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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May 05. 2020

2019. 9 월간 에세이

나름일







생각이 뭉글뭉글 떠오를 때마다 스마트폰 노트에 적어둔 글이 넘쳐나는데,

걱정 많아진 성격 탓에 밖으로 다 올려 적지 않는다.



작년 5월쯤에는 아이를 낳고서는 처음으로 에세이 쓰는 일을 했었는데,

서툰 내 글이 왜 이리 마음에 걸리는지... 나도 모르게 블로그에 기록하는 일을 미뤄왔었다.


원래는 남편의 가족 그림을 보고, 그의 그림에 어울리는 에세이를 써달라고 의뢰 온 것이었는데,

그 당시 바쁜 남편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써보겠다고 했었다.

예전부터 나는 블로그나 인스타에 글을 자주 올려서, 그렇게 일기 쓰듯이 편하게 쓰면 될 것이라고 착각했었는데... 막상 글을 써보니 정해진 분량에 맞춰서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내가 써야 하는 글은 내 개인 블로그에 누가 봐도 상관없는 듯이 쓰던 일기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일로 써야 하는 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일이 들어왔던 2019년 5월에는 우리 가족이 '영암에서 살아보기'를 하고 있던 때여서, 아이들이 잠든 시간마다 틈틈이 월출산이 보이는 고요한 한옥 숙소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영암으로 떠나오기 전까지 나는 참 많이도 쌓여있었다.

아이들은 차라리 아프지 않은 날을 손꼽아보는 것이 쉬울 정도로 자주 아팠고, 남편과 나는 대화마다 날카로웠다.

하지만 영암으로 떠나오면서 늘 갇혀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남편과 서로를 보며 대화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남편이 그렸던 가족 그림을 꺼내어봤더니, 삶에 지쳐서 잊고 있었던 우리의 처음이 생각났다.

덕분에 영암에 있었던 2주 동안 그나마 서툴게 글을 써보며, 그동안 응어리진 마음도 풀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감날까지 서툰 글을 수없이 읽으며 벌벌 떨며 수정해서 넘겼더니,

역시 조금 다듬어도 되냐는 물음이 왔고, 내 글의 부족함을 알기에 흔쾌히 '괜찮다...'고 답했지만,

막상 잡지를 받아보니 내 늘어지는 글을 줄여 대신 넣어주신 세련된 단어가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이 느껴져서 조금 우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 내 통장에 입금된 돈에 금세 행복해졌고, 좀 섭섭하게도 그 돈을 모두 식비로 쓰게 되면서 매일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남편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었다.



마침표를 찍고 시간이 흘러서 다시 기록하기 위해서 주저주저 잡지를 꺼내어보니,

또 스스로도 뭐라고 쓴 지 모르는 주절 주절거린 글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시기적절했던 신기하고, 감사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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