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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Mar 29. 2023

그의 지평선은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이겠다

[파벨만스]

*스포일러 있습니다.


파벨(fabel, fable의 독일어)만은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예술은 이야기이고, 예술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영화감독은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새미는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불륜을 알았을 때도, 자기를 괴롭히는 일진에게도 영상으로 이야기한다. 오히려 말로 하는 표현은 서툴다. 첫 영화를 본 이후, 엄마의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데이트를 하던 모니카에게 했던 표현도 어색했고, 아빠와의 소통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영상으로는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삶의 모든 순간을 영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는 가족의 즐거운 캠핑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조차도 카메라를 통해 본다.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들려준다. 이 얼마나 영화적이고 예술적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쓴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말로 표현한 것도 아니고, 영화감독답게 영화로 이야기했다.


자전적 영화의 제목을 파벨만스로 지음으로써 자신을 이야기꾼으로 규정한다. 이야기꾼의 고민은 이야기 밖의 삶과 이야기 안의 삶의 괴리이다. 엄마의 불륜이라는 진실과 (겉으로 보기에) 화목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의 괴리. 자기를 괴롭히던 일진과 영상 속 영웅 같은 로건의 괴리. 그 괴리의 이유는 자기도 말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영상에 담아낼 뿐이다.


영상 속 새미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인종 차별로 인한 괴롭힘도 당하고, 연인과도 헤어지지만 그의 삶이 흥미로울 수 있는 건 삶의 괴로움에도 그의 지평선은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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