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인블랙 : 그들도 직장인이다 (2)

맨인블랙 인터내셔널 개봉 기념, 직장인 헌정사

by 말하는개

직장상사와 일 하면서 한 번은 생각해봤을 거다. '아 저 상사처럼 일하고 싶다.' 그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덕분일 수도 있고, 그의 직급이 갖는 결정권 때문일 수도 있다. 동시에 '대체 왜 저렇게 일을 하는 거야?' 싶은 경우도 있다. 저 사람이 유능하고 자시고 간에,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빡빡한 사람일 경우 말이다.


맨인블랙 에이전트 K는 둘 다인 경우다. 누구보다 일잘알이지만, 동시에 세상 빡빡한 인간이다. 말 그대로 상사의 이데아다. 재밌는 건, 그런 그도 어쩔 수 없는 '직장 실패자'라는 것.





맨인블랙44444.jpg 사수가 되는게 쉬운게 아냐 인마 / 출처 : DAUM 영화




사수도 힘들다, 요원 K의 고충.


사실 그도 처음부터 '그 대단하신 K'는 아니었다. 그도 한때는 사원이었고 대리였다. 사수도 모시고 있었다. 맨인블랙 1편의 도입부에는 K가 사수 D를 퇴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잔뼈 굵은 베테랑 요원 D였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사실 나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D가 더 이상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는 것. 결국 K는 기억을 지우는 뉴럴라이저를 사용해 D를 맨인블랙에서 퇴직시킨다.


맨인블랙4.jpg 잘난 밥맛 상사 K도, 한때는 막내였다. / 출처 : Google 검색




한때는 우리 모두 신참이었는데... 떠난 상사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 더 많은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윗사람이 되고, 신참을 교육하는 사수로 불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K는 이상하리만치 감정을 배제한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매사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듯하다. K 특유의 '심드렁한 태도'는 바퀴벌레 외계인에게 잡아 먹히는 순간까지도 침착한 모습에서 극에 달한다.


열혈 신참 J는 아마 생각했을 거다. '아니 저 상황에서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지?'


그 침착함은 사실, 세상의 모든 사수들이 품은 실패이다.



누군가의 사수가 되고 모범이 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상사도 사람인데,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후배들 앞에선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다. 그래서 점점 일에서 감정을 죽여가고, 어느 순간 즐거움을 상실한다. 일의 매너리즘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결국 K도 은퇴를 한다. 자신 역시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말하며, 신참 J에게 부탁하여 기억을 지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일에 감정을 쏟지 말고, 일상에 감정을 쏟으라고. 하지만 일도 일상의 일부다.


공과 사의 무게중심은 어렵다

감정적이어도 문제다. 하지만 감정적이지 않아도 병이 든다.

K 역시 병든 상사였다.



맨인블랙55.jpg 이렇게나 웃을 줄 아는 양반이었다니 / 출처 : Daum 영화







맨인블랙 속 직장인 공감코드 : 뉴럴라이저


사수와 부사수 이야기 말고도 맨인블랙에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요소들이 몇 가지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기억삭제기(뉴럴라이저)다. 단지 '이불 킥'할만한 기억을 삭제하고 새로운 기억을 덮어쓰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맨인블랙에서 뉴럴라이저는 더 큰 역할을 한다. 일종의 '보도자료용 데이터' 만들기이다.


예를 들면 외계인을 목격한 시민들의 기억을 삭제하고 '지하철 공사 문제로 역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원인은 조사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참신한 듯하면서, 어딘가 익숙한 내용이다.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대외비 유출 상황에 대응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뉴럴라이저는 정보사회에서 기업과 직장인의 대외비 보안유지 실패를 함축해낸 블랙코미디 소재이기도 하다.


dfd.jpg 저희 회사도 이거 10개만 구비하시죠… 수습 좀 하게 / 출처 : Google 검색



요원 K와 J는 업무를 처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보도자료용 데이터'를 내보냈을까? 비밀요원이니까,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랬을 테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다. '아... 이건 기억을 바꾸지 않고는 답이 없겠는데?' 싶은 일들이 회사, 조직, 현대사회에선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옳은 방향으로의 대처' 겠다. 하지만 동시에 '안심시킬 수 있는 상황 정리' 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시간을 끌어주어야, 그 사이 대응을 할 수 있는 게 조직의 위기대응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적절히 온화한 브리핑' 작성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 브리핑이 사태를 은밀히 덮기 위함이라면 응당 처벌받아야 하겠지.


하지만 많은 경우, 사건의 은폐보다는 대응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대처인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외에도 온갖 장비가 있는 차량부터, 시민들 모르게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지원센터까지. 비밀요원을 콘셉트로 설계된 재미요소들에는 모두 현대 직장인들의 '위기 대응 매뉴얼'이 녹아있다. Plan B부터 C, D, E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대비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 모두 실패투성이의 맨인블랙이다.

수습이 일상다반사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야.


맨이늡ㄹ랙 66.jpg 잘해서 준 장비가 아니라. 수습하라고 준 장비다… 직장이 다 그런 거야. / 출처 : DAUM 영화





마치며...


열혈 신참 J의 불만. 사수 K 나름의 고충. 위기 대응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번쩍이는 기억삭제기까지. 맨인블랙은 다시 생각해도 직장인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다. 물론, 이번에 개봉할 맨인블랙에서는 이런 '수습하고 다니는 직장인의 애환'보다 '비밀요원의 짜릿함'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연배우들부터가 빠방 한 히어로물 출신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2019년 지금 다시 한번, 오래된 고전인 맨인블랙 1편을 곱씹어본다. 맨인블랙에 대한 헌사이자, 오늘도 수습하기 바쁜 직장인을 위한 헌사로서.


완결.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바칩니다.


글쓴이 : 말하는개
사진출처 : DAUM 영화, Google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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