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공중화장실 이용할 수 있는 삶
매일 아침 문밖에 도착한 신문처럼 나의 메일함에 도착한 뉴스레터를 읽는다. 몇 가지 안되는 나의 루틴 중 하나다. 미국 남부에 이례적인 한파로 전기가 끊겨 원유/반도체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소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해당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한 소식 등을 찬찬히 읽어내렸다. 그러다 한 꼭지에서 스크롤을 멈추고 한참을 멍해졌다.
출처 / 뉴스레터_뉴닉(NEWNEEK) 2021.02.19 발행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다. 남성의 날은 없지만 여성의 날은 있다. "남성으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시나요?"라는 질문은 생경하지만, 여성으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묻는 것은 어쩐지 익숙하다. 30년을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살아온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가. 지금은 어떤 세상이며,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잠시였지만 주마등처럼 스쳐간 내 생의 많은 순간들은 여성으로서 수치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쾌했고 때로는 무감각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나와 같은' 세상에서 그 시절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화장실 트라우마
trauma: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 남학생들의 손에 브래지어 끈이 풀리는 일이 '호기심 어린 남학생의 짓궂은 장난'으로 여겨졌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던 것도 잠시였다. (폭력으로부터의 지속적인 노출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며 깨닫는다) 육체적 성장이 성인과 비슷한 수준에 다다른 중/고등학생 때는 남교사들의 불쾌한 농담에 뜻도 모르고 웃음 지어야 했고, 학교 화장실을 이용할 때조차 옆 칸에 숨죽이고 있을 성범죄자를 '피해'다녀야 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학교 화장실에서의 기억은 나 또한 성범죄 피해자임을 깨닫게 한다.(그 화장실을 이용한 모두가 '피해자'다) 중학교 2학년 축제 기간이었다. 친구와 둘이 화장실에 갔는데 5칸 중 3칸이 못쓰게 되어 있었다. (당시 학교 화장실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야 일을 볼 수 있는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변기 안에 쓰레기통이나 빗자루 등이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2칸 중 1칸에는 안에 사람이 있었다. 이런 경우엔 무의식적으로 장애물을 치우고 들어가기보다는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칸을 선택하게 된다. 나 또한 사람이 있던 칸 바로 옆 칸을 이용했다. 볼 일을 보는데 칸막이 아래에서 타일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탁'하고 나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카메라가 있었다. 정확히는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였고,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카메라는 분명 내 쪽으로 향해있었고, 나는 순간 놀라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세면대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 친구에게 안에서 있었던 일을 알렸고, 우리는 또래 여자친구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나보다 더 화가 난 채로 사람이 있는 그 칸의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며 "누구야! 당장 나와" 하고 소리쳤다. 한참 동안 열리지 않던 문은 몇 분 뒤에야 스르륵 열렸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후드를 뒤집어쓴 젊은 남성이었다. 친구와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소리 지르며 밖으로 나갔고 가장 먼저 보이는 남자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는 동안 후드남은 이미 뒷문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난 후에도 (학교에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그런 일'은 또 반복됐다. 중간고사 시험을 보던 중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시험기간에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 총 7개의 칸 중 5개의 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이 있는 그 칸에는 분명히 그 후드남이 있을 것이고, 배는 아프고, 모두가 시험 보고 있을 그 상황에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중요한 시험 분위기를 망칠까 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얼른 볼일을 보고 남은 시험문제를 마저 풀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화장실까지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후드남이 있을 칸의 반대편 출입문과 가까운 칸(나름의 차선책)으로 들어가 변기에 처박힌 빗자루를 치우고 일을 봤다. 그 순간에도 후드남이 바깥으로 나올까 두려워 인기척이 나는지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화장실에 그런 남자가 있었다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려운 나와
내가 당한 일을 아는 몇몇 친구들이 불안해졌다는 것 외에는.
성인이 된 후, 이제는 학교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 간이 칸막이로 겨우 공간을 구분해 놓은 남녀 공용 노래방 화장실. 내가 들어갔을 때 이미 옆 칸(남자화장실)에는 인기척이 있었다. 불안해진 마음에 볼일을 보며 평소처럼 칸막이 아래 틈을 확인하고, 위를 보니 그곳에 남학생 얼굴이 있었다. (귀신을 봐도 그렇게 무섭진 않았을 것 같다) 놀란 내가 옷을 입고 정리하는 동안 그 학생은 후다닥 도망갔는데, 노래방 안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있던 방으로 돌아가 (여자) 친구들에게 좀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괄괄한 성격의 한 친구가 당장 그 방으로 가 문을 열어젖혔다. 마침 그 남학생도 친구들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내 친구가 욕을 하며 다그치자 세 명의 남학생이 모두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고, 우리는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고 돌아섰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지금까지도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때조차도 늘 두렵다. 칸막이가 위아래로 뚫려있으면 볼일을 보면서도 늘 그곳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본능처럼 자리 잡았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은 가능하면 이용하기 싫어서 소변을 참는 일도 다반사다. 분명한 피해자가 있지만 '그런 일'은 범죄가 아니었다. '한창때의 학생이 호기심에 한 행동' 또는 '동네에 웬 음침한 놈의 이상한 소행'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런 일'을 벌인 사람이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어떤 죄를 물어 신고를 할 수도 없었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조치가 취해지지도 않았다. 달라진 것은 나, 그리고 그 일을 보고 들은 친구들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내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정신적인 불안을 겪고 있는 분명한 피해자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있다.
페미니즘이 더 이상 일시적인 이슈가 아니다 보니 여성으로서의 불이익 또는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너 페미니스트야?"하는 날 선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어쩌면 무지하고 어쩌면 폭력적인 그런 반응들에 대해 차분하고 깊이 있게 반격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평소에 나름 '프로불편러'를 자처하고 나서는 나도 '여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 현실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큼 풍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몇 년 전 강남 한복판 공중 화장실에서 여성이 한 남성에게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그 남성은 중학생 때 내가 본 그 후드남처럼 화장실 칸 안에서 타깃이 될 '여성'을 기다렸다가 정확히 여성이 들어왔을 때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가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는 그 일이 왜 나와 관계된 일인지를 한참 동안 목놓아 설명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계속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다는 것, 너희들은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도심 한복판 화장실에서 칼 맞아 죽을 확률이 나보다 단 0.00001% 적으며, 남성이기 때문에 타깃이 되지 않을 확률이 0.00001%라도 높을 수 있고, 너희들이 말하는 '재수 없는 일' 혹은 '복권 맞을 확률로 일어날(더 큰 확률로 일어나지 않을) 만의 하나의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봐 평범한 일상 중 많은 순간들을 두려움에 잠식당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단지 생기지도 않을 일을 더러 걱정하는 예민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는 것, 나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누나/동생/어머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 뉴스레터를 보고 멍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성범죄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사실 외에도 사회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정에서 불이익과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정작 또래 친구들과 넋두리하는 것 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는 분명 작거나 큰 무언가를 포기하고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전, 성장, 개발(또는 계발), 발명(또는 발견), 변화에는 그것들을 관통하는 어떤 것이 있다. 당연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늘 그렇게 해왔던(관성적인) 것이 정말 그래야 했는지에 대한 의심 또는 의문, 그리고 그것을 수면 위로 드러내 문제 삼고 그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작품인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명대사가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떠올리는 장면이다. 마치 닥터 양이 나에게 직접 전한 것처럼 진하게 박혀있다. 나는 또 포기하거나 내려놓지 못하고 적당히 할 수 있는 일만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약점이 되지 않고, 범죄의 타깃이 되지 않고, 누군가의 뒤틀린 욕구 혹은 욕망으로 인해 파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는 세상 아니 그 무엇보다, 적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조차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세상은 아니어야 한다. (성공하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확실하니까)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가 다른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해야 최선책을 찾을 수 있다.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환경도 모든 면에서 그렇다. 불편하고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피해서는 안된다. 행여 틀리더라도,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문제 를 문제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단단한 바위도 거대한 절벽도 수없이 부딪히는 물에 결국은 깎이니까. 길이 없는 곳을 처음 사람이 지날 때는 앞도 옆도 잘 보이지 않고 1m를 나아가는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다음, 또 그다음 사람이 그 길을 나아갈 때는 달라진다. 잘 닦인 길이 될 때까지는 앞서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