
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 굳이 성경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아도, 투철한 신앙심은 없어도 이렇게 목사님이 전하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와 좋은 이야기를 들으러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것도 나 자신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주일학교에서 처음 나온 기념으로 선물도 잔뜩 받고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소개도 하고, 찬송가도 부르고 율동도 하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한 시간이 길다고 느껴질 수 있기에 퀴즈도 하고 기차놀이 같은 레크리에이션 타임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운영하고 있었다.
주의력, 작업기억력, 대근육, 소근육발달이 느린 아이에게 교회에서의 예배 시간은 온통 치료거리로 가득차있는 것 같다. 다른 아이들 율동하는거 보면서 따라하고, 박자에 맞춰 같이 춤을 추면서 동시에 찬송가를 부르고, 어렵지만 성경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문해력에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인상 깊었던 건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다들 인상이 좋고 밝고 적극적이셨다. 아이가 설령 또래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하더라도 선생님들의 기운만 받아도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시어머님께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니 하느님은 기다리고 계셨다며 너무 잘했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축하해 주셨다. 아이 인성교육도 되고 정서에도 도움 될 거라고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씀하셨다. 어머님께 잘 보이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닌데 본의 아니게 며느리로서 점수도 좀 딴 셈이 되었다.
이제 겨우 두 번 나갔는데 아이는 어젯밤 자기 전에 교회가 재미있다고 말해주었다. 일요일마다 아이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했던 남편에게도 잠시나마 쉴 시간을 줄 수 있어 좋고, 나도 주일학교에 맡기고 예배드리면서 생각 정리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어서 유익하다.
어설프게 다시 시작된 나의 신앙생활이 앞으로 어떤 여정을 밟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계속 아이와 함께 나가보려고 한다. 마음이 힘들어 종교에 기대 보려는 내 욕심도 마음 넓으신 하느님이 너그러이 봐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