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의 의미
공연을 보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어느 날은 그냥 심심해서, 어떤 날은 그저 위로를 받고 싶어서. 혹은 잠시 현실과는 다른 곳에 갇혀있고 싶어서 등.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들을 걷어내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숨어있다. 내가 궁극적으로 공연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내가 결국 '공연'이라는 예술에게 기대하는 것.
그것은 바로 '결여'이다.
공연을 보고 오는 날이면 나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혹은 맞붙어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세상이.
결함 있고 상처 많은 인물의 눈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보고 감각하노라면 내가 담을 수 있는 것들의 한계치가 늘어나곤 한다.
고로 공연을 지속적으로 보는 행위는 내게 있어 나를, 또 내가 담아내는 세상을 넓히고. 넓어진 여백을, 그 '결여'를 인지하고 감각하는 일이다.
즉 나는 나의 감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공연, 그러니까 삶의 단면들을 조금 더 섬세하게 보여주는 공연들을 좋아한다. 작품 안에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삶들을 온전히 느끼고 같이 짊어지다 오는 것 자체가 의미인 공연들을. 그러다 보니 교훈적인 메시지를 대놓고 표출하는, 어찌 보면 진부하고 뻔한 감정선들을 늘어놓는 화려한 쇼 위주의 공연들보다는 인물들과 더 가까이서 함께 호흡하며 감각할 수 있는 공연들을 더 자주 보러 다니곤 한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화려함으로 점철된 쇼 뮤지컬을 기꺼이 보러 가기도 하는데,
바로 앙상블과 오케스트라가 주는 웅장함. 현실에서는 맛보기 힘든 그 벅차오름. 이를 느끼고 싶어서.
완성도 높은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당하며 나는, 그 안에 쌓여있는 그들의 시간을 쓸어본다.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선보다 더한 노력을 쏟아냈을까'하며.
설령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 하나가, 혹은 몸짓 하나가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연주자의, 배우의, 무용수의 시간과 삶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예전에 한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정말 정교하고 위대한 작품과 예술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솜씨에 찬탄하는 것이라고.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잘 다듬어진 예술을 좋아한다. 하릴없이 보고만 있어도 끝없이 경탄이 나오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있었을 어느 한 예술가의 오랜 시간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싸워왔을 그 노력을 감히 상상해 보게 만드는 예술을.
즉 나에게 있어 예술이란, 누군가 지나왔을 시간들을 가늠해보게 하는 것이다.
공연에서 만들어낸 한 인물의 지난 생의 아픔과 상처들을.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여러 노력들을. 혹은 한 폭 안에 담아낼 수 없는 어느 예술가의 땀과 눈물들을.
그리고 내 세상에선 결코 알 수 없었던 이 시간들을 엿보고 잠깐이나마 체감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내 안의 것들이 비워진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온 듯한 느낌이랄까.
나의 현실들로 짓눌려 있던 내 시간들이 다른 이들의 현실을 맞닥뜨림으로써 내 것을 조금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그렇게 비워냄과 채움의 반복.
이것이 내가 공연을 비롯한 예술을 향유하고, 탐닉하는 이유이자 목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