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를 보며 교육관을 배워보자
유튜브: https://youtu.be/8cdEpJtQEIs
*스포일러 있습니다.
"공부해라."는 말은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이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펴고 펜을 들고 문제를 풀거나 개념을 외우는 걸 떠올린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금도 여전히 그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쿵푸팬더는 그 고정관념을 깨 준다. 쿵푸는 한자는 다르지만, 공부(工夫)의 중국어 발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쿵푸팬더는 한국어로 공부팬더이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나는 나의 교육관을 쿵푸팬더 시리즈를 보며 확립했다. 누군가는 오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썰을 풀며 설득해보겠다.
쿵푸팬더는 액션 영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 속에서 쿵푸팬더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장면은 안 나온다. 그런데 무슨 공부팬더인가 보면, 주인공 포가 던지는 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쿵푸팬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Who am I?"이다. 이것은 간단하지만 교육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 간단하지만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은 쿵푸팬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주인공인 포는 팬더인데 어이없게도 거위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거위의 손에서 자란다. 그런데 다 성장할 때까지 아무 의심도 안 한다. 그리고 거위 아빠의 국숫집을 물려받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당연스레 생각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국수보다 쿵푸를 하고 싶어 하고 쿵푸의 전설 같은 존재인 5인방의 팬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좋아하는 것과 되고 싶어 하는 것의 차이다. 포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쿵푸를 하고 싶어 한다.
복잡하니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 포는 팬더가 낳았고, 팬더이다. 그리고 거위가 길렀고, 그 거위 아빠는 포가 국숫집을 물려받길 원한다. 그런데 포는 국숫집엔 관심이 없고 쿵푸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동시에 먹는 것을 좋아한다. 포는 자기가 누구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우연히 용의 전사로 선정되면서 세상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인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기대, 주변 사람이 요구하는 역할들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나의 모습을 포에게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괴리에서 혼란은 가중된다. 게다가 세상을 구하는 일처럼 해야 하는 것까지 추가된다. 어떻게 보면 국숫집을 물려받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되는 쉬운 길이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포에게 더 어울려 보인다. 쿵푸를 하기 위해선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포에게 이건 무리이다. 하물며 세상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쿵푸팬더 1이 제시하는 답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하라"이다. 영화 속에서 포의 스승 시푸는 먹을 것으로 동기 부여하며 포를 훈련한다. 이는 큰 효과를 보며 포를 용의 전사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한다. 주목할 대사는 "There's no secret ingredient"이다.
포의 거위 아빠는 포에게 국수의 요리법 대부분을 알려주었으나 비밀재료 한 가지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국수의 비밀은 "비밀재료가 없다"는 것이 비밀이었다. 비밀 재료는 없었다.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했던 것이다. 포는 용의 문서를 보면 자연스레 힘이 생기고 용의 전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만능 약은 없었고,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자기가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포의 경우에는 먹는 것이고 먹는 걸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이 메시지는 쿵푸팬더 3로 이어진다.
쿵푸팬더 3에서 빌런 카이가 마을을 습격하러 오는 중, '기'를 익히지 못한 포는 팬더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혼자 카이를 상대하려 한다. 그런데 포의 아빠들(거위와 팬더 아빠)과 주민들은 도망가지 않고 같이 싸우기로 한다. 여기서 포는 그들을 훈련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대사가 나온다.
Who are you?
What do you good at?
What do you love?
What makes you 'you'?
포는 마을 주민들을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카이를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빌런 카이는 각성한 포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Who are you?"라고 묻고, 포는 "I've been asking the same question."이라고 답한다. 포는 쿵푸를 하며 많이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지. 다음 대사는 고민의 흔적들을 드러낸다. "팬더의 아들인가? 거위의 아들인가? 제자인가? 스승인가?"
우리의 고민으로 바꿔보자. "우리는 누굴까. 부모님의 자녀인가. 우리 자녀의 부모인가. 학생인가. 직장인인가. 취준생인가. 누군가의 친구인가. 누군가의 연인인가." 이 질문에 포가 이야기한다.
"I'm all of them."
어떤 타이틀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게 나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나를 나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 글을 본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거나 꼰대 같은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엔 헬조선은 말 그대로 헬이다. 지옥에서 교육받은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른다. 그래도 무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 다운 것을 지향해야 한다.
나답게 가 아니라 나를 전교 1등답게 만들려는 한국 교육을 굳이 비판하진 않겠다(이미 했나?). 대학교에서 마저도 나다움을 찾기 위한 공부가 아닌 스펙을 쌓는 공부를 하는 청춘들을 위해 쿵푸팬더 시리즈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