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Oct 02. 2022

이번 주 글쓰기 모임의 주제는 '술'



 "다음 주 주제는 뭐로 할까요? 오늘 모임 때 이야기 나왔던 '나에게 쓰는 편지'로 할까요? 아니면 '시댁'을 주제로 할까요?"

 "저는 이미 저에게 편지를 써서 다른 주제로 했으면 싶어요."

 "결혼 안 하신 분도 있어서 시댁 이야기도 좀 그런 거 같아요. 전에 '술'을 주제로 제안하셔서 도서관에서 관련 에세이를 빌려봤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럼 다음 주 주제는 '술'로 합시다!"


 이리하여 이번 주 글쓰기 모임의 주제는 '술'이 되었다. (짝짝짝!) 개인적으로 추석부터 머리 아픈 일들이 연속돼서 점차 무거워지는 글이 영 찜찜했었다. 이번에는 가볍고 유쾌한 글을 쓰길 바랐는데 내심 잘되었다 싶었다. 우선 도서관에 반납했던 '구스미 마사유키' 작가님의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 책을 다시 빌렸다. '이 사람 뭐야? 취했나?' 처음에는 술 주정쟁이가 쓴 거 같아 (이 표현은 좀 심했나?) 얼굴 잔뜩 찌푸리며 읽었는데 이것저것 재느냐 딱딱한 내 글과 다르게 재밌고 편하게 읽혀서 나중에는 희한하게 손뼉까지 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술이 마구마구 땡겨서 주말에 마시려 냉장고 깊이 넣어둔 맥주 한 캔을 꺼내고야 마는 단점도 있었지만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 피식피식 웃다 보니 어느새 술술 다 읽힌 글. 그러기 위해 먼저 한 잔 마시고 주정하는 글을 써볼까도 했지만 요즈음 답답하다는 핑계로 자주 마셨더니 아주 질려버렸다. 어쩔 수 없이 취기의 기억을 더듬어 또릿또릿한 맨정신에 음주를 적는다.


 나는 혼술을 좋아한다. 전에도 썼지만, 남편까지 잠들어 거실에는 나 혼자일 밤. (Yes!) 차곡차곡 부지런히 쌓아둔 일상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씻겨내려 냉장고 문을 열어 딱 마시기 좋은 술 한 병을 꺼낸다. 즐기는 주종은 '순하리 레몬진', '별빛 청하 스파클링', '테라(맥주)'인데 냉장고에 그 셋 중 아무거나 있다면 상관없다! 약 4년 동안 두 아이 임신과 모유 수유로 술은 입술에도 안대서 한때는 임신 전에 샀던 '하이트 EXTRA COLD'밖에 몰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 진열대에 갑자기 다양해진 새로운 술들을 보고 궁금해져 하나씩 끌리는 대로 맛보고서는 지금의 취향에 맞는 술을 찾게 되었다. 안주는 좋아하는 술이 워낙 달고 혼자 가볍게 마시는 거라 과자 한 봉지면 충분! 그동안 안주로 과자도 다양하게 사봤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과자든 바비큐 맛이면 괜찮다. 최근에는 '쫄병 스낵'으로 정착했는데 그것도 항상 애매하게 남아서 집게로 밀봉해 냉장고에 저장한다. (이렇게 적으니 너무 대충 술을 마시는 모양새다.) 


 자! 아무튼 술과 안주를 뭐라도 꺼내왔다면 이제 TV를 켠다. 가족이 깨면 혼자 노는 유일한 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테니 자막만 보게 되더라도 최대한 볼륨을 줄인다. "똑똘또로로록…." 아무리 술 차림새가 볼품없더라도 딴에는 유리컵에 따라 마시는 걸 여러모로 좋아해서 찰랑찰랑 잔 끝에 넘칠 듯 말듯 꾹꾹 옮겨 담는다. 꿀꺽꿀꺽 오늘은 술을 마시려 늦은 밤에 깨어있으니 일단 한잔 들이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낮에는 아이들이 싫어해서 틀 수 없었던 뉴스를 본다. '아이고 안타까워라.' 어울리지 않게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세상 소식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해줄 달콤한 술 한 모금을 삼킨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면 어느새 고단함을 놓고 바쁘게 돌아가는 화면 앞에 그저 멍하니 있게 된다. 이리 혼자서 멍하게 있어도 괜찮을 나! 어쩌면 나는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해서 혼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술에 대해 나열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어쨌든 나이 들수록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영 맥을 못 추겠다.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 남편과 오래된 광고 노래를 부르며 매주 부질없는 절주를 약속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