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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Sep 01. 2021

회사를 떠나는 똑똑한 MZ 세대

사업을 시작한 전 직장동료를 보며

'퇴사'가 트렌드가 된 시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기업, 안정성이 보장된 공기업에서도 MZ 세대는 줄줄이 퇴사 행보를 이어간다. 그러니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나 또한 중소기업에서 두 번의 사표를 던졌고, 총 5~6년을 일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남는 직원 입장에서 속이 쓰린 경우도 많았지만 무작정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경영에 있어서 고정 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이 지출 관리를 함에 있어서도 고정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관건인데 하물며 기업은 오죽할까. 내가 몸담은 두 곳의 회사도 말도 안 되는 근로 환경과 복지는 기본이고, 그마저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들들 볶이다 자진 퇴사하게 만드는 악덕기업이었다. 웬만한 중소기업은 대부분 그 정도 수준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없던 나이에는 기준이 없으니 공정하지 못한 것도, 불이익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수동적인 기성세대 직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혼자서 아등바등했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온 건 일, 일, 일 가중되는 업무뿐이었다. 회사 주식을 1주라도 가지고 있으면 주주로 인정받아 매출에 따라 배당금을 주는데, 회사 내에서 직접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성과에 대한 아무 보상이 없다니. 납득할 수 없는 구조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MZ 세대를 비난하는 기성세대는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열심히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 노력에 대한 대가가 주어져야 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MZ 세대는 병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것을 싫어한다. 남들과 섞여 나를 잃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아싸(아웃사이더)'를 택한 세대다. 그런 세대에게 조직원으로서의 사명감은 '납득 가능한 방식과 명확한 대가'로 부여하는 것이지, 인정에 호소해서는 씨알도 안 먹힌다. 게다가 회사에 평생 충성한 기성세대의 말로가 어떤지 생생하게 목격한 우리 세대로서는 도무지 회사에 충성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회사는 더 이상 나를 대표하지 않고, 세상이 만든 기준에 따라 쌓은 스펙은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게 열심히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청춘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는 "왜 너를 뽑아야 하는지"를 더 설명하라고 한다.






작년에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 입사한 C 후배를 보면서 MZ 세대의 퇴사가 결코 도피가 아님을 확신했다. 이 후배는 30살의 나이에도 회사 경험이 전무했다.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한 창업 실패 경험만이 유일한 경력이었다. 여기까지의 정보를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회사 들어가기는 싫고 남들 다 브랜드 만들어서 쉽게 잘 되는 것 같으니까 대충 흉내나 내보다가 결국 실패하고 회사를 기웃거리는 무능력한 사람'일 거라고 예단했었다. 꼴에 사회생활 좀 해봤다고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을 한두 줄의 정보로 판단하고 색안경을 끼다니. 그동안의 경험 데이터로 보면 회사가 새 직원을 채용한 것은 나의 업무를 분담할 직원이 아니라 또 뭔가 일을 벌여댈 꿍꿍이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도 조금 섞여 있었던 것 같다. C 후배는 예상과 달리 무척이나 싹싹하고 열성적이며 일도 잘했다. 처음에는 바쁜데 자꾸 시간을 내달라고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하니 거절은 못 하고 쌀쌀맞게 대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업그레이드 한 작업물을 가지고 찾아오는 게 나중에는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적응 기간을 거친 후에는 내 업무를 도와주기도 해서 오히려 내가 의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결심했다는 C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느냐 물으니 탑 다운 방식의 업무 방식이 힘들다고 했다. ‘까라면 까’라는 식의 경영 방식이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고. 사실 나 또한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이골이 난 상태여서 후배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기에 말리지도 못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회사를 나간 후 다시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후배는 스스로 대표가 되어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야 하지만 전보다 편안해 보인다. 기획 의도가 분명한 제품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족할 만한 품질로 제작해 줄 제작자를 직접 찾고, 원하는 시장에 원하는 형태로 판매하며 회사에서보다 더 많은 일을 더 멋지게 해내고 있었다. 사무실을 차리느라 대출을 받고, 월 수익도 아직은 회사에서 받는 월급에 못 미치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브랜드가 성공해서 회사를 키운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니까. 



요즘 MZ 세대가 고생하기 싫어한다는 건 그들을 단편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곳에 최대의 에너지를 쓰고 싶은 것이지, 무작정 닥치는 대로 고생할 필요는 없다. 직업(일) 외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세대. 내 집 하나 마련하려면 절약부터 시작해서 재테크, 경제에 해박해야 하고 머나먼 노후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자기계발뿐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지켜야 하며 소비 하나를 하더라도 가치를 따진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과 집중을 하고자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 에너지를 쓰는 대신에 시간당 단가를 최대치로 올려서 더 많은 대가를 얻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치를 스스로에게 투자한다. 전자는 회사가 나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전 회사 대표가 어느 날 나에게 생각 없이 던진 말은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요즘 똑똑한 애들은 다 자기꺼 하더라”





지난주 C 후배의 사무실 겸 매장에 방문했다. 후배는 사업을 꾸리며 여러 가지 힘든 점을 토로했지만 경력자인 내 기준에서는 후배의 다재다능함과 열정, 브랜드의 시장성과 가치가 성공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사에 기대어 살 생각만 하던 내게 신선한 자극과 용기가 되기도 했다. 이 후배가 멋지게 성공하면 왠지 ‘MZ 세대 승리’라고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를 나온 순간부터 이제는 후배가 아니라 선배님으로 대접해 줘야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회사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나 계속된 불공정과 불합리, 비효율에 맞서야 하고 내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나의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회사에 바쳐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당장의 월급보다 나의 가치에 투자해야 할 유일한 기회가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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