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남해 미조에 사는 친구집에 더부살이 하게 된 2주 간의 이야기
대학 졸업 이후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역마살이 잔뜩 껴있던 내 친구 고구마. 그녀와 나의 삶은 평행선처럼 좀처럼 겹쳐지지 않는 것 같았는데 2021년 6월에 이르러서야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 오랫동안 꿈꿨지만 현실의 벽에서 좌절하고 말았던 그 바람이 의도되지 않은 때에 무심코 찾아왔다. 다시없을 그 시간에 나는 고구마의 고향인 남해에 내려와 그녀의 방을 차지하고 뻔뻔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언제나 왕복 티켓이었던 나의 여행, 남해살이는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정해지지 않은 편도형 방랑이다.
남해에 다다르기까지는 4시간 반에 이르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80~90년대 서울로 타임머신 여행하는 듯했던 서울 남부 터미널. 약 1년여 만에 조우하는 고구마와 나는 이곳에서 만났다. 무척이나 뜨겁고 강렬한 더위와 함께.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쏟아지는 졸음에 단잠을 자기도 하며 쉼 없이 달려온 남해. 엉덩이에서 버섯이 날 것 같다고 느낄 즈음에 겨우 남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고구마의 차를 세워둔 약 1km 밖의 주차장까지 달달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걸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랬다. 우선 굶주린 배를 채우러 고구마가 친구들과 자주 간다는 짬뽕집에 갔다.
짬뽕집에서 한 30분여를 바다가 보이는 구불구불한 도로로 달려 도착한 고구마네 고향집. 그녀가 6살 즈음이었을 때 처음 입주했다는 이 집은 항구가 보이는 오래된 구옥이다. 온 동네에 꼬릿한 비린내가 나고, 집에서는 할머니 집 냄새가 났다. 시골집 특유의 냄새를 맡으니 ‘정말 멀리 떠나왔구나’ 하는 현실감각이 또렷해졌다. 와, 마당과 텃밭이 딸린 2층 집에서의 삶이라니. 서울촌닭에겐 너무나도 신나는 일.
알사탕처럼 동그랗게 다듬어진 정원수들. 연둣빛 나무들 속에 유난히 진한 녹색 빛의 저 나무는 3일이 지나고서야 로즈마리란 것을 알았다. 손을 나뭇 잎 사이에 묻고 살랑살랑 비벼 향긋한 냄새를 맡는 일이 일상이 됐다. 집 외부에 설치된 섀시들은 태풍이 올 때를 대비해서 추가되었다고 한다.
텃밭에 다 자란 상추들을 왜 안 따냐고 물으니 생산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하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는.. 실제로 고구마네 집 밥상에는 늘 밭에서 딴 상추가 올라온다. 하지만 정말 잘 안 팔리는 것 같다.
내가 지내는 고구마의 방은 2층에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빛이 예쁘게 드는 창이 있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오르내리게 되는 계단.. 코딱지만 한 서울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뜻밖의 실내 활동량 증가.
내 집이 생기면 채우고 싶다고 꿈꿨던 그 나무색 가구들이 있는 고구마의 방. ‘다행이야. 너와 나의 취향이 같아서’ 하고 생각했다. 취향이 꼭 맞는 친구의 방을 선물받다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방에 있으면 나무 냄새,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비릿한 바다 냄새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린다. 집에서는 주로 정적의 시간에 라디오나 음악을 듣곤 했는데, 이 방에서는 음악보다 새소리가 좋다.
일기예보를 보니 당분간 비와 구름 소식이어서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이 그나마 날씨가 좋은 찬스였다. 부지런히 금산에 오르기로 한다. 프로등산러는 지방에 오면 새로운 산 탐험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금산은 태조 이성계가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비단 금’ 자를 쓴다. 유명한 보리암과 금산 산장이 있는 산이기도 해서 남해에 내려오기 전 유일하게 가고 싶었던 곳이다.
등산로는 초행길인 나도 쉽게 찾아갈 수 있게 잘 닦여있다. 보리암 부근까지 차로 오를 수 있어서인지 1시간여를 오르는 동안 사람 딱 한 명 만났다. 산 짐승이 나타날까 두려웠지만, 라디오 들으면서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정상까지 계속해서 가파른 길만 있어서 호흡 컨트롤이 어려웠다. 1시간쯤 올랐을 때 마주한 풍경. 구름과 안개가 많아서 풍경보다도 구름 구경을 많이 했다.
보리암 부근에 거대한 바위를 뚫어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동굴 같기도 했는데, “무속행위 금지”라는 푯말을 보고 괜히 더 무서워졌다.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또 빠르게 지나쳤다. 이렇게 거대한 바위를 뚫어 계단과 난간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리암을 지나 금산 정상에 오르면 ‘망대’라는 곳이 있다. 정상까지 올라서 이렇게 까마득한 풍경은 처음 봤다. 터질듯한 심장을 움켜쥐며 힘들게 올랐는데, 곰탕이라니… 곰탕이라니!! 그냥 내려가긴 아쉽기도 하고 체력이 남아서 이정표를 따라 더 이어진 길로 가봤다. 뭔가 더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가는 길에 마주친 꽃밭.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꽃밭. 흰나비들이 살랑살랑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는 예쁜 풍경. 산에 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까?
금산에는 절이 있어서인지 곳곳에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돌탑이 많다.
상사바위라는 곳에 가니 잠깐 구름이 걷혔다. 그래, 서울에서 왔는데 이 정도 팬 서비스는 해줘야지. 청명한 풍경은 아니지만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보며 바위 위에 홀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런 순간을 꿈꿀 때는 뭔가 대단한 사색을 할 것 같지만, 나는 이런 순간에 의외로 아무 생각이 없다. 오히려 평소에 머릿속이 복잡해서일까. 대단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마음조차도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절벽에 우뚝 서있는 보리암. 산꼭대기에 이렇게 큰 건물을 어떻게 지었을까. 유명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저 처마 아래가 보리암 대표 포토 스팟이다. 이날은 산 아래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그래도 산에 오른 것만으로 충분한 성취감을 느꼈으니 그걸로 됐어.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가 만들어준 쌀국수를 먹었다. 고구마네 집에는 가사를 도와주는 베트남 언니가 있어서 쌀국수를 자주 먹는다고 한다.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인스턴트 제품인데도 맛이 좋다.
차를 타고 오며 가며 지나는 길에서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남해. 남해는 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하다. 주변에 섬이 많아서 바다 위에도 녹색 섬들이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머무르는 동안 마음에 차곡차곡 잘 담아야지.
고구마 동생 덕구씨는 남해에서 공익근무 중이다. 이날은 산딸기 따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했다던가. 직접 딴 산딸기를 봉지 가득 담아왔다. 고구마네 가족은 정말 화목하다. 대화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 우얄끼고”, “~아이가”, ”~그런 기라” 같은 경상도 사투리도 재밌고 다소 머리 아픈 일도 즐겁게 지나간다.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는 고구마를 보며 나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이렇게 허허 웃으며 즐거울 수 있는 일인데, 서울에선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신경질이 날까. 내 친구네 부부보다도 다정스러운 고구마네 부모님을 보면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러블리한 어머님, 유머러스한 아버님 덕분에 남의 가족회의에 앉아있어도 즐겁다.
고구마네 고모님표 커피는 이곳에서 귀한 카페인이다. 내가 분명 다른 건 몰라도 커피는 사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공사다망하신 고구마는 결국 깜빡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달달한 고모님 커피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헤이즐넛 향이 나는 것 같았는데 G7과 맥심을 특별히 배합한 커피라고 한다. 나는 분명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나 달달한 커피 좋아하네? 이 커피는 서울에 돌아가서도 가끔 생각날 것 같다.
여행보다는 요양에 가까운 남해살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먹고, 책 보고, 하릴없이 지낸다. 일하느라 바쁜 고구마 옆에서 책 읽고 있으면 외부인 또는 타지인처럼 일상에서 물러나 있는 거리감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이 제한된 행복을 최대한 듬뿍 느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