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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Aug 11. 2021

제로웨이스트 실천기

편리함을 거부하고 부지런해질 것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쓰는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소멸하는지 궁금했다. 물질로 시작해서 물건이 되고 다시 쓰레기가 되기까지, 그 쓰레기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그리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닐거란 것만은 확실하다. 땅이 좁은 한국은, 게다가 인구 밀집도가 매우 높은 서울은 더이상 쓰레기를 묻을 땅이 없다. 소각하는 것은 하늘에 쓰레기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그 또한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그렇다고 바다에 버릴 수도 없다. 쓰레기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태다. 나 한사람이 덜쓰거나 안쓰거나 다른 무언가로 대체한다고 해서 이 넓고 넓은 지구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생각해보면 수학을 어지간히 못하는 나라도 아주 미미한 영향일 것임은 확실히 안다. 그래도 '행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영향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것, 대체가 가능한 것, 없어도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제로웨이스트 를 실천하고 있다. 면생리대를 사용한지는 벌써 약 6-7년쯤 된 것 같다. 옆 사람 숨소리만 들어도 짜증난다는 생리기간에 눈 뜨자마자 생리대를 빨아야 한다는 파격적 단점을 가진 면생리대는 이 하나의 단점 외에 장점이 많아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샴푸나 바디워시 대신 비누를,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사용한다. 그 외에도 쓰레기가 나오는 일회용·인스턴트 식품을 사지 않는 것, 화장품을 줄이는 것, 손 닦은 후에는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는 것,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는 것(또는 거절하는 것),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재활용하는 것,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 등이 있다. 100%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지만 일상 전반에서 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들이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
난이도 ★★★★

면생리대는 천연 흡수체가 들어있는 면 100% 소재로 만들어진다. 빨아서 건조해야하고 삶으면 방수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 삶지도 못한다. 나는 한나패드라는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세탁용 제품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서 과탄산소다와 같은 천연 세제와 비누로 세탁을 한다.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아무래도 손빨래 해야 하는 것은 건조기도 필수 가전이 된 지금 세상에선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생리 기간마다 일주일 내내 손이 아리도록 생리대를 빨아야 한다는 것이 늘 부담되지만 면생리대에 익숙해진 지금은 일회용 생리대를 아예 쓰지 못하게 됐다. 하루만 일회용 생리대를 써도 간지럽고 따가운 피부 증상들이 생긴다. 가격적인 부분도 일회용 생리대보다 부담이 크고, 생각보다 수명이 길지도 않아서 솔직히 일회용이 아니라는 것과 천연 소재라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게 없다. 몇년 간 주변에 열심히 영업을 했으나 실제 나의 추천으로 면 생리대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생리컵도 대중화되어서 오히려 그 쪽으로 수요가 있어 보인다.



샴푸 대신 비누쓰기
난이도 ★

샴푸를 비누로 대체한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처음에는 '동구밭'이라는 브랜드의 샴푸바를 썼는데, 비누 하나에 만원 가까운 가격이라 구입을 망설였었다. 그래도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니 왠지 '소비'보다는 '기부'라는 생각이 들어 구입했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기름이 끼는 지성 두피라 샴푸 대신 비누를 써도 괜찮을지 오래 고민했었는데 '동구밭' 샴푸바는 그 고민의 시간이 헛된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가격에 대한 의구심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슈퍼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명 브랜드의 샴푸 한 통은 그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에 살 수 있고 더 오래 쓸 수 있는데, 포장 용기도 없고 제작과정도 훨씬 단순하고 들어간 원료도 더 적고 고작 한 달이면 다 쓰고 마는 비누 따위가 왜 더 비싼걸까 하는.


처음에는 샴푸바와 얼굴/몸 가꿈비누를 나누어 사용했는데, 조금 더 찾아보니 머리카락부터 발꼬락 끝까지 사용이 가능한 올인원 비누가 있단다.(생각해보면 굳이 얼굴 피부, 몸 피부, 머리카락 심지어는 회음부까지.. 뭘 그리 세분화해서 닦고 가꾸는걸까 싶다) 도브 '뷰티바' 라는 건데 미제가 성분이 좋단다. 어쨌거나 이 비누를 무려 해외직구로 6개에 만 얼마쯤 주고 샀으니 비용은 엄청나게 절감한 셈이다. 사용성을 비교하자면 '동구밭' 비누는 수제 비누라 무른 편이어서 머리에 조금만 문대도 거품이 금새 났는데, 미제 비누는 단단해서 물에 한참 불리고 머리에 박박 문질러야 거품이 난다. 머리 감을 때마다 비누를 바닥에 두고 머리카락 적시는 물을 흘려서 비누를 불려야 하는 몹시 번거로운 루틴(?)이 생겼다. 어쨌든 이 비누를 구입하고 난 후로는 머리카락도, 몸도, 얼굴도 비누 하나로 만사 오케이다. 머리감을 때마다 비누를 불려야 하고, 기분 좋은 향도 안나고. 미용실 갈 때마다 "고갱님 머리카락에 수분이 너무 부족하세여. 트리트먼트를 꼭 하시구우 에센스도 좀 바르세여"하는 구구절절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마저도 금새 익숙해진다.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
난이도 ★


대나무 칫솔은 작년 가을 즈음부터 사용했다. 대나무는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고 자연 그대로의 소재이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재료지만, 물에 약하다. 화장실에서 습기를 먹으면 쉽게 썩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해야 하는 것 빼고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칫솔모 자체도 통풍 잘되는 곳에 건조를 잘 시키는 것이 좋으니 딱히 대나무 칫솔이라고 해서 대단하게 신경써야 하는 것은 없다. 가격은 하나에 3천원대, 10개씩 구매하면 조금 더 저렴한 것 같다. 플라스틱 칫솔보다는 수명이 짧은 편이라 2개월에 한 번정도 교체해주어야 한다. 요즘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서 친환경 제품도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대나무 칫솔도 플라스틱 칫솔처럼 미세모, 일반모로 구분해서 나오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브랜드도 다양하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인의 집들이 선물로 제로웨이스트 키트를 준 적이 있다. 비싼 선물보다도 가치를 선물하고 싶어서 고민하다 선물했는데, 역시 관심사가 같아서인지 진심으로 기뻐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어떤 형태로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부지런해지는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미리 챙겨다녀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가방에 장바구니 하나씩 챙겨야 하고, 텀블러도 챙겨야 하고, 물도 따로 담아다녀야 하니 가방은 늘 크고 무겁다. 텀블러를 수명만큼 사용하려면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그 날 사용한 텀블러는 그날 세척해서 건조해두어야 다음날 또 사용할 수 있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귀찮아서 오늘은 넘어갈까 하다가도 손톱가시처럼 영 껄쩍지근해서 지친 몸 이끌고 텀블러를 닦는다.한번은 음식점에 포장을 하러 가서 통을 내밀었더니, 통 크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당황스러워 했다. (1인분 사러 가서 김치통을 내밀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일일이 설명하고 몇마디 대화가 더 오고가야 하는 상황도 이겨내야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말이다.




전쟁 이후 한국의 급속성장, 그 중심에는 제조업이 있었다. 더 빠르고 간편하고 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개발하고 만들어댔을거다. 어마어마한 투자 비용을 들여 대량생산 시스템도 갖추고,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내고 팔아댔을거고. 그리고 그 결과 이제는 자연에서 얻은 것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보다 더 비싸다. 예전에 중국에서 가짜 달걀을 만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달걀 하나에 얼마나 한다고, 가짜 달걀을 만드는게 훨씬 어렵고 돈이 많이 들지 않나?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로군.' 하고 생각했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은 대량 생산 시스템이 그 어느 곳보다 월등할테니 가짜 달걀을 한번 개발해놓으면 수천,수만개를 진짜 달걀보다 싼 값에 생산하는 일은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실로 뜬 수세미가 1,000원인데, 천연 수세미를 사려면 족히 2-3천원 하는 요지경 세상. '친환경' 글자가 붙으면 뭐든지 비싸다. '에코프리미엄' 같은건가. 이러니 자꾸만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행주와 플라스틱 수세미를 사오는 엄마에게 '천연 수세미를 쓰라'고 하기도 어렵다. 자연으로 온전히 회귀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시간이 몇 배로 들기도 한다. 돌아 생각해보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언제나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듣기 싫은 잔소리하는 역할도 소매 걷고 도맡아야 하고 '유난 떤다','극성스럽다'는 말에도 무뎌져야 한다.




시간과 비용, 품을 덜 들일 수 있는 일상을 뒤로 하고 (어떤 책임이나 대의를 위해) 굳이 번거롭고 불편하고 머리 아프게 사는 것은 '진심'이 아니면 넘볼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어떤 책임감이나 사명감으로 무거운 일상을 떠안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지, 어디까지 악하고 무지할 수 있는지를 매일 확인하며 사는 이런 세상에서도 그 조용한 무리들은 '그래도', '나 한사람이라도' 하고 다시 희망의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한 걸음이 되길 바라면서 끝 없는 머나먼 길을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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