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살이 중 갑자기 민치에게 온 메시지. 민치로 말할 것 같으면 고등학교 때 새끼손가락 걸고 1+1 행사 상품처럼 붙어 다녔던 연인 같은 친구다. 고등학교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몰려다니고 있는 9명(이하 a.k.a라고 한다) 중에서 몇 안 되는 싱글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녀가 느닷없이 백패킹 가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왔다.
“어때? 생각 있어? 인생 경험”
‘글램핑이나 다녀봤지 캠핑 장비도 없는 내가 무슨 백패킹. 마침 시간이 되니까 한번 가볼까’ 싶은 내게 고민스러운 옵션이 하나 추가됐다.
“동호회 오빠들 2명이랑 같이 가는 건데 괜찮아? 둘 다 착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데 심지어 노지에서의 하룻밤이라니. 상상이 가능한 선에서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는데 그 생각만으로 고생길이 훤하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이럴 땐 또 어찌나 적극적인지. 간단한 일정과 우리가 갈 장소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은 뒤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고민을 하다 고구마에게 툭 털어놓았더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가라” 한다. 그래, 뭐 1박인데 별일이야 있겠냐. 민치에게 가겠다고 말해놓고 계속 생각하면 걱정만 늘어나고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백패킹에 대한 것은 최대한 미뤄두고 시간을 보냈다.
이 여행의 리더를 맡은 대장님은 백패킹에 진심인 분으로서 혼자 미리 장도 보고 모든 장비와 대부분의 식재료를 준비해오겠단다. 벌써 며칠 전부터 짐을 꾸려놓았다며 사진을 보내온 대장. 그 사진을 받고 조금 찔린 나는 출발 이틀 전이 되어서야 나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준비물인 와인을 구매하러 나간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4인분의 고생을 혼자 짊어진다고 나서는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내가 사는 동네는 아파트도 있고 대학도 있고 영화관도 있는데 왜 대형마트는 없을까. 어쩔 수 없이 전부터 지나는 길에 본 적이 있는 한 정거장 거리의 주류 백화점으로 향한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어떤 거 찾으세요?” 하며 다가온다. 난 나름대로 내 취향을 “달지 않고 묵직한 맛이요”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는데 “그런 건 엄청 많아요”라고 받아치는 아저씨. 내공이 어마어마한 분이신가. 자세히 보니 진열장에 각 와인의 특징을 빼곡하게 손으로 적어 놓은 것이 보인다. 이런 게 진짜 큐레이션이지. 아저씨는 이렇게 적어놔도 다시 먹어보고 맛이 달라지면 또 수정하는 식으로 꾸준히 업데이트하느라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으스댔다.
나는 대장이 정해준 예산에 딱 맞춰 내가 좋아하는 쉬라즈 품종의 <폼비스런 2016>을 골랐다. 아저씨는 와인을 챙겨주면서도 온도에 따라 맛도 달라지니 먹기 전에 냉장고에 30분 정도 넣어뒀다가 꺼내 먹고, 먹기 20분 전에 뚜껑을 열어뒀다가 먹으면 더 맛이 좋을 거라고 쉴 새 없이 말했다.
출발 당일, 8시 10분까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는 민치의 애마(밍카라는 이름을 가짐)를 얻어타기 위해 모인다. 민치네 집에 가는 길에 예쁘게 핀 넝쿨 꽃. 아직 초보운전 딱지를 못 뗀 민치는 긴장하면서도 씩씩하게 인천까지 차를 몰았다. 배가 출발하는 시간을 많이 남기고 도착했는데, 몹시 서두르는 터미널 분위기에 떠밀려 급하게 배에 올랐다.
작은 백팩을 메고와 대장의 백패킹 배낭에 짐을 옮기고, 가져온 짐 보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된 민치. 휘청거리면서도 씩씩하게 걷는 꾸러기 민치.
배는 제법 큰 규모라 흔들림이 없었다. 자동차보다도 조용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배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1시간 남짓 바다를 달렸다. 배에서 만난 얌전한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었는데, 꿈쩍도 안 한다.
우리의 백패킹 장소는 굴업도. 굴업도는 인천에서 1시간여 배를 타고 덕적도로 가서 다시 한번 더 작은 배를 타고 여러 섬을 돌아 2시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을 가진 멋진 초원으로 백패커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성지다.
덕적도에 도착했을 때도 진한 곰탕 같은 날씨에 기대를 한껏 덜어낸다. 배가 출발하면 갈매기 무리가 한참을 배를 맴돌며 나는데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따라올까 궁금해하다, 나중에는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워하면서. 날갯짓을 할 때마다 짧은 다리를 쭉 펴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한참을 조잘거리다 배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굴업도에 도착하자마자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 대의 트럭 중 자리가 비어있는 트럭을 노렸다가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태워달라고 부탁하니 걱정과 달리 흔쾌히 태워준다.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게 될 개머리언덕은 선착장에서부터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이긴 했지만 초장부터 힘을 빼면 안 된다는 대장의 현명한 판단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해안가까지 편하게 이동했다. 굴업도에서 대장은 모든 사람을 아는 사람처럼 대했다. 대장의 이런 성격은 앞으로 벌어질 <굴업도에서 생긴 일>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게 된다.
조금 가파른 돌길을 10분~15분 정도 숨 가쁘게 올라오면 좀 전에 지나온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앞쪽으로는 푸른 초원이, 뒤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고 나니 ‘정말 섬에 오긴 했구나’ 실감이 난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생각보다 안 덥다"라고 여유를 부렸다가 “생각보다 가방이 안 무거워서 그럴 거야”라는 대장의 일침에 찔린 나. 나중에 알고 보니 대장의 가방이 무려 30킬로쯤 된다고. 대장의 몸은 벌써 땀으로 흠뻑 젖은 줄도 모르고 팔자 좋은 소리를 했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으며 대원들의 컨디션을 챙겼다. 나는 '봉테일도 울고 갈 세심함'이라고 추켜세우며 뒤를 따른다.
이런 풍경 속에 사람만 한 가방을 메고 걷는 백패커들은 멀리서 보고 있으면 그 옛날 <롤러코스터> 게임에서 보던 사람들 같다. 손으로 집어서 다시 저 밑으로 데려다 놓고 싶다고 장난스러운 생각도 해보며 발걸음이 만든 흙길을 계속 걷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착장에서 민박집으로 가 점심을 먹고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선두로 개머리언덕에 올라왔다. 개머리언덕의 가장 앞쪽에 자리를 잡고 타프와 텐트를 펴기 시작한다. 대장은 출발 전부터 준비를 꼼꼼하게 했다. 백패킹이 처음인 민치와 나를 위해 텐트와 타프를 설치하는 방법, 의자 조립 방법 등을 영상으로 보냈다. 배를 타고 오는 시간 동안 잠이 오지 않아서 영상을 봐 둔 게 도움이 돼서 처음이지만 큰 어려움 없이 텐트를 세웠다. 노란색 텐트가 녹색 풀밭과 잘 어울린다. 멀리 보이는 다른 텐트들도 알록달록하다. 정말이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가 딱 맞는 표현이다. 넓게 펼쳐진 언덕 위에서 밤을 지새울 생각을 하니 도대체 볼일은 어디서 봐야 하나 막막해진다. 풀도 짧고 숲도 멀어서 근처에는 도저히 몸을 숨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먹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미뤄둔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해가 쨍하긴 했지만 바다는 안개가 있어 뿌옇게 보였다. 풍경은 덜해도 불볕더위는 아니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침에 배를 타기 전 터미널에서 먹은 달걀 3개로 오후까지 버티고 있자니 출출해진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수영하러 갈 생각으로 타코를 먹었다. 사실 타코는 먹기에 간편하지, 만드는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가 않다. 멕시코에서 민박을 운영했다는 세뇨르가 집에서 직접 타코에 들어갈 재료를 만들어왔다. 완벽하게 후숙된 아보카도까지 챙겨온 정성이라니.
한 지붕 아래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 가족이다. 타코를 먹는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기로 약속했다. 망망대해 작은 섬 위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똘똘 뭉쳐야 한다. 먹는 것에 진심인 대장 덕분에 우리는 개머리언덕 한가운데서 신선한 연어 회까지 먹을 수 있었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멋진 상이었다.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하는 동안 나는 "30대가 너무 좋아!" 생각하고, 말했다. 30대의 적당한 노련함, 먹고 살 걱정 없을 정도의 재력, 어느 정도의 수고와 고생은 감수할 수 있는 체력,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모험에 무작정 뛰어드는 무모함이 아니라 '나'를 믿고 내 주변의 환경을 바꿔 보는 시도. 그 모든 것이 좋다. 9만큼의 성실함이 만든 1만큼의 일탈이 얼마나 짜릿한지 20대는 절대 알 수 없다. 30대는 불안하지 않다. 내가 꿈꾸는 40대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3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다. 게으름 피우지만 않는다면 원하는 삶과 타협할 수 있는 만큼의 융통성도 있다.
해를 피해 그늘로, 또 그늘로 이동하며 다닥다닥 붙어서 타코와 와인,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비거니즘과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가장 넓게 트인 공간에서 가장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순간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이 여행의 시작이 그저 '하룻밤인데 뭐'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이 미안할 만큼.
배를 채우니 다시 힘이 생긴다. 다시 개머리언덕을 오를 것을 생각하면 머무르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시간이 많으니 움직여보자. 그렇게 다시 해변가로 내려왔다.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해변에서 사진도 찍는다. 멕시코 세뇨르는 사진을 찍을 때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사진 속 세뇨르를 찾아보세요) 저런 뻔뻔함이 있어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구나. 매일 면도하는 것처럼 머리를 민다는 그는 절대 탈모는 아니라고 했다. 몸에 있는 털이 싫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나처럼 털이 많은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지만 답을 알고 싶지는 않아서 묻지 않았다. 그의 외모와 옷차림은 이 해변을 더 이국적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나는 분명히 지구 반대편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해변가에는 컨테이너로 된 샤워실이 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내게 '집 나와서 개고생'을 처음 느끼게 한 순간. 씻을 수 있을 때 씻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들오들 떨어가며 머리까지 감았다. 입술이 퍼렇게 질렸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땐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고 바람의 온도와 습도가 몹시 달라진 것을 느꼈다. 씻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며 다시 언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눈치 없는 땀은 다시 그 존재감을 알린다. 노랗게 지는 해는 바다를 반으로 가르며 떠있었다. 저 길을 따라 걷고 싶다고 말하니 누군가 "물 위를 어떻게 걸어" 했던 것 같은데.
개머리언덕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조금 편하지만 길게 오르는 길, 가파르지만 빨리 오르는 길. 각자 가고 싶은 길로 가자고 하니 자연스럽게 2명씩 나뉘었다. 나는 가파르지만 빨리 오는 길을 택하고 먼저 도착한 자의 여유를 즐겼다. 대장은 좋은 자리를 봐두었으니 의자를 가지고 따라오라고 했다. 스피커 기능이 있는 랜턴을 챙기더니 신청곡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신청했다. 실제로 어디선가 찌르르찌르르 들리던 소리와 곡에서 흘러나오는 풀벌레 소리가 겹쳐졌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나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 만이
이 밤도 저 비 되어 나를 또 울리고
아름다웠던 우리 옛일을 생각해 보면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뒤늦게 도착한 두 사람은 오는 길에 사슴을 만났다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각자의 발견이 있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시간과 여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길을 돌아온 두 사람에게도 시간과 여유가 없을 이유는 없다. 잠시 다른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난 우리들은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며 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어둠이 찾아오고 언덕에 하나 둘 반딧불이 같은 빛이 밝혀진다. 백패킹 경험이 없는 우리를 위해 대장은 최고의 대접을 해주었지만 사실 프로 백패커들은 혼자 다니며 겨우 배를 채울 정도의 가벼운 식사만 한다. 실제로 우리 아지트 뒤쪽 언덕에 나란히 자리 잡은 텐트들은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10시가 지나자 하나 둘 불이 꺼졌다. 우리만 잠들지 않고 남았다. 선선해진 날씨에 약간의 취기까지 오르니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밤이었다. 다시없을 밤이라고 생각했다. 대장은 해변가에 내려갔을 때 매점 사장님이 불안한 이야기를 했다며 속삭였다.
"내일 배가 안뜰 수도 있다고 하시던데"
취기 때문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배가 뜨지 않더라도 벽과 지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편안하게 잠잘 수 있을 것이었다.
멕시코 세뇨르는 건배를 할 때 "살룻!(salud)"이라고 한다. 스페인어로 '건강'을 뜻하는 건배사다. 술을 마시면서 건강을 외치는 것이 모순적이지 않나. 그래도 예쁜 발음이다. 가져온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웃고 떠들고 별을 올려다보며 있는 힘껏 즐겼다. 빛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쏟아질 것처럼 떠있었다. 하늘이 눈앞에 가까이 내려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제각각 다른 색으로, 다른 밝기로, 다른 크기로 빛나고 있는 별들이 대형을 맞춰 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천문대에 간 적이 있다. 지금과 비슷한 계절이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도슨트에게 별자리 설명을 들었는데 그 순간에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별자리 이름은 몰라도 그때 그 별 보다 수십 배는 밝고 크게 느껴졌다. "우와! 진짜 많다" 하는 말을 몇 번이고 계속하며 감탄했다. 이 소리 때문에 저 언덕 너머 사람들이 다 잠에서 깼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우리는 깊은 밤까지 시간을 보내다 해가 뜨기 직전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바람 소리에 내내 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