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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형님 Nov 23. 2024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오토라는 남자와 되새김질, 그리고 방귀

오토라는 남자를 봤다.

오토라는 남자 포스터

오토라는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이며, 톰행크스가 주인공인 오토역을 맡았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 텐데, 이 영화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꽤 심플하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생을 끊고자 하는 오토라는 사람을 일련의 과정으로 이웃들이 치유시켜 주고,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내용이다. 중간중간에 자살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다고 느낀 것 외에는 내용은 너무나 따뜻한 해피앤딩이다.


영화를 보며 아내를 잃고 슬픔과 공허함을 느끼는 노년의 남자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톰 행크스의 연기에 눈시울이 몇 차례 붉어지기도 했더랬다. 어쩌면 지능이 멀쩡한 포레스트 검프가 그의 사랑 제니를 노년에 잃었다면 오토와 같은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오토와 포레스트 검프가 살았던 시대도 얼추 겹치니 아주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다. 아무래도 배우가 겹치다 보니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오토라는 남자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타인을 진정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보여주기에 마음이 동한다. 1964년에 만들어진 25센트 동전, 쉐보레 자동차, 나이아가라 폭포 기념품 등은 각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매개체이다. 가령, 오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에게 25센트는 2024년 11월 23일 기준 351.38원에 불과하지만 (환율이 더럽게 많이 올랐다), 1964년에 주조된 이 25센트짜리 동전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첫 만남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기에 오토 할아버지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전이다.

2024년 11월 23일 자 환율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내 주머니, 혹은 책상 위, 침대 밑에 있는 여러 물건들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문장을 쓰고 침대 밑을 확인해 보니, 방전된 배터리, 민트의 털과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쪼록, 급히 정의한 탓에 다소 투박할지도 모르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타인의 맥락을 읽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대가 인간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그 사람이 했던 행동의 기저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오토라는 남자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된다. 대충 아래와 같다.


1. 오토가 기행을 한다. (자살 시도 혹은 폭행 등)

2. 이웃이나 공권력, 또는 우연이 그의 행동을 막는다.

3. 오토가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4. 이웃 (보통 마리셀)이 공유된 맥락을 읽고 공감해 준다.

5. 오토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고 영화의 끝자락에서 오토는 비로소 마음을 충분히 열게 된다. 덕분에 처음에는 삭막했던 작은 마을이 따뜻해지고, 보기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어느정도 승화시킨 오토의 모습도 보기 너무 좋다. (감히 극복했다고 말은 못하겠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되새김질과 비슷한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녔던 초등학교의 동물탐구왕 출신으로서 설명하자면, 되새김질이란 소가 한번 삼킨 여물을 계속 씹는 행위를 뜻한다. 소는 위가 4개나 있어 소화과정이 사람보다 다소 복잡하다. 효율적이진 않아 보이지만 아무래도 생풀을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런 진화과정이 필요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억하심정이나 응어리와 같은 맥락도 생풀과 같은 거라는 생각이다. 거칠고 빳빳하며 좀처럼 소화시키기 힘들다. 타인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정보라면 꿀떡 삼키고 말겠지만, 이해는 다른 차원이다. 다소 귀찮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곱씹고 또 씹어야 한다. 나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쉬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적잖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일이다.


서원국 기자, "가축 '방귀세'도입으로 본 '메탄가스', 소년한국일보, 2023.09.06., https://shorturl.at/0Ztam


되새김질과 이해는 그 결과물까지 비슷하다. 소는 어마어마한 양의 방귀를 뀐다. 전 세계 메탄가스의 25%나 차지하며, 뉴질랜드는 아예 방귀세를 도입할 정도다. 그만큼 소가 배출하는 방귀는 지구 온난화에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이해도 이와 비슷하다. 그 과정은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타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될 방귀는 오토라는 남자에서 그랬듯 공동체를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든다. 물리적으로는 지구가 더 이상 따뜻해지면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차가운 곳이 아닌가. 그렇기에 더 많은 이해(그리고 방귀)가 필요하다. 뿡뿡뿡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중략)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_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갈등과 몰이해가 너무 만연한 사회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등, 당장 네이버 뉴스 댓글창만 봐도 내용과는 상관없이 기승전 역대대통령 혹은 요즘 것들, 예전 것들에 대한 욕이 난무하다. 숨이 턱 막힌다. 어쩌다가 제기동에 살고 있는 ‘요즘 것들’로서, 몇몇 예전 분들의 행위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넘처나는 억하심정, 집단적인 몰이해에 대한 기저에는 타인에 대한 복잡성을 이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토라는 남자’라는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영화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 내가 타인에게 저질렀던 몰이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서 오만하게도 감히 타인을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쌀인지 보리인지 두고 봐야 아는 것을 섣불리 속단하기도 했더랬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적었듯, 나의 복잡한 응어리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타인의 응어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나의 성의 없고 어설픈 되새김질 때문에 놓친 인연과 기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내 마음이 변비가 걸린 듯 묵직해진다.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만난 모든 이들에게 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하관을 지녔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서 나의 맥락을 공유하고, 부지런히 그들의 맥락을 곱씹어야겠다. 그리고 방귀를 뀌겠다. 설령 그 방귀가 버스가 지나갈 때 몰래 뀌는 방귀처럼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참 시시할지라도 말이다. 뿡뿡뿡


나의 방귀가 사회를 따듯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지 모르겠지만, 오토라는 남자를 본 사람들은 많을 테니 (당장 국내 관객수만 3.8만 명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울림을 느낀 사람들도 방귀든, 뭐든 뀐다면 세상은 보다 더 따뜻한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콧방구를 뀐다면 도로묵이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마리셀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라면, 필시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세상은 보다 더 따뜻해져야한다. (불행중 다행이도, 미디어나 SNS에서 보이는 세상보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다행히 조금은 더 따뜻한 곳이었다.)


언제 또 글을 방귀 소리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뒤죽박죽 적은 이 글을 방귀 소리로 끝맺겠다. 곧 다가올 2024년의 겨울은 보다 더 따뜻하기를.


뿡뿡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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