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인블랙 : 그들도 직장인이다 (1)

맨인블랙 인터내셔널 개봉 기념, 직장인 헌정사

by 말하는개

맨인블랙 4편이 개봉한다. 검은 슈트. 검은 선글라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기억삭제기까지(뉴럴라이저라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 2019년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글은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맨인블랙 전작들에 대한 헌사다. 동시에,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또 지우더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맨인블랙에 담긴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맨인블랙0.jpg 전설의 고전, 맨인블랙 / 출처 : DAUM 영화



왜 열혈은 항상 실수할까


세상에는 아주아주 억울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패턴을 보면 이러하다. 딱히 일을 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하는 편이고, 심지어 노력도 한다. 남들보다 먼저 생각을 하고, 남들이 생각만 할 때 이미 행동하고, 남들이 뒤늦게 움직일 때 이미 뛰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열혈 사원'들이다. 하지만 매번 어딘가 어긋난다. 이상하리만큼 실수가 잦고, '덤벙대고 제멋대로'라는 평가를 받는다. 맨인블랙의 주인공 제임스(윌 스미스 분) 역시 그런 사람이다.


열혈파 제임스는 깐지나게 NYPD라고 불리는 뉴욕경찰이다. 뛰어난 직감과 체력, 행동력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범죄자(혹은 외계인)를 추격한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생각지도 못했던 범죄자의 투신자살. 이로 인한 동료들의 비난뿐이다.


뭐가 문제지? 안타깝게도 제임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맨인블랙 33.jpg 누가 보면 퇴사한 줄 알겠네… 맞습니다. 욕먹고 때려치웠어요 / 출처 : Google 검색




대부분의 회사 혹은 조직은 고리타분하게 구성되어 있다. 평등한 원탁형 조직도를 가진 스타트업이나 스튜디오는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조직구조의 고리타분함은 시작이 아닌 시간이 유발한다. 시간이 지나고 조직이 성장하면 산하조직이 생겨나고 전문부서가 창설되는 건 당연지사다. 결과적으로 모든 조직은 좋든 싫든 '제안'을 '평가'한 뒤 '승인'받아 '진행'하는 구조를 지닌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열정이나 열의가 아닌, 다소 고리타분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은 협업'이다.


제임스의 실패도 여기서 기인한다. 영화에선 다소 짧게 보이지만, 그의 캐릭터는 딱 봐도 '열혈'이다. '내가 할 수 있어.' '잘할 수 있어.' 열과 성을 다해하면 뭘 하나. 감 좋고 실력 나쁘지 않은 것 알겠어.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니 안 좋은 평가가 같이 따라다닌다. 룰을 지키지 않았다느니, 단독 행동을 한 게 잘못이라느니 하는 뒷소리들.


맘 같아선 '너희들은 돕기나 했냐, 너네가 뭘 알아?'라고 쏘아붙이고 싶겠지. 하지만 일에선 열과 성보다 '정확함'이 중요한 경우가 많기에, 세상의 모든 열혈 사원 제임스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오늘도 억울함을 목 뒤로 삼킬 뿐.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현명하신 조상님들 선배님들께서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씀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래야 억울하지 않으니까.' 정도겠다.






권한이란 게, 만만한 게 아니더라


그렇게 스미스는 맨인블랙 요원 K(토미 리 존스 분)를 만나고 경찰을 때려치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러면 큰일 난다.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리어카 할아버지를 돕느라 면접장에 늦었더니 사실 그 할아버지가 회장님 어었더라... 하는 수준이란 걸.


다행히 영화적 허구성 덕분에 스미스는 이런 팩트의 벽을 가뿐히 넘어서고 에이전트 J로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쉽지 않다. 육해공 엘리트 출신들을 제치고 합격했을 때엔 '역시 다 내가 잘하는 탓인가' 싶었는데. 상사는 총 한 자루 쥐어주는 일이 없다. '조심해' '아무것도 만지지 마' '제발 가만히 있어' '이 연습용 총이 네 수준에 맞아'


'이럴 거면 왜 뽑았나?' 아니 아니, 크나큰 착각이십니다.



에이전트 J를 보라. 컴퓨터 마우스보다도 작은 쬐~깐한 총을 지급받고는 잔뜩 불만을 드러낸다. 그리다 위급상황에 그 총을 발사하는 순간. 반동으로 인해 몇 미터 뒤로 날아가버린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조직이 가진 업무 권한이란 게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일을 좀 알아갈 무렵, 알게 되지 않는가. '내가 뭘 몰라서 겁대가리가 없었구나.' 회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뭘 몰랐던 거다. 쉽게 쉽게 팔리는 마트 아이스크림에도 지난 10년간의 소비자 데이터가 들어있다. 패스트푸드 매장의 동선에도 몇 년에 걸친 과학적 설계가 담겨 있다. 그걸 사례집을 뒤적이며 '대충' 아는 것과 '제대로' 경험하고 다루는 건 천지차이다.


맨인블랙1.jpg 쬐깐한 총을 쥐어줄 땐 몰랐겠지. 저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건지. / 출처 : Daum 영화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뽑은 게 절대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열혈 신입 입장에선 권한의 무게와 위험성을 깨닫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믿어도 된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권한 등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수습용 총 한번 쐈다가 5미터 뒤로 날아가 본 사람'이다. 조그마한 프로젝트 견적 작성에도 엄청난 양의 피저빌리티 체크가 필요했고, 사소한 품의서 하나에도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닥쳐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세상의 모든 사수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신입들의 열에 아홉은 거진 '열혈'이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하지 말고, 차라리 '이거 하면 위험하다'라고 미리 좀 말해줘라.





말했듯이, 맨인블랙은 요리보고 조리 봐도 '비밀요원 영화'의 탈을 뒤집어쓴 '직장생활 고충기'다. 열혈 신입 에이전트 J가 협업의 중요성과 권한의 무게감을 배우는 거니까. 유머 코드 하나에도 열혈 신입의 실수와 실패가 녹아있으니까.


그렇다면 딱딱한 꼰대 사수 K는 어떨까? 맨인블랙이 재밌는 건, 다 잘할 것 같은 사수도 실패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K의 사연을 살펴보자.


2부에서 계속


글쓴이 : 말하는개
사진출처 : DAUM영화, Google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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