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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사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by 레이첼쌤

특별히 올해에 나와 더 가깝게 맺어진 인연이 있다.

모두 같은 동네에 사는 엄마들인데, 휴직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되니 동네에서 오가며 마주칠 일이 잦아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면 오로지 내 가족인 남편과 아이만 생각하게 되는 현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나마 친해진 동네 엄마들과 만남을 가지고 소통하면서 외롭지 않았다. 일을 할 때에는 당연히 매일 직장 동료들과 관리자,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 일정량의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루 종일 치이다 보면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는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고 오로지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할 때에는 동네 엄마들과 특별히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떠는 것에 대해서도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라고 치부했던 적도 있다. 집에 있다 보니 그 만남들이 엄마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올해 친해진 몇 명의 동네 엄마들 중에 한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분의 아이도 내 아이와 함께 사회성 치료를 받기 위해 같은 센터에서 그룹 수업을 받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아이는 엄마가 일하는 탓에 주로 아빠가 데리고 왔다. 올해에는 그분도 아이를 위해 휴직을 하면서 직접 센터에 데려오기 시작했고, 아이들 수업 보내고 나면 자연히 센터의 학부모 대기실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엄마의 첫인상은 눈이 참 예뻤고, 선 해 보였다. 말투도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편이고 행동도 여성스러웠고 조금은 부끄러움을 타는,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 같았다.

동네에 있는 작은 발달 센터라 대기실도 좁은 편인데 그 작은 공간에서 우리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 아이가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만 해도 대기실에서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섞고 싶지 않았다. 애가 발달이 느려서, 문제가 있어서 치료실까지 데리고 다니는 주제에 뭐가 좋다고 대기실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겠는가 싶었다. 어차피 각자 아이의 발달 상태, 진단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게 뻔하다고 여겼다. 내 아이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겠고 파악이 안되는데 남의 아이 어려운 이야기까지 듣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은 대기실에서 엄마들과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진료 예약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내 주변의 일반적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들을 마음 편히 같이 공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이의 상태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다른 엄마들은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에 몇 년 전부터 발 빠르게 대기를 걸어서 아이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각종 검사도 받았다. 이런 정보는 느린맘 카페에서나 검색하는 정도였는데 직접 미리 겪어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달랐고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센터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매번 갈 때마다 아이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행동들에 관해 수업 후 피드백을 받는건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엄마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졌고, 이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른 주변 지인들에게 쉽게 말하기 힘든 내 속마음이나 아이에 대한 걱정과 괴로움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연유였는지는 기억에 안 나는데, 이 엄마가 나와 아이를 집에 초대했다. 저녁 7시가 되어도 낮처럼 밝았던 여름날, 고기 구워 먹을 건데 함께 하자고 해준 것이다. 별생각 없이 그 집으로 향했는데, 상차림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보통 솜씨의 상차림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상추와 쌈장 정도만 준비하면 끝인데 이 엄마는 정말 식당에서 먹는 것처럼 각종 장아찌와 고기와 곁들을 반찬과 후식까지 아주 푸짐하게 세팅해두고 나와 아이를 반겨주었다.


그 날은 이 엄마를 알게 된 지 몇 개월 정도 된 시기였는데, 나는 그날 마스크를 제대로 벗은 모습을 처음 봤고, 이 엄마가 웃는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센터 대기실에서 만난 그 엄마의 얼굴은 예뻤지만 항상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하긴, 아이 발달 치료로 센터에 오는 부모가 밝고 명랑한 표정을 하고 있는다는 것도 참 안 어울리긴 한다.


그분은 손이 크고 요리 솜씨도 좋아서 아이들 밥도 국과 반찬, 메인 요리까지 준비해서 제대로 먹였다. 만남의 목적은 아이들이 만나서 서로 같이 놀고 친해지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것이었지만, 그 사이에 우리도 같이 음식을 나누고 먹으면서 대화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발달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건 공통점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엄마의 아이가 조금 더 상호작용과 소통이 어려운 편이다. 내 아이도 못지않게 사회성 부족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으로 늘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adhd 약을 복용하고 학교에 가 있을 때는 행동이 도드라지지 않고 자제가 되는 편이라 아이의 행동 문제로 담임선생님의 연락까지 받아본 적은 없다. 오히려 약기운이 올라오면서 너무 긴장한 탓에 수업시간에는 모범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에 가깝다.


그런데 이 엄마의 아이는 약으로는 조절이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학습은 그런대로 잘 따라가는 편이지만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돌발적인 행동으로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엄마는 아이 등교시키고 나서도 늘 불안하고 걱정이 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늘 내 아이를 보면서 부럽다고 말한다. 자기 아이보다 말 표현도 잘하고, 아는 단어도 많고, 똑똑한 것 같다며 자기 아이도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그럴 때면 나는 참 이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난감하다.


"OO이도 많이 좋아졌잖아요."

"OO이도 곧 잘할 거예요."

"아니에요, 우리 애도 아직 멀었어요."

이런 말들을 주로 하긴 했는데, 이보다 더 나은 말을 찾고 싶다.


센터에서는 부러움을 살만큼 나름 에이스(?) 취급을 받는 아이지만, 내 아이도 아직 또래 관계가 서툴고 대화도 산으로 갈 때가 많고, 자기가 꽂힌 것에만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성향으로 힘들 때가 많다.


8살이지만 아이들도 참 영악하다고 느낀 게, 내 아이는 일반적인 정상 발달의 아이들 사이에 있을 때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조금 기죽어 있을 때가 많다. 먼저 말을 건네기보다 묻는 말에 답하는 편이고, 먼저 같이 놀자고 다가서기도 어려워한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말장난이나 놀이를 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같이 놀이터를 지나칠 때면 아는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 놀고 싶어도 말을 못 하고, 엄마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 내 아이가 조금 더 어려움이 있는 이 엄마의 아이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굉장히 당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자기가 먼저 자신 있게 말을 걸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까지 하고, 자기 말에 집중 안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반응이 나오면 화를 내기까지 한다. 아이들도 귀신같이 아나보다. 상대방이 자기가 해볼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엄마 앞에서 미안하고 당황스러워서 아이를 말려보지만 그런 철없는 우리 아이 말도 잘 들어주고 받아주면서 자기 아이와 짧은 대화라도 시켜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함께 노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마련해주고자 이 엄마는 더 자주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줬고, 요리 실력이 부족한 나는 과일이나 다른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도였다.


이 엄마는 센터에 올 때에도 두 번중 한 번 꼴로 꼭 선물을 챙겨 온다. 시골 친정에 다녀왔다고 감, 고구마 같은 작물이나 채소를 챙겨다 줄 때도 있었다.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 중이었을 때는 집 앞에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온갖 간식을 사서 놓고 갔다. 김장철에는 맛보라고 김장김치를 몇 포기나 챙겨주고, 엊그제 동짓날에는 집에서 수제로 만든 따끈한 팥죽을 챙겨서 가져다주었다. 소풍날에는 어차피 가족들이 다 김밥을 좋아해서 많이 싼다고, 나한테 많이 안 먹으면 일부러 김밥 쌀 필요 없다고 우리 아이 김밥까지 챙겨주었다. 내가 교통봉사날이라 아침에 아이 등교 준비를 해주기 어려웠을 때에는 자기 집에서 밥 먹이고 등교까지 시켜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엄마는 진짜 천사 같아."


그간 이 엄마가 베푸는 걸 봐온 남편도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평상시에 도덕적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정도만 지키면서 사는 편이지, 남을 먼저 생각한다거나 배려한다거나 친절을 발휘하는 면이 좀 부족한 사람이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기브 앤 테이크만 제대로 지키면 된다고 생각해서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주면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얹어서 갚아주면 된다는 식이다. 내가 먼저 베풀고 진심의 마음을 전하는 그런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이 나에게는 충분히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엄마는 뭔가 나눌 것만 있으면 챙겨주고, 나눠준다. 전형적인 기버(Giver) 형이다. 아이들에게도 모든 면에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한다. 발달이 느린 아들을 가르치려고 롤러스케이트를 직접 배우기도 하고 상담심리 대학원 진학을 위해 공부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이고 더 노력이 필요한지 역설한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한 엄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착하고 선한 사람에게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을 주셨을까? 나는 착하지 않아서 내 아이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그런 논리는 아니다.


그저 궁금하다. 천사같이 남에게 늘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과 따뜻하고 친절한 행동까지 지닌 이 엄마가 왜 아이로 인해서 고통받아만 하는 건지. 아이 걱정하느라 불면증을 겪고,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착하고 선한 인상을 가졌지만, 어딘가 모르게 늘 걱정과 불안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이 엄마를 보면서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이 분은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도, 일확천금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면서 주변에 선하고 착한 기운만 베풀었던 것 같은데, 자식으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게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착하고 선하게 산다고 해서 무조건 복 받는 것도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분의 아이가 얼른 더,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내 아이도 함께 좋아졌으면 좋겠지만, 그 아이도 학교에서 전화 오지 않을 정도로만, 이 엄마가 등교시켜놓고 불안에 떨지 않을 만큼만이라도 좋아지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네가 남 걱정 할 때니? 네 자식이나 잘 키워."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남 걱정을 한 적이 있나 싶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깨닫는 것 중 한 가지는 부모와 배우자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나를 힘들게 하는 것보다, 자식이 뭔가 어렵거나 잘못되었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비할 수 없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다른 무엇보다 그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인가를 깨닫는다.



<주의력 연습>이라는 뇌과학과 관련 책을 읽는데 소개된 명상법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연결 명상" 혹은 "자애 명상"이라고 불리는 건데 우리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능력을 키우는 명상법이다.


명상 자세로 앉아 다음의 문구들을 속으로 외운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건강하기를
나의 안전이 지켜지기를
내 삶이 평안하기를

다음으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 내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불러낸다. 다음 문구를 암송하면서 그 사람에게 선의를 전한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당신이 건강하기를
당신의 안전이 지켜지기를
당신의 삶이 평안하기를

<아미시 자, 주의력 연습>



이 부분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이 엄마가 떠올랐다. 매일 명상을 하면 집중력과 효율성이 좋아지고 불안감 조절에도 좋다기에 나도 새해부터 시작해보려고 마음 먹은 참이다. 매일 실천은 어렵더라도 가끔은 이 엄마를 위해서 연결 명상을 해봐야겠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당신의 안전이 지켜지기를, 당신의 삶이 평안하기를.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엄마를 위해 정말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이 분이 세상에 베풀고 전하는만큼, 세상도 이 분에게 조금은 더 공평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나도 새해에는 그분이 나에게 보여준 것처럼 조금 더 따뜻하고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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