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이 부른 [노력]에 대한 반박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충격에 빠졌다. 라이브로 처음 들은 이 노래는 나의 생각과 정반대였지만 반박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인터넷 기사도 아니어서 댓글을 달 수도 없었다. 내가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사랑은 노력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난 노래를 만들 줄 모른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영화를 보는 거고,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가져왔다.
캘빈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고 있는 작가다. 어쩌다 보니 첫 작품이 대박 났는데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슬럼프를 겪던 중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본인의 이상형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가볍게 시작한 글에 점점 본인의 진심이 담기기 시작한다. 이상형의 이름은 '루비 스팍스', 그녀에 대한 묘사를 홀린 듯 쓰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놀랍게도 집에 루비가 요리를 하고 있다. 루비는 캘빈이 쓴 글 그대로의 사랑스런 모습이다. 그렇게 캘빈은 자연스레 루비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직접 묘사해 만든 완벽한 이상형이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작은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는 캘빈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있다. 캘빈이 글을 쓰면 루비는 그대로 된다. 점점 루비를 자기의 욕구에 따라서 조종한다. 루비가 본인에게 관심을 덜 쏟는 것 같으면 자기에게 딱 달라붙어 있도록 만든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우울해하는 루비를 하염없이 낙천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루비라는 소설에 캘빈이 손대기 시작하자 관계는 깨지기 시작했다.
관계가 깨지기 시작한 걸 느끼자 캘빈은 책에 이렇게 쓴다. "Ruby was just Ruby(루비는 그냥 루비였다)." 루비 자체로 인정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려 한 것이다. 이때 가장 큰 갈등이 일어나고 캘빈은 다시 루비 책에 손을 댄다.
사랑을 노력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걸까. 캘빈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루비와의 관계를 이어가려했다. 본인은 변하지 않고 루비를 바꿨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관계에 있고, 나에게 기울어있던 무게중심을 너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맞추어 나를 바꾸는 것이다. 여러가지 논란이 있겠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것이 그렇다.
박원의 노래를 이해해보자면 "나"를 잃는 사랑은 하지 말자는 뜻 정도라면 타협할 수 있다. 언젠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유희열이 그랬다. "함께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 사람을 만나세요, 언젠가 연극은 끝나기 마련입니다"라고. 그렇다. "너"를 위해서 "나"를 잃으면 안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랑의 본질은 관계에 있다. 그리고 관계는 너와 내가 존재해야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잃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너"를 잃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정도의 워딩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의지이며, 선택이다. 핑계대지 말자. 사랑을 노력하는 게 말이 안된다는 건 노력하기 싫다는 말이고, 그것은 사랑하기 싫다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고 사랑을 포기할 수 있다. 사랑이 식고, 더 이상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식은 사랑을 포장하는 핑계로 저 가사를 인용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