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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큰기린 Jun 11. 2020

망한 회사에는 이유가 있다.

팬택은 왜 망했을까?

서론


얼마 전 한 유명 IT 유튜버를 통해 팬택이 출시하려다가 드랍한 "브루클린"이 공개된 바 있다. 개발용답게 폰 후면에는 전파 계측용 단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전반적인 SW 상태도 그렇게 좋지 못했다. 스냅드래곤 808과 3GB RAM으로 이루어진 팬택의 브루클린은 디자인 자체로는 예뻤지만, 마냥 출시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살 것 같지는 않았다.


팬택의 출시 예정이었거나 미출시된 스마트폰들을 주제로 커뮤니티 등에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팬택의 마지막 스마트폰인 아임백의 대화면 버전인 'IM-110', 베가 시크릿노트의 후속작인 '베가 시크릿노트2', 재난망 테스트용도로 쓰인 'IM-A940K', 그리고 '브루클린(IM-A777)' 등, 팬택의 스마트폰을 돌아보거나 소유하면서 팬택의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팬택은 망했다.


들어가기 전에

특정 제조사를 비난 또는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팬택 스마트폰에 대한 추억 회상 행위를 비판, 비난 또는 비하할 의도 또한 전혀 없습니다. 개인의 의견이므로 참고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베가의 전신, SK텔레텍과 SKY


팬택은 1991년 설립되었으며, 이후 SK텔레텍과 팬택앤큐리텔을 인수합병하여 SKY, 베가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한다. 2006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긴 했지만,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나서는 꽤 괜찮은 실적들을 보여주었다. 이 때 내놓은 피쳐폰들은 대기업인 삼성, LG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으며, 네온사인, 골드루키, WHOOO, 듀퐁, 큐브릭, 오마주 등 대작 피쳐폰을 다수 내놨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조금 삐걱댔지만, 한 때 LG전자를 제치고 대한민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1위는 당연히 삼성전자).

팬택의 밀리언셀러이자 문제작, 베가 레이서

하지만 역시나, 한창 잘 나갈 때가 문제다. 팬택은 '베가 레이서'를 출시해 1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각종 불량과 사후지원 등이 큰 문제가 되어 '베레기'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베가를 왜 사냐'는 등, 안 좋은 여론이 돌았고, 이는 LTE 시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팬택은 베가 LTE의 바리에이션인 베가 LTE M, 베가 LTE EX 등을 내며 속칭 '우려먹기'에 나섰고, 여론은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베가 레이서 2, 베가 S5 등의 스마트폰을 내놨지만 역시나 흥행에 실패했고, 베가 R3, 베가 아이언 등을 내놨지만, 베가 아이언2 출시 당시 단통법과 통신사 영업정지의 콜라보로 법정관리에 돌입한다. 쏠리드 컨소시엄 덕분에 법정관리를 14개월 만에 탈출했지만, 아임백의 흥행 실패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팬택은 다수 유저들에게 추억으로 남을까?


필자는 베가 R3, 베가 아이언, 베가 넘버6, 베가 아이언2 등 다수의 팬택 휴대폰을 사용했다. 이 휴대폰들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다면, 답은 '글쎄'일 것이다. 지금의 LG를 상상하듯, 그 때 팬택 스마트폰은 시궁창이었다. 베가 R3의 경우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면 LCD 멍이 생겼고, 베가 넘버6부터는 오래 사용하면 세로줄 현상이 생겼다. 베가 아이언과 베가 아이언2는 유일하게 팬택 기기 중에서 수작이라고 평가하지만, 세세한 부분을 따지면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스마트폰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 사용자단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베가' 하면 '아, 그 망한 회사?'나 '아, 나 그거 다신 안씀'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왜 그랬을까? 베가 레이서의 경우 툭하면 재부팅되거나, "애플리케이션 오류로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거나,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 등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문제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오래 사용할 수 없는 폰이라는 소리다.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2년을 바라보는 제품이고 '휴대 가능한 소형 컴퓨터'라는 특수성 때문에 충격에 강해야 한다. 그러나 팬택은 '설탕 메인보드' 등 내구성 문제가 있었고, 이를 제쳐두더라도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에서 충돌이 자주 있었다.


당장 베가 넘버6를 소유중인 본인에게도 팬택은 '정말로 망할 것 같은 회사'였다. 출시 이후 쭉 사후지원과 완성도로 엄청난 비판을 많이 받았고, 2013년 베가 아이언으로 날개를 다는 듯 했으나 결국엔 기존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출시된 아임백도 마찬가지였다. 휠 키는 자주 고장났으며, '장난감'같은 이미지와 덧붙여 후면의 내구성이 처참했고, 초기에는 터치감 문제와 후기에는 메인보드 오류로 인한 디스플레이 깨짐 현상까지, 기존의 팬택 모습을 완벽하게 다시 답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임백은 손익분기점인 30만 대에 많이 못 미치는 18만 대 판매에 그쳤고, 결국 팬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유 없는 부도는 없다.


팬택은 사후지원을 정말로 못했다. 팬택 서비스센터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불친절했으며, 툭하면 메인보드가 나가고, 심지어 사용자의 부주의가 아닌데도 수리비를 요구하는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OS 업그레이드가 1회에 그쳤고, 새 기기가 출시되면 기존 기기는 펌웨어 업데이트가 뜸해졌다.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사용에 문제가 생길 만큼 최적화도 많이 부족했다. 이를 후일에 개선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러지 않았다. 철저한 사후지원을 하지 못했고, 결국 유저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으며, "내가 돌아왔다"는 의미의 아임백도 당연히 반신반의하며 구입을 망설인 소비자들이 많았다. 팬택의 부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며, 회사가 기적적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 뻔했다.


팬택은 소비자가 외면한 게 아니다. 팬택이 소비자로 하여금 외면하게 한 것이다. 당시로선 스마트폰 회사 중 디자인으로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출시만 하면 장땡인 듯, 사후지원 측면에서는 많이 뒤처졌다. 동시대의 삼성, LG가 사후지원을 다져 나갔던 반면, 팬택은 신제품 출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의 LG처럼 피쳐폰 시절의 모습 그대로 운영했다. 결과는 당연히 뻔하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팬택은 한 때 벤처기업의 신화로 불렸던 적이 있다. 파산하기 전에는 대기업 수준의 자본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베가'의 브랜드 자체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었고, 휴대폰 제조회사를 논하면 반드시 나오는 3개의 기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국 처참한 사후지원 및 신뢰도 하락으로 소비자의 구매 의욕이 떨어졌고, LG전자와는 달리 스마트폰 하나로만 먹고살던 팬택은 통신사 영업정지와 팬택에 불리한 정부의 정책으로 회사가 사라졌다.


하나의 회사가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판단은 냉정해야 한다. 팬택은 경영상의 실수로 인해 망했으며, 회사에서 사후지원에 신경을 썼다면 통신사 영업정지와 정부의 불리한 정책에도 스마트폰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팬택의 팬은 팬택이 쓰러진 다음에야 생겼으며, 그조차도 스마트폰들을 보며 '팬택이 이랬었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


삼성, LG, 애플 3개의 회사가 대한민국 시장을 주름잡고 있고, 삼성전자는 70%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나머지는 LG와 애플이 비슷하게 자리잡고 있고, Others는 단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팬택은 지루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유니크하게 자리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였으며, 2012년 '베가 R3'를 시작으로 괜찮은 스마트폰들을 만들어냈다. 팬택이 지금도 살아있으면 LG전자와 서로 경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팬택 최후의 명작, 베가 아이언 2

그래서 아쉽다. 스마트폰의 디자인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팬택의 작품이었으며, '베가 아이언'이나 '베가 아이언 2' 등 절연띠가 없는 깔끔한 메탈 테두리가 있는 스마트폰도 이제는 없다. 독특한 디자인보다는 '무난함'을 즐기는 스마트폰 시장에 한 줄기 빛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팬택은 '팬텍'으로 사명을 바꿨지만, 'SKY'이름은 '착한텔레콤'과, '팬택'이라는 이름은 '(주)투넘버'라는 회사와 상표권을 계약한 상태다. 혁신의 팬택은 사라지고, 상표로만 이름이 남았다. 가면 갈수록 본래의 팬택과 SKY의 이름이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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