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명량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없어도 될 대사가 나온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
이 장면 때문에(물론 영화의 만듦새도 그리 촘촘하진 않다) 영화의 품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애국심은 가치 있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서 강요하는 것은 촌스럽다.
바비는 명량과 패키지로 묶기엔 억울하겠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영화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중후반부의 연설 장면이 ‘영화적’이 되려면, 연설 내용과 비슷한 장면들이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말라야 하지만, 너무 마르면 안 되고, 말랐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려면, 전반부에 그와 비슷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혹은 “예뻐야 하지만, 너무 예뻐서 다른 남자를 유혹할 정도 거나 다른 여자를 위협할 정도면 안돼“ 같은 말을 하려면 그와 연결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야 했다. (연설을 하도 길게 해서 저런 내용이 다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겠지)
이런 연결성 없는 연설은 설득력이 있든 없든, 영화적이지 않기에 영화에서 빠져나오게 만든다.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보면, 명량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명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받던 취급은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잊은 매국노, 혹은 영화에서 말하듯 ‘호로자식’ 이었다.
사실 프로파간다가 시작되는 중후반부를 제외하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며, 바비인형을 소재로 삼아, 마고 로비를 캐스팅한 점은 그레타 거윅이 영리한 감독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라이언 고슬링의 켄도 찰떡같은 캐스팅이었고, 켄(그리고 나머지 켄들)의 사카즘과 코미디도 적중률이 꽤 높았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레타 거윅의 역량은, 전작들을 봤을 때, 더 날카롭게 자신이 믿는 바를 역설하기에 충분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