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열넷] 우연한 것에 대하여

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by Molly

나는 대개 필연을 믿는 편이었다.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본질적으로 예측 가능성과 재현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가설을 세우고, 변수를 통제하고, 수없이 반복해 실험을 수행한다. 그 모든 과정은 ‘우연’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다. 우연은 흔히 오류로 분류되고, 잡음으로 간주된다. 결과를 흐리고, 이론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껏 가장 깊은 통찰을 얻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 기저에는 항상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과학이란, 필연을 향한 길을 걸으면서도 우연의 돌부리에 끊임없이 걸려 넘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고. 아니, 넘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본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연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확률, 통계, 노이즈—이 단어들은 모두 우연을 설명하려는 우리의 언어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연을 완전히 길들이지 못한다. 무작위성(randomness)이라는 개념조차, 우리가 정의한 규칙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연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우연은 우리의 계획을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우연은 우리의 지식 외연을 확장시킨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무심코 덮어놓은 배양 접시에서 시작됐다. 전자레인지도, 우주배경복사도, 심지어 어떤 수학적 통찰조차 예기치 못한 실수에서 태어났다. 이쯤 되면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우연을 배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한 통제를 욕망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느끼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나는 이제 우연을 ‘통제 불능의 적’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가능성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의 얼굴을 보여준다. 결국 우연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다. 내가 연구 중에 발견한 이상치를 삭제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혹시나’ 하는 준비가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언젠가 과학이 완벽한 예측의 학문이 된다면, 그날 우리는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필연이라면, 탐구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세계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연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과학을 살아 있게 만드는 마지막 불확실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