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리]
한 번은 지인이 찍은 다큐멘터리의 러프컷을 시사한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는 미혼모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 그중 출산의 과정을 담은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계속 났었다. 적나라한 앵글로 담기진 않았지만 러프컷이었기에 편집되지 않은 출산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출산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은 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미디어를 통해서 알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본 미디어에서의 출산은 비명을 지르는 산모와 머리채를 잡힌 남편, 그리고 아기의 울음소리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처음으로 본 다큐멘터리에서의 출산은 오히려 비장했고, 심지어 힘을 주는 산모의 호흡 소리를 제외하면 조용할 정도였다. 머리채를 잡힐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다(결과적으로 그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오진 못했다).
미디어가 다룬 엄마는 이렇게 현실과 다르다. 미디어가 신성화한 엄마, 모성애, 어머니는 힘이 세다, 뭐 이런 말들은 현실의 엄마들을 억눌렀다. 현실적인 육아를 그린 툴리는 그것을 깬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캐스팅도 좋다. 육아의 힘듦을 모를 것 같은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도 출산 이후의 체중 변화는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표현하는 듯한 캐스팅과 연기였다.
엄마 생각이 났다. 늘 일을 하고 싶어 했던 엄마가 나와 동생을 낳고 커리어를 포기한 엄마.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일을 포기했던 엄마의 삶이 행복하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놓고 정작 그 이유에 대해 쓰진 않으려 한다. 글을 읽은 분들을 좀 궁금하게 만들고 싶어서 평을 남기자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의 제목이 툴리인 이유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