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 Jul 20. 2020

힙함이란 무엇인가(힙합 아님)

포틀랜드 여행(에필로그)

언젠가부터 우리는 힙함을 동경해왔다. 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도 늘 그랬다. 개성 있다는 것은 주로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였고,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은 늘 개성 있었다. 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남들보다 먼저 힙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힙스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힙한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갔다.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연남동과 익선동, 힙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버린 힙지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힙'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 동네가 '핫'해지면 어째선지 '힙'해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땅값이 오르고, 건물주가 어쩌고 저쩌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어쩌고 저쩌고). 그럼 또 ‘힙’은 ‘핫’을 피해 어딘가로 달아난다.


미국에 그런 힙한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동네가 있다.



독립서점, 킨포크, 스몰 브루어리, 푸드 트럭


단어만 들어도 힙하다. 이들은 포틀랜드를 고향 삼아 태어난 것들이다. 또 말하라고 하면 수도 없이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힙스터의 성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 힙하지 않아 보여서 안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써본다) 포틀랜드를 여행하면서 힙함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힙해지고 싶어서 힙하다는 식당에서 사진을 찍어 연신 인스타그램에 올렸으며, 마카롱을 비롯한 디저트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힙의 본질은 힙함을 따라 하는 것에 있지 않다. 힙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누구나 잠이 오지 않을 때의 고통스러움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그때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잡생각만 많아지게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잠드는 법’을 검색하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는 게 도움이 된다고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나갔다 오는 것은 잠을 깨운다. 오히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 편이 잠들기에 유리하다. 힙함도 마찬가지. 힙하기 위해 힙한 곳에 가고, 힙한 패션을 따라 하는 것은 나를 힙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 편이 힙해지기에는 유리하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자기다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염없이 좋아하고, 또 사랑하면 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거니즘’을 만들고,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힙함의 첫 번째 속성, “개X마이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 눈은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아 저 사람 멋지다"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할로윈 데이도 아닌데 코스튬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겉으로는 "뭐야 저 사람" 할지 몰라도 속으로 욕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저 사람 자신감 개쩌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전제 조건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런 건 말고

우리는 중학교 도덕 시간에 자유란 무엇인지 배운다. 자유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늘 이런 조건이 붙곤 했다. ‘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여기서 힙함의 두 번째 속성이 나온다. 그것은 존중이다. 서구권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퍼스널 스페이스’의 개념을 잘 알 것이다. 이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사회적(혹은 심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거리, 줄을 설 때 앞사람과의 거리를 말한다.


코로나 이전에 찍은 사진인데도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다


남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지 않는 것은 힙함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의 종교, 젠더, 그리고 정치색이 무엇이든 서로를 존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인 파웰스를 보면, 거대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포틀랜드는 미국임에도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상대적으로) 찾기 힘들다. 온갖 스몰 브루어리나 로컬 카페가 프랜차이즈에 밀리지 않는다. 정책적으로도 뒷받침될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프랜차이즈를 선호하지 않아야 만들어지는 문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생활 반경이 넓지 않은 포틀랜더들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 힙함의 속성은 멀리 가지 않는 이다. 생활 반경이 넓지 않다는 것은 온갖 곳에 널려있는 자전거와 상당히 많은 라이더들의 수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넓은 땅덩어리 때문에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4인 가족이면 적어도 차가 2대 이상이어야 한다는 북미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멀리 가지 않음은 일상의 중요함을 아는 것이고 내 주변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힙하다는 인스타 맛집이나 카페를 찾아가서 한 시간을 기다려서 정작 앞에 있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소홀히 하는 것은 힙하지 않게 느껴졌다(물론 포틀랜드에도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있긴 하더라).


힙하고 싶었던 나는 사람들이 힙하다는 장소에 멀리까지 가서, 힙하다고 하는 옷을 입고, 힙한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나는 힙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힙하고 싶다. 지금의 힙하고 싶음은 결이 조금 달라졌는데, 나는 이제 힙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고, 내 동네를 산책하고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내가 좋아하는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틀랜드 여행(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