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여 또는 결핍.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뜻하는 단어.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인다. 나 또한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발목을 붙잡는 것쯤으로 여겼다. 내게는 가난이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남들보다 더 큰 에너지가 수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30대가 된 후로는 (그것이 '나잇값'인지 '성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삶에서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반대로 어떠한 동기나 특별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부족하다거나 모자라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결손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핍 없이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은 도통 모르는 것이다. 올 초 나는 운동을 하다 인대를 다치고 한 달여를 절뚝이며 다녔었다. 걸어서 회사를 다녔는데, 한겨울이니 퇴근시간 즈음이면 이미 캄캄해지고 난 뒤였다. 늘 다니던 길인데도 내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던 길도 낯설고 두려웠다. 어느 한 곳 불편하지 않고 멀쩡한 몸을 가진 것이 실로 대단한 자격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다. 물리적 약자임을 깨닫고 나니 도망치지 못하면 싸워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치료를 잘 받고 재활도 열심히 해서 지금은 나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기르는 중이다. 내게 다리를 다치는 불행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마음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들은 뜬금없이 문득 찾아오곤 한다. 어떤 날은 요가를 할 때였다. '우리는 시각에 너무 많은 의존을 하지 않냐'라며 눈을 감고 수련을 진행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눈을 감았다. 안정적이었던 동작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참히 무너지고, 모든 균형이 깨졌다. 갖은 애를 써도 한 발로 서는 동작은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몸의 감각에 의존해 올바른 자세를 잡으려 노력하니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눈을 감으니 자연스럽게 내 몸이 어떤 상태인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흔들리고 넘어질지라도 몸 구석구석 선명하게 꿈틀거리는 감각들이 좋았다. 눈을 감는 그 변화 하나로 내가 알던 세계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두 눈을 뜨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매사에 감사를 느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깨달음 이후에도 여전히 '감사함'이란 것은 아주 절망적일 때에 절박하게 움켜쥐는 끄나풀 정도일 뿐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영악하고 간사한 존재인 걸까.
인간에게 결핍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결핍을 결핍으로만 보아서는 안되고 뛰어넘으려는 극복 의지만 있다면 결핍이 없는 인생보다 결핍이 있는 인생이 더 멋질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키가 작아 연애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한 남자가 있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하고, "키만 조금 컸어도.." 하는 말에도 이미 익숙해진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주눅 들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키가 작은 대신 돈을 많이 벌면 되고, 멋진 몸매를 만들면 된다고 했다. 일주일에 6일을 일하면서도 짬을 내어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자기 관리에 힘쓴다. 나는 그 남자를 보며 키가 컸더라면 지금보다는 덜 열심히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키가 작은 남자보다는 키가 큰 남자가 좋지만, 키가 큰 것을 믿고 노력하지 않는 남자와 키가 작아서 더 노력하는 남자가 있다면 후자가 더 멋져 보인다.
결핍을 극복하려면 남보다 더 많은 피 땀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것이 조금은 억울할지언정 어쨌거나 그 결핍으로 인해 확실한 동기부여를 하고,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을 결핍으로만 볼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과정이다. 사람도 인생도 단편적으로 봐서는 안된다. 언젠가부터 '인생길게 봐야 한다'라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산다. 지금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부족하기 때문에 컴포트 존(comport zone)을 벗어날 용기도 생기는 것이니까. 내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으면 뛰어넘으면 그만이다. 방법은 어디에나 있다.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앞에 펼쳐진 길을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삶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고, 시스템 또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