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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짜리 엄마 되기 프로젝트

과학적 육아 방식을 도입하다

by 레이첼쌤

세상에 과연 100점짜리 엄마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나는 아기를 낳고 키워본 육아 경험이 있는 엄마 치고, 육아가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드물다.


내 주변에서 육아가 쉬웠다고 말한 분이 한 명 있긴 하다. 아들 셋 엄마인데, 성격이 굉장히 유하고 느긋하고 늘 여유로운 분위기인데 아들 셋을 키웠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조금 해보지 그분은 그저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주어진 여건에 맞춰서 잘 적응하시는 분 같았다. 그리고 늘 얼굴 표정에 그늘이 없고 밝으신 분이다. 이렇게 예외적인 사람도 간혹 있긴 하지만, 육아서 같은 책을 쓸 만큼 육아의 달인급 되는 작가들조차 책의 서문은 육아가 본인들도 해 본 일중에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였고, 그랬기에 육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책까지 쓰게 된 분들이었다.


"보통의 정상발달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도 참으로 여러 고통이 따르고 힘들기 마련인데,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ADHD 아이를 한 명 키우는 일은 "아이 열 명을 키우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또래에 비해 감정과 정서 조절이 느리고 행동 통제와 조절이 어려워서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기에 보통 엄마가 한두 번 할 잔소리를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서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행동 교정이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이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감정과 정서를 관장하는 전두엽 발달이 2,3년 느리기에 항상 그 점을 염두하고 있어야 하는데 엄마도 사람인지라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참 힘든 현실이다.


저번 주에는 아침 등교 준비할 때 아이에게 화를 내서 하루 종일 찝찝했던 날이 있어서 혼자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하고 고민한 적이 있다.


세상에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늘 다정한 목소리로 육아에 임하는 엄마가 있을까?

과연 나는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화를 낼 때마다 아이랑 감정적 소모가 심한데, 앞으로도 이를 피할 방법은 없는 걸까?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모양인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중에 이 한 가지 생각에 더 깊게 집중했다.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정말 아이의 발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다방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늘 자부했다. 관련 책을 읽고,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뒤지고, 센터 치료를 받고, 식단 관리를 하고, 일상에서 엄마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주말에는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를 종용하며 살았다. 이제는 휴직까지 하고 거의 아이에게 올인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아이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하고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맞아?

근데 왜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매번 후회하는 거야?

아이는 왜 나한테 엄마는 맨날 화만 낸다고 말하는 거야?

이럴 거면 전처럼 차라리 일을 하고 돌보미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는 게 더 낫지 않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하는 순간들만 더 늘어나서 육아의 질이 차라리 일할 때만 못하다고 느껴지는 때도 많았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열심히 육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분은 대체 뭐야?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 계발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보험업계에서 엄청난 실적을 거둬서 연봉 몇 억을 달성한 사람의 강연이었다. 제대 이후에 보험업을 시작하고 몇 년 내에 돈을 모아 부모님께 1억을 드렸고, 그 후로도 보험 판매에서 최고 실적을 달성하며 더 많은 연봉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 자신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영상이었는데, 그중에 굉장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 오늘 열심히 일했다, 이런 말 하지 마세요.


일 못하는 직원이 꼭 하는 소리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일한 다는 건 무조건 숫자와 통계가 필수라고 했다. 오늘 고객 3명과 꼭 만나겠다, 5번 이상 고객과 통화하겠다, 일주일에 계약 3개를 성사시키겠다와 같이 정확히 숫자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치를 달성했는지 아닌지 여부만 체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채워가면서 조금씩 목표치를 늘리고 또 달성하면 어느새 에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교직에 있는 나는 특히나 이렇게 교육적 활동이나 수업에 대해서 점수화, 계량화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다. 물론 수행평가나 지필평가와 같은 시험은 당연히 점수화하는 것이지만, 교사로서 행하는 교육 활동의 성과나 업적을 정량화해서 점수로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 많은 교사들이 거부감이 있고, 그 점수로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몇 년째 전교조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육의 영역은 감히 점수로 수치화할 수 없는 고유의 주관적인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인데, 나도 어느 정도 그런 시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런데 그 보험왕 영상을 보고 나니 순간 뼈를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매일 다짐하고 다이어리에 쓰면서 기도까지 하지만, 그럼 그 좋은 엄마라는 기준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냥 뜬구름 잡는 식으로 너무 추상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엄마, 백 점짜리 엄마가 되려면 정말로 백점을 맞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사랑하지만 아이를 보다 보면 화 낼 일도 생기고, 혼내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면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매일 아이를 혼내고 화를 내고 있다면 학대하는 게 아닌가?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말과 행동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꾼단 말인가? 나는 여태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다정하고 상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게 가능은 할 일인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평가해보자고.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만 해봤지 정말로 나 자신에 대해 수행평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하루 동안 아이와 함께하면서 일상적으로 하게 되는 말과 행동의 목록을 정리해보고,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정리해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서 점수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엑셀 파일을 열었다. 처음에는 어떤 양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빈 엑셀 양식에서 간단한 표라고 해도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날짜와 번호를 가로와 세로 어디에 어떻게 입력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 나에게 절망했지만, 일단 대충 제목부터 쓰기 시작했다.


한창 고민하다가 가장 큰 제목은 이렇게 정했다.


좋은 엄마 되기 프로젝트


그 아래 소제목으로는 "나의 말과 행동 일일 셀프 점검표"로 정했다. 단순한 제목 같지만 정말 한참 고민하고 생각해낸 것이다. 그다음 아침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아이를 대하는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마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행동을 번호를 쓰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등교할 때 현관에서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라고 말해주기, 학원 다녀오면 고생했어, 잘했어 말해주기, 하루 3번 꽉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이런 식이다.


내 행동을 생각해보니 아이가 게임할 때마다 늘 예민해져서 하기 전과하고 난 후에 언성이 높아지거나 조금씩은 짜증 내는 말투를 사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가 게임을 할 때에도 최대한 안정된 목소리로 이성적으로 대하고 말하기도 추가했다.



매일 날짜를 쓰고 각 항목에 동그라미, 세모, 엑스표를 해서 체크를 하고 동그라미일 경우에는 1점 만점, 세모는 0.5점으로 주는 식으로 해서 점수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점수도 쓰고, 세모나 엑스표에 대해서는 그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 간단히 기록해보기로 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전을 이 양식을 작성하면서 보냈다. 신기한 건 이 목록을 쓴 것만으로도 내 행동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오후에 아이를 볼 때 덜 예민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은 아이가 집에서 새로 받은 로봇 조립 세트에 신이 나서 꼭 하나를 완성해보고 싶다며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 계속 늦어지는데도 끝까지 로봇 조립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이 셀프 점검표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참았다. 그래도 내 기분이 느껴졌는지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화났어?"

나는 대답했다. "어, 지금 네가 피아노 학원에 너무 늦게 가는 것 같아서 화가 나려고 하는데 최대한 속으로 참고 있어."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내 짜증과 화를 잠재우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도움이 되나 보다.


나의 <좋은 엄마 되기 프로젝트>는 여러 장 프린트해서 파일에 끼워놓고 혼자만 보고 체크하려고 했다. 그런데 씻는 동안 어디서 찾았는지 아이와 남편이 찾아내서 같이 보고 있었다. 나는 약간 부끄러워서 이런 걸 왜 보고 있냐고 했는데, 아이는 "엄마, 화내면 점수 깎이잖아. 백점 받으려면 화내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옆에서 공부 지도할 때에도 아이는 "나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칭찬해줘야지. 그래야 엄마 점수에 동그라미 칠 수 있어."라고 말했다.

아이가 직접 본 것이 나쁘다기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혼자 먼저 일어나서 셀프 점검표에 점수를 체크하고 있던 나를 보더니 남편이 하는 말.


좋은 아내 되기 프로젝트도 좀 하면 안 되냐?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좋은 엄마 되기도 이렇게 버겁고 힘든 거다, 이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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