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마데우스'에 대한 이야기 첫 번째.
공연의 제목은 '아마데우스'로 언뜻 보면 모차르트가 주인공일 것 같지만 사실은 살리에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진행되는 공연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의 매력에 빠진 살리에리는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대신 완벽한 소리를 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음악을 정진시켜 나간다. 38세에 궁정악장으로 명예와 명성을 얻던 중,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빈에 등장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자마자 살리에리는 신이 그의 목소리로 모차르트를 택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리며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시기와 신에 대한 원망으로 모차르트를 서서히 몰락시키기 시작한다. 극 중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당대 분위기를 이용하여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취소시켜 일 년에 간혹 공연되게 만들고, 방탕한 모차르트의 이미지로 모차르트가 제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등 모차르트를 점점 옥죄어 갔다. 그럼에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음악과 재능을 사랑하여 모차르트의 모든 연주회를 다니는 등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모차르트(정확히는 모차르트의 음악)는 살리에리에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서로 독이 되어 이 이야기는 결국 파멸을 맞게 된다.
"그들은 왜 서로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었나?"
물론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열등감, 자격지심, 질투,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 등 복합적인 감정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 두 인물은 서로 융합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감정은 다음 글에서 다루고 이번 글에서는 극에서 보인 두 인물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두 인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모차르트는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살리에리는 신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음악에 대해 '음악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소리이고, 작곡가는 제각각인 소리를 어우러지게 한 데 모아 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말한다. 또 오페라를 만들 때 더 이상 신과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지겹다며 우리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를 얘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면 살리에리는 음악 자체를 신의 목소리라 이해하고 작곡가는 신의 웃음과 말을 대신 전하는 대언자라 생각한다. 그래서 신에게 복종하고 오로지 신의 목소리에 따라 살겠다며 맹세하고 기도까지 했는데도 모차르트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자 신이 그의 목소리로 자신이 아닌 모차르트를 택한 것이라 생각한다. 살리에리의 오페라는 그 시대 오페라가 으레 그렇듯 신과 영웅에 대해 말하고 그들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음악이다. 그들의 상반된 가치관은 '재능'에 대한 생각에서도 볼 수 있다. 살리에리는 앞서 말했듯 신이 자신의 목소리로 택하는 것을 재능이라 명칭하고 그것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을 비웃으며 자신의 재능에 기대어 교만과 오만의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이 재능은 신이 주셨다'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로 봤을 때 모차르트는 한 사람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인정받길 원했고 살리에리는 인격체보다는 음악과 재능으로서 칭송받고 신성화되어 음악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바랐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불행과 삶의 단면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음악을 대했으며 그가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닌 그 음악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이었으나, 살리에리는 음악의 완성도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둘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각자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달랐으니 서로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극 후반부쯤 나오는 죽음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난다. 모차르트는 쇠약해진 육체의 죽음을 예감하자 그가 의뢰받은 이 레퀴엠(진혼미사곡: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이 결국엔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었다며 자조하는 반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써 내려간 레퀴엠을 듣고 이 곡은 자신의 영혼의 죽음을 추모하는 레퀴엠이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는 그 외에도 자신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기하고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옆에서 자신이 추앙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재능이 죽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차르트는 이 곡이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라 말하지만, 천만에. 그의 음악은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며 이 곡은 내 영혼의 죽음을 위한 레퀴엠이다."
결국 모차르트는 육체의 죽음에 대한 허망함과 공허함을 노래하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자신의 영혼의 죽음을 인지하고 위로받는 상황에서 허망함과 공허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