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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Aug 19. 2021

어쩌다 남해살이 2

퇴사 후 남해 미조에 사는 친구집에 더부살이 하게 된 2주 간의 이야기





고구마네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떡볶이. 레시피 따윈 필요 없다. 있는 재료 다 넣고 떡과 떡볶이 양념만 있으면 떡볶이다. 난생처음 마늘종과 표고버섯이 들어간 떡볶이를 먹는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절편으로 만든 떡볶이는 쫀득한 식감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떡은 자고로 입안에 들러붙도록 쫀득해야 한다. 떡볶이 떡은 왠지 아쉽다. 어머님의 새로운 시도 덕분에 떡볶이 양념을 한 마늘종과 표고버섯을 먹어볼 수 있지 않은가(어머님께는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있는 까만 것은 족발이다.






이 거대한 장독대는 무엇이냐 물으니 멸치 액젓을 담은 독이라고 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장독은 처음 봤다. 적어도 사람 대여섯은 들어가고도 남을 압도적 크기.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금산에 오른 다음 날에는 날씨가 더 악화되어 비까지 내렸다. 이날 새벽에 비가 얼마나 쏟아지던지, 빗소리에 잠에서 몇 번이나 깼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창밖을 왜 찍었냐면, 저곳이 그 유명한 보물섬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일 수가 있는지 고구마에게 계속해서 되물으며 비싼 유자 에이드와 유자 아이스크림만 먹고 나왔다. 이날은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다음 날 지나가던 길에 보니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저녁은 남해의 별미 멸치쌈밥을 대접받았다. 옥돔구이, 멸치회무침, 멸치 튀김, 멸치와 시래기 등을 된장에 버무린 찌개 같기도 조림 같기도 한 그것이 나왔다. 꽁치만 한 멸치를 회쳐먹고 조려먹고 쌈 싸 먹고 튀겨먹는 신기한 경험. 고구마는 남해 사람이지만 멸치쌈밥을 식당에서 먹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고모가 해준 게 더 맛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서울 가기 전에 꼭 너희 고모의 멸치쌈밥을 먹고 올라갈 거라고 대답하고 모든 접시를 거진 비워냈다. 소주병도.












집에 돌아와서는 취기가 올라 기분 좋은 상태에서 옥상에 나간다. 배들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지 빛이 밝다. 눈으로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었는데, 사진에 절대  담긴다. 아이폰X  번짐 현상은 일부러 넣은 기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하다. 도저히 야경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만큼 마음에 꼭꼭 눌러 담은 풍경.






그리고 다음 날도 흐림.  멀리 후지산같이 보이는 섬은 이날 내내 구름 모자쓰고 있었다. 이러다 서울 가기 전에 맑고 청명한 날씨    만나고 기억  남해의 모습이 ‘흐림일까  걱정스럽기 시작한다.  모습도 나쁘지 않지만. 고구마에게 장난스레 말해본다. "맑은   때까지 서울 올라가지 말까?" 그저 웃는 그녀.









매일 시간만 나면 “어디 가고 싶노”, “가고 싶은 곳 없노” 하는 고구마에게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고른 물건리 방조 어부림.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17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숲에는 기둥 둘레가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많다. 가짜로 만든 세트처럼 비현실적인 곳이다. 식물에 둘러싸여 있는 게 제일 행복한 나. 트렁크에 있던 캠핑 의자 하나씩 짊어 메고 숲을 거닐다가 바람이 딱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모기의 밥이 될 줄도 모르고.





날씨가 흐려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고구마의 단골 칼국수집에 방문. 우다다다 꼬맹이들이 많아서 시끄럽고 정신없었던 식사였다. 칼국수를 시키면 보리밥을 주는  조합은 누가 생각했을까. 최근 서울에서도 칼국수집  군데서 보리밥을 주었는데, 국수 기다리는 동안 입맛 돋우기 좋았다. 이렇게 자신 있게 꽁보리밥을 내어주는 집은 사실 메인메뉴가 칼국수가 아니라 열무김치일지도 모른다. 칼국수야 그저 간판용 메뉴이고 사실은 열무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자신 있는 분이 수집을 여는 것이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열무김치  젓가락에 고추장만 넣어도 이미 메인메뉴급의 맛인데다가 밥에 먹든 국수에 먹든 소면을 말아먹든 비벼 먹든 어떻게 먹어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꼭 시장이나 마트에 들르는 버릇이 있다. 일본에 갔을 때도, 필리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여행 기간 중 꼭 한 번은 현지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큰 마트에 들른다. 마트에서는 현지인들의 식습관이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어서 재밌다. 마트가 다 똑같은 것 같지만 도시와 시골의 마트는 그 일상만큼이나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거대한 거품기와 주걱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에 가도 없다. 도시 사람들은 이렇게 큰 도구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런 작은 차이만으로도 관점이 달라지고 생각이 유연해진다. 누군가의 필요를 찾아 남들이 만들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정말 근사하고 훌륭한 일이다. 그냥 스쳐 지나갈 작은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따뜻함을 전제로 하니까.







멀리서 보고는 가축사료를 정성껏 진열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인간 사료. 사진으로는  압도적인 크기가 가늠이  안되지만 실제로  포대처럼 크다. 나는  엄두도  냈는데, 고구마는 어디선가 닭다리 모양의  포대만  과자를  봉지나 가져와서 구입했다. 여기선 뭐든 나눠먹으니 저렇게  과자도 금세 동날지도 모르겠다.






 비싼 블루베리가 고구마네  마당에는 주렁주렁 열렸다.  여문 블루베리를 따먹어 보라는 아버님 권유에 난생처음 보는 블루베리 나무에서 진한 보랏빛 열매를 똑똑 따서 입에 넣는다. 며칠  남해에  첫날 우연히 길을 가다 산딸기를 따먹었었다. 고구마는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산딸기나무를 곧잘 찾아낸다. “저기 산딸기나무다하면 “우와 저게 산딸기나무야? 그냥 나무같이 생겼는데?”라고 이상하게 답하는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는 무글끼 없으니까네 학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길가에 아무렇게나 있는 봉다리 같은 거 주워서 산딸기를 땄단 말이야. 친구랑 둘이 엄청 많이 따서 봉지가 거의 꽉 찼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그거 아저씨 주면 안 되나. 우리 어무이가 마이 아프신데 산딸기 좀 먹여드리고 싶어 그란다’ 하길래 줬어. 그때는 어려서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 완전 날강도 아이가.”







 무봐라. 맛있다”, “까맣게 익은거   무그삐라하는 아버님 지령에 모두 달려들어 블루베리를 딴다. 한낮의 마당에서 한가로이 열매 따는  조용한 순간이 가슴 뭉클하게 멋졌다. 우리 가족도 이런 시간을 함께 하는 날이 있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여럿이서 똑똑 따니  많던 블루베리의 수확이 금방 끝났다. 커피를 마셨던 일회용 컵에 가득 담아  컵은 베트남 언니에게,   컵은 고모님께 드리는 고구마네. 내가 많이 먹는 것보다 나눠 먹는   즐겁다는 진리는 이웃과 가족이 많을수록  많이 느끼는  같다.






하루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고구마네 집 마룻바닥 아래 공간에는 고양이 가족이 사는데, 어머님은 고양이가 무섭고 또 그 안에서 새끼가 죽기라도 하면 냄새가 난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임무였다. 유튜브에서 ‘고양이 부르는 소리’를 검색해 재생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발견한 새끼 고양이는 어디가 아픈지 그 작은 몸을 들썩거리며 숨을 헤엑-헤엑- 쉬고 스티로폼을 잔뜩 토해냈다. 이날은 결국 모든 고양이를 밖으로 불러내지 못하고 철수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10시~11시 즈음에는 고구마와 단둘이 밤바다를 보러 나간다. 아직 해수욕장 개장 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해변은 고요하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수면 위를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은 새벽배송과 택배 노동자, 중국과 미국, 화폐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자주 못 만나는 데다 오랜만에 만나도 늘 아쉽게 헤어졌던 우리는 매일 같이 붙어 있으니 대화의 폭이 아주 넓어지고 있다.





노을이 지고도 한참이 지난 오밤중에 바다 위에 떠있는 섬 너머에 알 수 없는 빛이 보였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결국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봤다.





오전에 옥상에 앉아 책을 보는데 어디선가 강아지가 애절하게 낑낑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뒷집 강아지. 계단 밑으로 내려오고 싶은데 장애물이 있으니 어쩌지 못하고 낑낑거렸던 것이다. 하얀 펜스를 두고 왔다 갔다 한참을 어쩔 줄 모르더니 결국 그(혹은 그녀)는 펜스를 뛰어넘어 내려왔다. 이 얘기를 고구마와 덕구씨에게 전하니 “그 집 개 엄청 까분다. 사람 보기만 하면 짖고, 시끄러버 죽겠다” 했다. 사랑이 고픈 시골 강아지.








다시 시작된 고양이 가족 이주 대작전. ‘고양이 부르는 소리 재생하니 이번에는 어미 고양이가 나타났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가까이 가면 도망간다. 마루  공간을 오가는 문을 열어두고 안에 있는 새끼 고양이가 나오면 잽싸게 문을 닫아 잠가 버리자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당에서 이미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마주쳤기 때문에 안에 남은 새끼 고양이는  마리 정도  것이라 추측하며  새끼 고양이가  발로 걸어 나올 때까지 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우리가  앞을 지키고 앉아 있으니 어미 고양이가 저만치 앉아서 떠나질 않았다. 배고파서 그러는 것이다, 새끼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러 추측을 하며 기다렸는데 역시나 안에 남은 새끼 고양이 때문이었다. 자기 새끼를 데려가고 싶은데 덩치  사람이 셋이나 앉아서 지키고 있으니 무섭기는 하고 도망은  가고 그렇게 대치 상태로 오후를 보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으니 시원했다.  잔디만 나가도 펄펄 끓는데 신기하게 그늘 안으로 들어오면 체감온도가 확연히 다르다. 책을 읽어볼까도 했지만 사실 저런 풍경 속에 아무 걱정 없이 앉아있으면 심심하지가 않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도 궁금하고, 울타리의 돌은 어떻게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잔디가  똑같이 생긴  알았더니 이제 보니  다른 풀이군 등등 가만히 앉아있어도 시간이  간다. 시골에 오니 먹지 않던 과자도 맛있게 먹는다. 조청유과는 한때 최고 애정 과자여서 주구장창 먹었는데, 얼마 만에 먹는지. 고모님표 특제 커피는 거의 매일의 루틴이 됐다. 








고모님께서 서울떼기 주라고 만들어주셨다는 전어회 무침. 돗자리가 없어서 종이 박스를 깔고 플라스틱 박스를 뒤집어 엎어 뚝딱 상을 차린 고구마.  친구로 말할  같으면 어디 가서  못한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를 어리바리하게 만드는 투쁠러스 A 일꾼이다. 본인이  일을 스스로 찾아 먼저 나서서 움직이고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음 해야  일을 스캔한다. 생각과 동시에 몸을 움직이고 말은  얼마나 시원스럽게 하는지,  누구도 싫은 소리  나오게 하는 재간이 어마어마하다. 대학 다닐  같이 작업을 하면  친구 때문에 나까지 일을 많이 하게 돼서 짜증이 나곤 했었다. 행동이 굼뜬 친구들도 있는데 굳이 나서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억울하기도 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봐야  친구 발아래인지라 빛을  보는  서러웠다. 그런 친구의 고향집에 손님으로 와서 며칠을 있어보니  옛날의 설움이  씻겨내려간다. 엉덩이 붙일  없이 알아서  해주니 내가  일이 없다. 친구의 부지런함과 센스, 추진력을 감탄하며 관찰하는  밖에는.



아무튼 자리를 펴고 앉아 전어회무침과 한치 물회에 국수를 말아 먹었다. 어머님은 연신 “ 소풍   같다” ,”너무 좋다”, “행복하다하시며 좋아하셨다. 어머님의 화법은 완벽한 긍정 화법이다. 멋지다, 예쁘다, 좋다, 행복하다는 말씀을 매일 하신다.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나도 주변 사람에게 좋은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머님의 화법은 완전히 다르다. 연륜이란  절대 어설프게 흉내낼 수 없는 거다.







수박의 색이 노랗기에 모두가 ‘수박색이 수상하다’, ‘자르는 소리도 수상하다’며 반신반의했던 수박. 의아하게도 호박 맛이 나는 수박이었다. 너무 배부른데 예쁘게 조각내어 손에 쥐어주시는 어머님이 좋아서 주시는 족족 받아먹었다. 그러고는, 남은 수박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데..






고구마의 작은 고모님이 운영하는 멸치 작업장이다. 바다에서 잡아온 멸치를 삶아 건조기에 말린  함께 잡힌 다른 어종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작업은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데 방문한 김에 자연스럽게 일손을 돕게 됐다. 이렇게 많은 멸치를 만져본 적이 있었던가. 경상도 어른들의 사투리 가득한 수다를 라디오 삼아 1시간여를 멸치와 기타 어종으로 구분했다. 거의 매일 먹는 멸치인데도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알지 못한다. 멸치 작업장에서 들은 새로운 정보는 이러했다. 배에서 잡아 올린 멸치를 쪄낸  건조하는데, 멸치를   소금을 넣는다. 멸치의 짠맛이 바닷물의 염분인  알았는데 따로 소금을 넣는다고 한다. 이곳 멸치는 소금을  넣어서 짜지 않은  장점이라고 했다.





일을 하고 받아온 멸치. 송구스럽게도 품삯보다 더 많은 양의 멸치를 받았다. 멸치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매우 좋아할 것으로 예상됨. 








작업장 앞 바다는 벽련항(현지발음 뱅랜항)이라고 한다. 저 멀리 이름 모를 섬들이 떠있다. 이상하게 내가 남해에 온 뒤로 날씨가 계속 흐리다. 집에 있을 때는 맑아지는 것 같다가도 차를 타고 나서기만 하면 흐리다. 고구마는 내게 “니 때문에 날씨 안 좋은 거 같은데? 니만 오랬더니 구름을 몰고 오면 어떡하노”라고 했다. 내가 서울로 떠난 뒤에야 날씨가 좋아지려나 보다.


(오늘 아침 마을 전체에 울리던 이장님 방송에서도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다는 비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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