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어머니, 다 내 새끼 위해서 하는거야

녹색어머니 교통봉사 체험

by 레이첼쌤

학기 초에 각종 학부모회 모집에 관한 가정통신문이 왔다. 항상 학교에 근무하면서 부모님들께 발송하는 입장에 있다가 내가 직접 받아보는 입장이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올해는 휴직도 했겠다 일할 때보다야 시간적 여유가 허락될 거라는 생각에 나는 호기롭게 <녹색어머니 교통봉사>에 신청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새끼를 위해서다.

담임을 맡을 때마다 학기 초만 되면 학부모회 구성에 애를 먹었다.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교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봉사해주시는 열혈엄마를 제외하고는 모집하기가 어려웠다. 일하시는 엄마들도 많고 초등학생이면 모르겠는데 중학교다 보니 더 참여도가 떨어지기도 해서 나는 상담 때마다 엄마의 성향을 보고 조심스럽게 부탁드렸다. 물론 거절당한 적이 더 많지만 어렵사리 해주시겠다고 수긍해주면 얼마나 감사해했는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만큼 학부모회 활동이 활성화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구색은 갖추기 때문에 학기 초마다 담임에게는 또 다른 업무적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내 아이 담임선생님은 그런 부담을 덜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가지 학부모회 모임 중 교통봉사를 신청했다. 사실은 담임선생님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이거 하나라도 하면 혹시나 내 아이를 조금이라도 잘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아이의 원만한 학교 생활을 바라는 내 욕심과 욕망에서 기인한 마음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얼마 후에 날짜별로 명단이 정해져서 안내문이 왔는데, 순서가 고학년 학부모부터 3월에 시작하고 순차적으로 내려와서 저학년은 학기말에 하게 되는 식이었다. 저학년 중에서도 가장 어린 1학년 학부모인 나는 1년 중 가장 추운 12월 말로 배정되어 있었다. 봄, 가을에 날씨 좋을 때 하면 덜 부담될 것 같은데 너무 추울 때 해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추위에 워낙 약하고 수족냉증도 심한 터라 추운 바깥에서 40분 가까이 서있어야 하는 건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연말이라 아직 멀었으니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지냈는데 벌써 올 한 해가 다 가고 내 차례가 온 것이다.


교통봉사를 하게 되면 아침에 8시 15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그 시간에 아이를 돌봐줘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에게 말해보았지만 출근 시간을 늦추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애 봐줄 사람도 없는데 왜 신청했냐고 나무랐다.


왜 신청하긴? 다 애를 위해서 하는 거지.




나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를 물어보는 남편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일 년 중에 이틀정도는 아들을 위해서 아침 시간을 조정하든지, 좀 희생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었다. 어차피 남편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 작년까지 봐주시던 이모님께 아침시간을 부탁드릴 예정이었는데 혹시나 남편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12월이 되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해가 짧아져서인지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걸 갈수록 더 힘들어했고, 학교가 바로 집 앞임에도 거의 등교시간 마지막에 가까스로 맞춰서 등교하기 일쑤였다. 아침에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밥을 먹이고 씻기고 약까지 챙겨 먹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운 날씨야 아래위로 내복 든든히 입고 가장 두꺼운 패딩에 핫팩까지 준비해서 나가면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저번주처럼 폭설이 내렸을 때는 더더욱 암담했다. 폭설이 내리던 연이틀은 우산을 써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잠깐만 밖을 걸어도 눈으로 온몸이 뒤덮일 정도였다. 아이들이 신호등을 건너 학교에 가는 길도 상당히 위험해서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같은 반 엄마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남편이 대신 나가서 해주었다. 나는 남편찬스를 쓸 수도 없는 처지라 무조건 내가 해야만 한다.


내가 하는 날에는 제발 눈과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내가 이렇게 걱정하면 할수록 남편은 "그러게 왜 신청해가지고 이 호들갑이냐"는 식이었다. 교통봉사 한다고 담임선생님이 애를 더 이뻐해 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뭣하러 한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나도 남편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말았다. 우리 반 학생의 학부모가 아무리 학교 일에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더 예뻐한다거나 관심을 더 주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알아서 학교 생활 성실히 잘하고 선생님 눈밖에 날 행동만 하지 않으면 자연히 이쁨은 받게 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일 년에 고작 이틀하는 교통봉사로 뭔가를 기대했다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국 교통봉사날은 다가왔고 아이는 동네친구집에서 아침에 잠깐 있다가 등교하기로 했다. 그 집에 데려다주는 것만 남편이 해주기를 바랐는데 바쁘다고 어렵다고 했다. 평소보다 일찍 아이를 깨워서 대충 세수만 시키고 잠이 덜 깬 아이 신경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비위 맞춰주며 유치원생처럼 옷까지 다 입혀주고 집을 나섰다. 나도 핫팩에 최대한 무장하고 눈이 아직 덜 녹아 미끄러운 단지 내를 걸어 친구네 집에 데려다주고 학교 앞으로 향했다.




나 말고도 같은 반 학부모님 한 분이 더 계셨고, 배움터 지킴이분까지 해서 3명이서 신호등에서 깃발을 들고 교통 지도를 했다. 너무 추워서 마스크 안으로 콧물이 계속 질질 흘러내렸고 손, 발이 얼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내가 즐겨 봤던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의 화려한 주인공들이 아가씨보다 더 아가씨 같은 예쁜 외모로 무장하고 우아한 자태로 신호등에 서서 교통 봉사를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은 아이들이 올 때마다 인사하고 짧게 대화도 하셨는데, 참 대단해 보였다. 교통지도 하나만 해내는 것도 나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는데 아는 아이들은 이름을 불러주면서 한 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게다가 나야 일 년에 이틀이지만 이 분은 거의 매일 하시지 않는가. 갑자기 겸허한 생각이 들었고, 힘들다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으니 기분이 괜찮아졌다.


한참 무념무상으로 신호등 색깔이 바뀌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모르는 얼굴이 다가와서 "OO이 어머님 아니세요?"라고 했다. 나는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생각하며 미심쩍은 얼굴로 "네.." 했는데 바로 그분은 아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추운데 정말 고생하신다고 감사 인사를 하셨다.


나는 아이가 어젯밤에 담임선생님이랑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운해하면서 눈시울이 빨개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올 한 해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전했다. 선생님은 순간 우리 아이에 대한 칭찬거리라도 말해주어야겠다 싶었는지 "요새 OO이가 미술 실력이 부쩍 향상되었어요."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만들어오는 미술작품들 보면 내 눈에는 갈수록 허접해지는 느낌이라 이럴 거면 미술학원은 왜 다니냐 싶었는데 이상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미술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다니.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좋은 말 해주고 싶으신 마음에 하신 말씀인 것 같기도 했다. 수고하시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학교 정문으로 출근하셨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말할 수 없는 벅찬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교통봉사를 했지.



코로나로 학부모 상담도 비대면 방식인 전화통화로 하느라 담임선생님 얼굴을 제대로 뵌 적이 없다. 입학식날과 수업공개날에 잠깐 뵌 적은 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고 머리스타일로 달라져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이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담임선생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기회는 더더욱 없는데, 이번 기회에 선생님 얼굴도 보고 잠깐의 순간이지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기분이었다.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학기말이라 이제 겨울방학이 2주가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는 거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내 아이가 교실에서 좀 부족한 행동을 하더라도, 어설픈 실수를 하더라도 아주 조금은 너그러이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생겼다. 내 자식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봐달라는 그 작은 기대감으로 그 많은 엄마들이 학부모 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닐까.


이제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선생님께 물질적으로 감사의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기에,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제한적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엄마가 학교에 방문할 때는 간식과 촌지를 준비하는 게 당연한 관행이었다. 아니, 그런 문화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아이는 선생님복을 타고난 건지 몰라도 1학년 선생님들 중에서도 다른 반 엄마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평판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매일 밴드에 그날의 학습활동을 사진과 함께 꼼꼼히 올려주셔서 학부모들이 확인할 수 있게끔 해준다. 아이들 활동 사진과 함께 올려주시는 설명과 멘트들에서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혼낼 때에도 웬만하면 복도에 따로 불러서 일대일로 지도하시는 편이고, 아이의 단점보다는 최대한 아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작년에는 6학년 담임을 하셨는데 졸업식 날 다른 반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인데 유독 그 반 아이들이 선생님이랑 헤어져서 아쉽다고 눈물바다가 됐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이해가 갔다.


아이도 학교 생활에 관해 내 직성이 풀릴 만큼 자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 선생님은 친절해서 화를 안 내셔. 옆 반 선생님은 자주 화내고 혼내는 소리가 복도에 다 들리는데."라고 표현한다. 엊그제는 정말 선생님이랑 헤어질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2학년 되기 싫다고 울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교통 봉사를 하고 집에 들어올 때쯤이면 장갑을 낀 손이 차갑게 얼어붙어있고, 흘러내린 콧물이 인중에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전 날 긴장해서 밤잠을 설친 탓에 피곤함이 몰려와서 앉아만 있어도 잠이 쏟아졌다. 평소와는 다른 아침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적잖은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틀간의 교통 봉사는 끝이 났다. 뿌듯했고 성취감도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지만,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끝까지 해낸 경험이 나를 조금은 성장시킨 느낌도 든다. 늘 교사의 입장이었는데, 학부모의 마음으로 학부모만이 할 수 있는 봉사를 해보는 것도 내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부모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나도 조금씩 철이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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