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 많은 말띠 Oct 12. 2021

보통의 오류

보통이라는건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에게 '헐','대박' 두 단어를 못쓰게 하면 대화를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 두 단어만큼이나 무심결에 많이 내뱉는 단어로 '보통', '일반적으로','상식적으로'가 있다. 나 또한 연애나 직장이야기를 할 때면 자주 쓰곤 했다. 언젠가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 말들이 어쩌면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 또는 편견, 소수의 존재를 외면하는 <폭력 없는 폭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 전에는. 




사전적 의미마저 모호한 보통이라는 말


'보통'의 정의는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라고 국어사전에 나와있다. 언어의 사전적 의미는 그것이 가지는 무게와 힘이 커서 저명한 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검토하여 정하는 것이므로 최대한 객관적이고 직관적이며 누구든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쓰여있다. 그러나 '보통'이라는 단어는 그렇지 않다. 사전적 의미마저도 '특별하지 않다', '뛰어나지 않다', '열등하지 않다', '중간 정도'라는 식의 애매하고 주관적인 단어들로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보통'이라는 단어는 회색만큼이나 뿌옇고 흐린 애매모호함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특별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로 설명한다. '보통'의 의미는 특별하지 않다면서 특별한 것은 또 보통과 구별되는 것이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야 니가 설명해봐" 하듯 밀어내고 있는 의미들. 애매한 의미는 그 쓰임도 애매하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보통은 이렇지 않지!", "일반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하고 책임을 물을 때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럴 때는 "그게 어째서 보통인데? 보통이 뭔데?" 혹은 "일반적이라고? 누가 조사라도 해봤대?" 하면서 따져대고 싶다. 




기준이 다를 때 절대값을 측정할 수 있을까?


어떤 개체든, 사건이든, 현상이든 그것을 어떤 시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라도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한 담론이다. 변기를 사서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것에 대해 예술계가 발칵 뒤집은 마르셸 뒤샹의 <샘>을 생각해 보라. "이게 무슨 예술이냐"는 혹평도 있었지만 현대 미술계의 한 획을 크게 그은 것만은 사실이지 않나. 예술품이 아니면 이런 사례는 어떨까. 어릴 적 내 동생의 추억상자에는 다 먹은 우유갑이나 음료수 병이 가득했다. "도대체 이런 쓰레기를 왜 고이 모셔두느냐"고 타박하면 "이건 내 친구가 나 아프다고 했을 때 사준 거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나 준 거란 말이야!" 했다. 딸기 우유가 다 같은 딸기 우유가 아니다. 소중한 친구가 내게 준 딸기 우유이기 때문에 다 먹고 나서도 쉬이 버리지 못하고 두고두고 꺼내보면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을 두고 "보통 사람들은 마음으로 간직하지 너처럼 쓰레기를 모시고 살진 않아"라는 내 말에 동생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 언니는 어쩌면 저렇게 폭력적인 사람일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생각했겠지.




나와는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격이 다른 남자와 오랜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나의 '보통' 공격은 계속됐다. 


"보통 내 친구의 남자친구는 이렇게 안 해!"

"보통 오빠 또래의 남자라면 이렇진 않아!"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누가 오빠처럼 말해?" 


그렇게 말하면서 수많은 다른 보통들을 아니, 적어도 눈앞의 또 다른 보통의 남자를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긴 시간을 세상 어디에도 없고 나의 세계에만 있는 '보통의 남자친구'를 들이밀며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그 남자와 이별하고도 그놈의 '보통 남자'는 아직도 못 찾았다. 



부잣집 자식들과 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도 서로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 그 격차가 메꿀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갈등도, 세대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사회적인 개념에 의해 부류를 잘라 나누는 것이 서글프지만) 매일을 그런 갈등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지만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보통'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일반적인 사람은? 상식은? 그런 정의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보통의 보통의 보통


중학교 3학년 때 말투나 행동이 '여성스럽다'며 놀림당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교문을 지날 때 잡히지 않을 딱 그 정도의 장발을 늘 고수하고, 가뜩이나 가늘고 긴 손가락에 손톱을 길게 기르고 다니며 주로 여자친구들과 어울리는 친구였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틈만 나면 그 친구에게 "너 게이지? 동성애자 새끼야" 하면서 괴롭혔다. 나는 당시 한창 따돌림을 당하다 겨우 살만해졌을 즈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했다. 그저 '여성스러울' 뿐인 남학생에게 동성애자라는 낙인을 찍는 게 못마땅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얘 게이 아니거든? 니가 뭘 알아?" 하면서 앞장서서 항변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무슨 오지랖으로 그렇게까지 했나 싶지만) 1년 내내 그 친구 옆에 붙어서 "얘는 게이 그런 거 아니야" 하면서 다녔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는 남고에, 나는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얼마 뒤 그 친구에게 온 메신저 쪽지 한 통에 나는 내가 그 친구에게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애인 생겼어! 남자친구.]



돌이켜보니 그 친구는 동성애자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동성애자는 '이반'이라고 하고 이성애자는 '일반'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던 것도 그 친구였다. "아, 일반이 그런 뜻이야? 일반적으로 할 때 그 일반?" 그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도 얼핏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보낸 사인을 철저히 무시한 채 '손톱 좀 기르고 여학생처럼 말한다고 다 게이냐'며 큰소리쳤던 것이 사실은 정말 게이였던 그 친구를 더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 때문에 한동안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피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또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one of them 으로 살고 싶어? 정말?


그나마 '보통'이나 '특별하다'보다는 꽤 명확한 사전적 의미를 가진 '일반적'의 뜻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걸치는 것]이라고 한다. 일부와 전체는 수적으로 설명이 되는 개념이니까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는 단어는 전체에 걸쳐있는 '일부'를 배제하고 있다. 그 포인트가 내게는 지독하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일부'를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서 '전체'라는 검은 물에 똑 떨어뜨리는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가 어찌 됐든 굴러가기 위해서는 과반수라는 룰이 반드시 뒤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조금 늦어지더라도 수레에서 떨어진 일부를 주워가면서 나아가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나.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서 발견한 한 글귀는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좌우명이 됐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보통,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같은 전체주의적인 말은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 다른 사람들, 반대의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지우고 외면하고 덮어버리는 일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내 인생 살아내기가 벅차서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모를 때도 있고 설령 마주한다 해도 내가 뭘 어찌하는 것이 바른 일인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동으로 나서본 적도 없고 내가 모르는 순간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왔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무심코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편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이 보통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상식적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드러나 있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은 작은 목소리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인생이나 삶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떤 이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 말은 삼가는 것이다. 일단은. 







작가의 이전글 너+나=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