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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pr 25. 2020

이제는 정말 책을 읽어야겠다.



아이를 낳고서 전업주부가 되어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 하면서 나는 쌓인 것이 많았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싶었고, 그 누군가에게 '그동안 수고했어~' 라며 다독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스마트폰 노트에 글을 정리해서 남편에게 먼저 보여줬더니,

남편이 조금 읽다 말고 내게 다시 스마트폰을 건네며 말했다.

"안 읽혀... '나 속상해요~' 라며 일기처럼 쓴 글을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 공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해."


냉정한 남편의 말이 야속했지만, 더욱 속상한 건 나도 그의 말이 맞는다고 느껴서였다.

오래전 내가 쓴 어떤 일기는 나조차 읽기 힘들 정도로 주절주절했다.

올해는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보자고 계획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 누군가에게도 읽힐 수 있는 글이기를 바랐다.


남편의 말을 듣고서 제일 먼저 스스로에게 드는 물음은, '... 아이를 낳고서 나는 책을 읽었던가?' 였다.

남에게 자신할 만큼 많은 육아서를 보았지만, 미처 나를 적어 남길만한 책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어쭙잖은 글이라도 쓸려면, 책을 읽어야겠어!'


다행히 일러스트레이터인 남편이 일이 끝나고 출판사에서 선물 받은 책이 집에 좀 있어서,

전부터 눈여겨봤던 책 한 권을 가족이 잠든 새벽에 몰래 나와서 꺼내어 보았는데,

나와는 다르지만, 다를 바 없는 육아의 이야기가 뽀송하게 느껴졌다.


요즘 28개월 된 우솔을 보면, 예솔이 지금의 우솔만 할 때 아기 우솔도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예솔의 성장을 속속들이 지켜보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책을 보면서 우솔을 낳기 전에 보석처럼 빛나던 예솔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때의 나와 예솔이 뭉글뭉글 떠올랐다.


이렇게 다른 이의 뽀송한 육아를 볼 때면 나는 남편이 그려낸 책이 떠오르는데,

우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따뜻하게 그려내줘서,

보통의 나날 속 끝나지 않는 육아에 문득 지치는 순간이 올 때면 다시 마음을 뽀송하게 채워줌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도 아이들은 보석보다 밝게 빛나는데, 여전히 나는 힘들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반짝임을 보지 못한다.

지나가면 잊히는 사랑을 어쭙잖게라도 기록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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