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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Mar 28. 2020

#A6. 1990년대, 그 시절 골목상점들

목욕탕, 필름 현상소, 구둣방, 미장원, 분식점

문명이 발전하고 도시화하면서 우리는 교통, 주택, 환경 등 다양한 부분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도 많다. 안양1동 진흥아파트는 문명의 편의로 지어졌고, 30년이 흐르니 다시 문명의 편의를 위해 사라진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우리집이 없어진다고 하니, 이제야 사라진 골목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헤아려본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안양1동 진흥아파트 주변은 고층아파트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는 동네가 아니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이곳에 살았기에 90년대 초 그때 그 시절의 동네 풍경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눈을 감고, 20여 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해본다.

안양역은 앞에는 한국제지 안양공장이 있었고, 안양역은 2층 구조의 작은 역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플랫폼에만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비가 세차게 오면 주변으로 물이 튀었다. 심지어 나무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릴 때 아버지 퇴근길을 마중하러 저녁에 엄마 손을 잡고 갔었다.

진흥아파트 정문 앞의 뜨란채 아파트는 원래 빌라와 골목상점, 노점이 안양역을 따라 이어져 있던 마을이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곳곳에 목욕탕, 필름현상소, 미용실, 분식집, 문구점, 구둣방 등이 있었고, 감자 핫도그와 호떡 등을 파는 노점도 있었다.

진흥아파트 후문 쪽 메가트리아 아파트도 재개발 전에는 덕천마을이었다. 이곳은 개발이 늦어 2010년대 초반까지도 자주 가던 빵집, 책방이 있던 곳이었다. 이렇게 진흥아파트 주변에는 다양한 골목상점들이 있었다. 기억나는 대로 소개해보려 한다.


1988년, 안양1동 진흥아파트(북쪽)와  빌라로 구성된 현재 뜨란채 아파트 구역(남쪽)


2019년, 안양1동 진흥아파트(남쪽)와 현재 뜨란채 아파트(북쪽))

어렸을 때 자주 가던 골목은 정문 쪽이었다. 목욕탕, 필름 현상소, 구둣방, 미장원,  분식점 등 다양한 상점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요즘은 잘 안 쓰는 단어들도 있다.

당시 <이정훈 미용실>이 그렇게 잘한다고 소문났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마실이었다. 따라올 경쟁자가 없는 원탑 미용실이었는데 골목이 사라지면서 안양일번가로 이사했다고 들었다.

<목욕탕>은 엄마랑 정말 자주 갔었다. 나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첨벙첨벙 놀았었고, 목욕을 마치면 항상 마지막에 흰 우유를 물이랑 섞어서 몸에 끼얹고 나왔다. 괜히 보들보들해지는 기분이랄까? 엄마가 잊고 안 해주면 졸라서라도 뿌리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목욕 후 나른해진 상태에서 마시는 '바나나우유' 그것이 최고였다.

<필름 현상소>는 골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찍고 파일로 저장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모든 추억은 필름 카메라로 찍고 인화해서 앨범에 보관했다. 사진관에 들어서면 계산대 한쪽에 현상된 필름과 인화된 사진이 담긴 흰 봉투가 빼곡히 쌓여있었다. 우리집에도 필름 사진으로 채운 두꺼운 앨범이 4개나 있다. 가끔 펼쳐보면 재밌다. 나와 동생의 어린시절부터 엄마 아빠의 청춘시절까지 일대기가 채워져 있다. 앨범 속 마지막 필름 사진에 찍힌 년도가 '00'이니 2000년까지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하셨던 거 같다. 요즘 필름 카메라가 다시 떠오르면서, 집에 묵혀있던 추억의 '골드스타(GoldStar)'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찾았다. 골동품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래 봤자 사용 안한지 20년도 안된건데...

아! 골목길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1999년도 한 여름. 푹푹 찌는 여름.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그것도 밤에! 90년대 우리 아파트는 정전이 잦았었다. 여하튼, 날도 더운데 집은 더 덥고 저녁도 못하니, 엄마가 동생이랑 나를 골목길에 있는 분식집에 데리고 갔다. 당시만 해도 엄마가 저녁에 외식을! 그것도 떡볶이를! 사주신 건 정말 특별한 일이어서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여름밤의 산들한 바람을 느끼며 안양천길을 걸었었다. 늦게 퇴근한 아버지한테 자랑도 했었다. '엄마가 떡볶이를 사줬어!'라고.

1988년, 진흥아파트와 안양천 전경
2020년 진흥아파트와 안양천 전경

2000년을 기점으로  진흥아파트 주변이 빠르게 변했다. 빌라와 골목상점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공장은 이전했고, 악취를 풍기던 안양천은 생활하수 분리와 오염수 관리로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안양천은 푸르른  나무, 계절마다 피는 색색의 꽃과 동물들도 등장하는 시민들의 쉼터가 되었다. 이 글을 발행한 날(20.3.28)의 안양천의 풍경을 올린다. 개나리, 벚꽃, 연두색 풀잎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그 골목의 미장원, 목욕탕, 필름 현상소, 집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매일 얼굴 보며 인사하던 이웃들과 헤어지며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을까.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삶에 적응하겠지만, 내가 울고 웃었던 추억의 공간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생각만 해도 아쉽다. 시대가 빨리 변할수록 기억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진 출처 : 항공사진- 안양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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