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
내가 디즈니 좀 봤는데, 전성기의 디즈니였다면 이랬겠지.
*스포일러 있습니다
1. 매그니피코의 논리를 정교하게 했을 것
할아버지 소원이 기타인지 우쿨렐레인지 연주자가 되는 게 소원이라는데, 그것 때문에 로사스가 위험에 처할 거라고 하면서 안 이뤄주니까 납득이 안 된다. 할아버지 소원이 아들인 아샤의 아빠를 되살려달라든지, 또 다른 백성의 소원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거라든지. 뭔가 좀 더 고민해서 약간만 논리의 과장을 보태면 반역죄로 보일만한 소원으로 설정했어야 했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장면처럼 소원을 다 이뤄주면 대혼란이 오기 때문에 매그니피코는 어쩔 수 없다고, 원래 의도는 선했으나 변한 것처럼 했어야 납득이 가는 빌런이 될 수 있었겠다. 그 빌런의 논리를 선한 주인공이 깨고 이기는 스토리가 디즈니의 시그니처 아니던가.
2. 캐릭터를 줄이더라도 비중 있게 다룰 것
왕비, 가보, 사이먼, 아샤 엄마 같은 캐릭터는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발렌티노, 별, 달리아까지만 조연으로 했어도 됐잖아. 아샤 아빠나 친구들 무리나 반항하는 백성 3인방이나 이런 캐릭터는 굳이 없어도 큰 무리가 아니었겠다. 디즈니 직원들에게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강제 시청하게 해야 한다. 백종원이 매번 메뉴 수를 줄이면서 퀄리티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처럼, 캐릭터 수를 줄이면서 비중을 늘려줘야 관객이 조연 캐릭터에게도 정이 들 시간이 생긴다.
3. 절정 장면의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줄 것
백성들의 연합이 왕을 이긴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면, 그전에 서로 갈등하느라 왕에게 당하는 장면을 넣었어야지. 소원을 간직하고 소중히 여기는 걸 중요하게 묘사하고 싶다면, 그전에 소원을 등한시하는 장면을 넣었어야지. 아샤가 왕에게 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무 포인트도 없이, 아무 깨달음도 없이 노래를 시작하더니 빌런을 제압해 버리면 카타르시스가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노래 잘 만들고 영상 잘 뽑아서 카타르시스가 조금은 있었지만, 분명히 극대화할 수 있었다.
4. 캐릭터가 성장할 것
심바가 하쿠나 마타타 하며 놀다가, 다시 돌아가서 프라이드랜드를 구하는 것도. 알라딘이 자기를 위한 소원만 빌다가 마지막 소원에서(소원 30개 추가해 줘라고 안 하고) 지니의 자유를 소원으로 말한 것도. 칼 할아버지가 파라다이스 폭포에 다다라서 집에 눌러앉으려다가, 다시 러셀과 동물 친구들을 구하러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성숙하게 아샤 할아버지 소원 구해준다고 착하기만 하면, 무슨 갈등이 있고 성장이 있냐고. 성장이 없으니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빌런을 해치울 때 별 카타르시스라고 할 게 없다.
5. 성인 관객을 사로잡을 것
이건 1번과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소원들이 너무 소소하고, 아기자기하고, 순수하다. 거꾸로 세계 최고 부자, 최고 권력자, 혹은 이 정도 거창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 사랑의 쟁취 같은 소원들을 보여주다가 어떤 계기로 사람들의 소원이 순수해지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탐욕스러운 소원에서 마음속 순수한 소원으로, 싸운 친구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든지 아픈 가족의 병이 낫는 것이라든지. 이건 내가 생각한 예시일 뿐, 디즈니는 일개 디즈니 팬이 생각한 것보다는 뛰어날 것 아닌가.
극장을 나설 때 여운을 주는 게 내가 아는 전성기의 디즈니 영화다.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스터 에그들을 숨겨 놓는 것도 좋지만, 100주년을 기념하는 명작을 만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