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며칠 전 아내와 같이 운동을 하고 한가로이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밀떡볶이 1500원'이라는 현수막이 붙은 분식집을 보곤 웬 횡재냐 싶어 얼른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문을 하니까 2500원이라는 겁니다. 밖의 현수막은 행사기간에 붙였던 거라고... 아내랑 같이 자리까지 잡아놓고는 다시 일어나 나가기도 그렇고 그냥 시켜 먹고 나왔는데 설마 이걸 노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 또 그 앞을 지나는데 그 현수막은 아직도 붙어 있습니다.
오늘은 혼자 길을 가다가 너무도 먹음직한 냉우동 현수막 사진에 마음을 뺏겨 들어와 주문을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바짝 마른 냉동 새우 한 마리 얹어서 같은 음식이라고 나옵니다. 비교 사진을 찍거나 항의할 생각 없이 한참을 먹다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거짓에 관대해졌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감각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만약 식당 주인을 불러서 한마디 한다는 상상을 하니까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사는걸 트집 잡는 내가 진상 손님처럼 비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의 거짓말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봤습니다. 이 사회는 윗물부터 아래까지 한 두 겹의 거짓은 관습처럼 벗기고 봐야 하는 것이 삶의 지혜로 자리 잡아 있는 걸까요?
나라에서 보육비 부담을 줄여준다고 어린이집 보조금을 책정해 줬을 때 그때부터 떡하니 무슨 교재비라고 매월 돈 10만 원은 우습지도 않게 더 청구해서 결국 어린이집 보육비로 나가는 돈이 별로 줄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 말도 안 되는 알량한 불량품을 애 손에 들려 보내 집에 쓰레기만 쌓인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따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아내는 그랬다가 애한테 해가 오면 어쩌냐고 그냥 참으라고 하더군요. 뭐 다른 대안이 있어야 때려치우고 애를 데리고 나오든지 말든지 하지! 어렵게 들어간 어린이 집인데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는 그 얘길 듣는 순간 깡패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우리나라 정치가 너무 썩어서 해외 정치인을 수입하자는 우스겠소리에 '외계인은 절대로 지구에 오지 않는다 너무 오염됐기에'라는 풍자를 인용했었죠. 윗물이 그렇게 썩어있는데 아랫물이 멀쩡할리가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일상에서 확인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