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에서의 하룻밤은 거의 무박이라고 할 만큼 열악했다. 장비가 없는 민치와 나는 바닥에 깔 매트 하나 준비하지 못해서 얇디얇은 텐트 위에 그대로 누웠다. 어떤 곳이 흙이고 어떤 곳이 돌인지 등줄기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술기운에 잠이 들었던 것도 잠시 텐트가 펄럭이는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서 깼다. 우리의 무게로 겨우 버티고 있는 듯한 텐트는 언덕을 누비는 바람 소리에 맞춰 세차게 흔들리며 푸드득 푸드득 요란한 소리를 냈다. 민치와 내가 누운 그 자리를 제외한 모든 자리가 붕 떠오르기도 했다. 새벽에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날이 밝은 뒤에도 바람은 더 거세지기만 했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바람이 잠잠해질 기운이 보이지 않자 빨리 장비를 접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모자를 눌러쓰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바깥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거센 바람이 언덕 위를 파도처럼 철썩이면서 바닥에 박힌 팩 2개가 빠져 텐트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풀밭 위에 매트를 깔고 명상을 취하고 있는 멕시코 세뇨르에게 이 상황을 전달하니 “괜찮아” 하고 만다. 그는 여자인 우리가 없었다면 분명 발가벗고 누워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평화롭고 자유로워 보였다. 잠시 안정을 찾아볼 요량으로 언덕을 조금 걸었다. 언덕 위에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장비를 철수하고 있었다.
그 즈음에 도착한 문자 한 통에 전날 밤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이 문자의 내용을 해석하자면, 오늘 굴업도에서 12시 20분 배를 타고 덕적도로 가서 덕적도에서 3시 30분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야 하는데 이 배가 기상악화로 인해 10시 50분 출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오늘 섬에서 못 나간다는 뜻.
팀원들과 이 내용을 공유하고, 내려가서 민박을 잡기로 했다. 우리의 텐트는 곧 멀리 날아가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롭게 흔들렸다. 빠진 팩을 다시 끼우기 위해 텐트를 잡고 당겨보지만 바람을 받고 있는 넓은 천은 이미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져 안간힘을 써도 원상복구는 어려웠다. 그러고 있는 동안 또 하나의 팩이 빠지면서 텐트의 반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대장과 멕시코 세뇨르는 그쪽 텐트를 철수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양손으로 우리 텐트를 잡고 버텼다. 그대로 텐트와 함께 하늘을 날아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을 때쯤 세뇨르가 와서 도와주었다. 거의 패닉이 된 나와 달리 미소를 짓고 있는 세뇨르. 그 와중에 “바람이 좋다”고 말하며 느긋하게 텐트를 접는다. 저게 바로 방랑자의 여유인가. 대자연의 위력쯤은 재난 상황이 아니고서야 웃어넘길 수 있는 옵션 같은 걸까. 어쨌거나 그 미소를 보니 조금 안심이 됐다. 대장은 계속 “비 안 오는 게 어디냐”며 패닉에 빠진 나를 달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을 때쯤 대장은 커피나 한잔하고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커피고 나발이고 빨리 내려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대장의 의견에 반대 표를 냈다. 대장은 나와 민치가 들고 갈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짐을 건네주며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했다. 민박을 잡아놓으라는 과제도 함께.
나와 민치는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말없이 한참을 걷기만 했다. 걷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몸이 휘청거렸다. 멀리 사슴 무리가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 사슴 무리의 고개가 따라오는 것이 귀여웠다. 저 사슴들은 이 섬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처음 누군가 데려다 놓은 두 마리의 사슴이 번식을 해 수가 늘어난 걸까. 여기저기서 보이는 걸 보면 여러 무리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초원 위의 풀이 바람을 따라 물결을 이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모습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풀 하나가 바람에 기어이 꺾이는 그 비극이 멀리서 보니 바람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는 희극 같다. 바람의 형태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해변가에 도착해서 간단히 세수와 양치를 하며 평정심을 찾는다. 섬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운다. 계획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도 없는 작은 섬. 해변가에는 커피와 술, 라면 같은 간단한 음식을 파는 매점(혹은 주점)이 있다. 어제 대장에게 내일 배가 안뜰 것 같다고 귀띔해 준 이곳 사장님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듯하다. 민박을 잡겠다고 하니 어디론가 짧게 전화를 하고는 ‘고씨네로 가라’고 했다.
살면서 민박에서 숙박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투박하지만 살뜰한 아주머니들 덕분에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기분이 났다. 방 하나에 5만 원. 식비는 별도.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호텔에서도 묵을 수 있는 금액인데, 룸 컨디션에 관계없이 굴업도의 모든 방은 5만 원이다. 작은 섬의 평화를 위해 담합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장님 댁 백반이 유명해서 점심을 예약하려고 하니, “다른 민박에 묵고 있으면 그 집에서 드시라”며 거절당했다. 그들만의 공생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민박에 양해를 구하고 아침 메뉴로 준비한 토스트를 마당에서 해먹기로 했다. 남은 식재료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빨리 해치워야 했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먹자고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제대로 준비해 온 대장. 달걀과 햄, 치즈, 양배추까지 썰어온 것을 보고 기립박수를 쳤다. 대단하고 고맙다는 말 밖에 보답할 방법이 없었다. 맥도날드 케첩과 머스터드소스, 설탕 같은 양념까지 꼼꼼하게 챙겨온 대장.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딜 가도 먹을 것이 아쉬울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소가스만으로 토스트를 하려니 달걀을 부치고, 빵과 햄을 굽고 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대장이 만들어준 첫 토스트는 사이좋게 네 조각으로 나눠 먹고 그다음은 각자 먹을 것을 각자 스타일대로 돌아가며 만들어 먹기로 했다. 기름이 없어 마가린으로 대신한 토스트는 굴업도에 오기 전 열심히 뺀 체지방을 원래대로 돌릴만한 고칼로리 메뉴였지만 올해 마지막 토스트라고 생각하며 순식간에 다 먹었다. 천천히 내린 커피와 함께 배를 채우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어젯밤 거의 잠을 못 잤는데도 딱히 잠이 오지는 않아서 따뜻해진 바닥에서 잠시 몸을 데울 뿐이었다.
어느덧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장대비가 투둑투둑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흐린 해변은 싫지만 비 오는 해변은 낭만이 있다. 이미 우리에게 시간은 주어졌고 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다. 한숨 돌리고 나니 해변가 매점의 간판이 이제야 보인다. ‘굴업도 다잇소’. 해변가에는 섬에 갇힌 다른 몇 명의 백패커들이 텐트를 쳤다. 나무가 울창한 작은 숲도 있고, 부드러운 모래 위라서 어젯밤 개머리언덕보다는 더 나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민박에 들어가지 말걸 그랬나 잠시 생각했다. 마가린이 듬뿍 들어간 토스트 때문에 속이 느끼하기도 하고 낮아진 기온에 오한이 들기도 해서 라면을 먹기로 한다. 그리고 역시 해변가에서 맥주가 빠질 수는 없지.
굴업도에 와서 처음으로 다잇소 내부에 들어왔는데, 바닥이 모래인 것에 놀랐다. 얼른 신발을 벗고 발을 모래에 묻는다. 발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모래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기분은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것만큼이나 저릿하다. 바람을 타고 지붕 밑으로 들이치는 빗물도 인심 좋게 반길 만큼 여유를 찾은 우리는 멕시코 세뇨르를 놀리며 깔깔거렸다. 어둠의 세계를 꽉 쥐고 있는 범죄자 같다는 둥, 관광객에게 짓궂은 장난을 거는 중국 상인 같다는 둥 하면서 놀리는데 세뇨르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셔츠를 걷고 배를 드러내며 그런 사람들의 흉내를 낸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는다. 나도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재밌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저녁은 민박에서 1인당 8천 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해변가에서 마신 맥주로 이미 약간의 흥이 오른 우리에게 먹잇감이 나타났다. 민박에 혼자 묵는 손님과 식사를 같이 해도 되느냐는 주인의 말에 우리는 무조건 오케이 했다. 혼자 백패킹을 와서 섬에 갇힌 외로운 남자는 41살의 경상도 말씨를 쓰는 남자였다. 말 많고 시끄럽고 짓궂은 우리에게 완전히 물어뜯기기에 딱 좋은 순수하고 조용한 남자였다. 밥을 먹으며 간밤의 안부를 묻고, 늦게까지 시끄럽게 군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이런 곳에 놀러 오면 다 그렇게 노는 거죠 뭐” 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우리는 민박집 냉장고에 있는 술이 거덜 날 때까지 마시고 떠들었다. 세뇨르가 자꾸 민박집 큰 주인장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낮에 겉절이 담그는 거 도와줬으니 우리에게도 좀 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아드님이 약간 노하시기도 했다.
민박집에서 먹은 저녁값은 금수저이자 건물주인 세뇨르(백수인데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그렇게 생각하기로 모두 합의를 봤다)가 계산하기로 하고, 혼자인 경상도남을 챙겨주겠다며 ‘굴업도 다잇소’로 데려가 2차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한참 어린데도 예의를 갖추고 수줍어하는 여린 남자였기에 억지로 끌려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간 다잇소에는 굴업도에 들어오던 배에서부터 눈에 띈 미중년 아저씨의 무리가 먼저 와 있었다. 대장은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는 사람인데, 배에서부터 눈여겨본 사람을 절대 그냥 칠리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5명이 방문해서 7명이 되었다. 미중년 아저씨는 일행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DJ DOC의 이하늘을 빼닮았다. 또다시 각자 어제 하루의 일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는 그날 개머리언덕에서 백패킹을 한 사람들 중 유일하게 네 명의 구성원이기도 했고, 가장 중앙 자리를 꿰찼으며 또 매우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모든 이가 주목하는 무리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낮부터 눈여겨 본 다잇소 회심의 메뉴 ‘갑오징어 데침’을 주문했지만 “지금 막 마지막 물량이 나가서 떨어졌다"라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사장님의 답변. 실망한 우리에게 사장님은 “생선 궈줄게. 그거나 먹어” 하셨다. 금방 막 저녁 메뉴로도 생선구이를 먹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술자리에서 뭔들 좋지 아니하겠는가. 실로 오랜만에 다른 연령대,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 나는 집순이이기도 하고 늘 나 자신을 낯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최근에서야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환경에서의 나를 겪으며 낯가림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깨닫는 중이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나의 가능성은 나로 인해 서서히 차단된다. 제한된 환경에서의 ‘나’는 일부일 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면, 나도 나를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있는 힘껏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면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
다음 날 아침도 민박에서 해결했다. 할머니 밥상 같은 민박집의 밥상은 지난 저녁 밥상과 반찬이 조금 바뀌었다. 거무죽죽한 국은 가시리국이라고 했다. 짭짤하고 시원해서 속이 풀렸다. 주인장은 모자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더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 여행에서는 항상 입맛이 없더라도,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는 주의다. 대장은 입맛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세뇨르는 식사가 끝난 것 같기에 먼저 방에 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접시를 거진 다 비울 때까지 먹었다. 아침은 간단히 빵과 커피로 때운다는 민치도 이날은 조금씩 부지런히 든든하게 먹었다.
사방의 안개가 낀 상태를 보니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오늘도 배가 뜨지 못할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 방 뒤쪽으로 보이던 산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하다. 민박집 사장님 가족분들도 이렇게 안개가 심한데 배가 뜨겠냐고 걱정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 회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속으로 만족했다. 나에게 주어진 계획되지 않은 시간들이 철없이 반갑게만 느껴졌다. 대장과 민치는 직장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한참을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를 들고 민박 주변 동네를 걷는다. 길을 가다 민치가 갑자기 “헐!!” 하고 놀라며 바닥을 응시해서 깜짝 놀랐는데,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다. 민치는 아주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말했다. “야 달팽이! 니가 나보다 부자네. 유주택자라니” 역시 30대 최대 관심사는 ‘집’인가 보다. 정처 없이 걸어서 마을 안까지 들어가니 우리가 묵는 민박보다 시설이 좋은 민박이 많이 보여서 조금은 씁쓸해진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서야 다시 낡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대장이 굴업도의 다른 뷰 포인트가 있다고 해서 따라나선 길. 안개가 심한 데다 길가에 차도, 사람도 없어서 온 세상에 우리 넷만 남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워킹데드의 한 장면처럼 저 반대편에서 좀비 무리가 나타날 것 같다며 조잘거린다. 스산한 분위기와는 달리 식물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청정한 공기가 가득하다. 피톤치드의 냄새가 있다면 분명 그런 냄새일 것이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 가까워지자 서툴게 만든 계단이 보인다. 계단에 번갈아 그려진 줄무늬, 격자무늬가 동남아스럽다. 이 계단에서 강렬한 선홍빛의 게도 만났다. 민치와 내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대장과 세뇨르는 “맛있겠다”고 했다.
붉은 바위섬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해변이 있다. 이 해변에 다다르니 안개가 얼마나 심한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해변을 걷고 또 걷는다. 대장은 걱정을 했다가, 기대를 했다가 또다시 걱정을 하면서 쉴 새 없이 말한다.
“정말 오늘 배가 안 뜰까?”
“회사에 연락해야 되는 게 제일 싫다”
“차라리 빨리 결정돼서 깔끔하게 정리해버리고 싶어”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루 더 이 섬에 갇히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사실은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하면서 걷는다. 오후에는 안개가 걷힐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배가 제시간에 출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기 중인 것 같았다. 30분, 또다시 30분, 계속해서 대기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온 마을을 울리는 안내 방송. 덕적도행 배가 안개로 인해 운항이 불가하다는 내용이었다.
고씨네 민박 내부는 2명이 지내기에 딱 좋은 크기다. 이래 봬도 개별 냉/난방이 가능해서 지내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다. 하루를 더 보내게 됐으니 청소와 빨래를 하기로 한다. 무지개떡처럼 생긴 빗자루는 실로 오랜만에 본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봤던 것 같은데. 방 청소를 하고 있으니 왠지 여기서 오래 지낸 것 같은 친근감이 든다. 해변에서 묻은 모래, 머리카락으로 엉망인 바닥을 깨끗하게 쓸어내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뭐 하지?
민박집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세탁기를 빌려 썼다. 입을 옷이 생기니 마음이 한결 더 여유로워진다. 이제 하루를 더 있어도 문제 될 건 없다고 안심한다. 빨래를 널 곳이 마땅치 않아서 보일러를 켠 바닥에 펼쳐 놓는다. 쌌던 짐을 다시 풀고 머리를 감고 한참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데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대장이 민박집에 치킨을 주문했다. 이 작은 섬에서 치킨을 먹을 수 있다고?
마침 안개가 걷히고 날이 좋아져 해변으로 나간다. 먹고 마시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일상. <삼시 세끼> 보면서 딱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이곳에서는 요리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을 내면 차려지는 밥상과 술상이 여기저기 있다. 이날은 나도 마음속으로 '하루 더 갇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잇소에 가니 벌써 얼큰하게 취한 미중년 아저씨 무리가 와있다. 맥주와 라면을 사려는데 사장님이 안 보인다. 가만히 보니 손님들 사이에 손님처럼 앉아있는 사장님. 해변에서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하니 “라면을 끓여먹든지~말든지~” 한다. 사장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손님들이 알아서 가져가고 알아서 계산하는 시스템이고, 영업시간 중 절반은 술 드시고 계신 것 같다. 어떤 날은 마감시간이 안됐는데 가게가 비어 있어 전화를 걸어보니 술자리에 계시다고 했다. 재밌는 사장님이다.
무려 두 시간 반의 기다림 끝에 나타난 치킨을 해변을 바라보며 먹는다. 굴업도에 다시 온다면 굳이 백패킹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올 필요도 없이 맨몸으로 와서 민박에 묵으며 이렇게 지내도 좋을 것 같다. 얼린 닭을 녹여서 튀겨주신다기에 모두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양손으로 기름을 묻혀가며 남김없이 먹은 뒤 라면으로 입가심한다. 이렇게 먹으려고 그렇게 운동을 했지. 살면서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으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순간이다. 꼭 “맛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그러면 맛이 배가 된다. 그런 순간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살 만한 인생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니 아무 일 없었던 듯 쾌청해진 날씨에 신이 나서 개머리언덕에 오르기로 한다. 짐도 없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첫날 올랐던 그때와는 다르게 평화롭다. 파란 하늘과 쨍한 볕이 드니 초원이 더 푸르게 빛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비행기 탈 이유가 없다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지난해 말, 영남의 알프스라고 하는 간월재에 갔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에 더 적은 비용으로 국내에서 누릴 수 있는 광활한 자연은 더 감격스럽다.
쏟아지는 햇빛을 온 힘을 다해 반사하고 있는 바다를 보며 민치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참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갔다고. 인생의 정답은 모르더라도 공식 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고. 모두가 각자의 삶을 찾아 깊어져가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너와 나의 시간이 지금 이렇게 겹쳐져서 정말 행복하다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내려오는 길에는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그 알 수 없는 기준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겠다고. 그래서 자신만의 축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 많은 나는 또 구구절절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민치가 한 번에 정리를 한다.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은 없어.
모두 각자의 유니크함이 있지!"
저녁은 미중년 아저씨가 귀한 삼겹살을 사주셨다. 사실 30대가 넘어서고부터는 어디 가서 막내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굴업도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막내 대우를 톡톡히 받았다. 대장이 아저씨들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적당히 예의 있고 곰살맞게 대하니 그 모습이 예뻤는지 술도 밥도 잘 사주셨다. 굴업도에서 고기를 먹을 생각은 못했어서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댔다. 미중년 아저씨는 외모도 멀끔하지만 언행도 신사적이다. 백패킹에 대한 정보도 일러주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 활동이 정신적 환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가 ‘백패킹 하시는 분들은 다들 긍정적인 것 같다’고 하니 ‘대부분이 그렇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 틈에 껴있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무려 6명의 배를 가득 채워 주고는 역시나 신사적으로 자리를 떠났다.
남은 우리는 또 오늘이 마지막 밤일 것이라며 이 세상 모든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것처럼 오래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 둘 잠들고 남은 네 명만이 해변에 나가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덜 취할 걸 후회할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다가
또 어느 계절에,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서
별자리 한번 만들어봐요.
굴업도 패거리들.
내 가방은 너무 조그매서 뒤로 숨김.
형님들은 내 가방 크기를 보고
'양아치' 라고 했다ㅋ
모두 대장 덕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