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열다섯] 느리거나 빠른 것에 대하여

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by Molly

과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 씨름하는 일이다. 현미경 위의 세포는 느리게 분열하고, 실험 동물은 계절을 따라 자란다. 데이터는 서버를 가득 채우며 빠른 속도로 쌓이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은 대개 사람의 속도로 걸어야 한다.


과학은 얼마나 빨라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속도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더 빨리 실험을 끝내고, 더 빨리 논문을 쓰고, 더 빨리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것. 하지만 과학이란 ‘빨리’보다 ‘올바르게’라는 두 글자 위에서만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속도는 우리를 시험한다. 빠름을 향한 압박은 데드라인의 이름으로, 경쟁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나는 가끔 그런 속도에 휘둘리면서 내 질문이 변질되는 것을 느꼈다. 본래의 호기심보다는 ‘지금 이 트렌드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이 내 손을 움직이게 한다. 그럴 때 쓰는 문장은 늘 얄팍하다. 깊이가 없다.


하지만 느림은 언제나 미덕인가? 그렇지도 않다. 느림을 빌미로 게으름을 합리화할 수도 있다. 내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자주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신중하니까.”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신중함이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인정한다. 속도의 윤리는 결국 나 자신에게 묻는 일이다.


현 시대의 과학은 가속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논문을 요약하고, 자동화된 실험 장비가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샘플을 처리한다. 우리는 마치 끝없는 고속도로 위에 올라탄 듯하다. 멈추면 도태된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이 속도가 빼앗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느낀 것은, 데이터가 늘어난다고 해서 통찰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분석은 단 하루 만에 끝났지만, 그 결과를 이해하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어떤 실험은 일주일이면 끝났지만, 그 결과가 품고 있는 함의를 풀어내는 데는 몇 계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느림은 때로, 그 자체로 방법이다.


나는 요즘 속도를 다시 정의하려 한다. 빨리 간다는 것과 제대로 간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때로는 뒤처짐을 감수해야 한다. 경쟁자보다 늦게 결과를 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느림이 나에게 질문의 본질을 붙들게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한 연결을 보게 한다면, 그 느림은 실패가 아니다.


속도의 윤리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논문을 빨리 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내가 시간의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 나는 어디에 가속도를 줄까? 어디에서 브레이크를 밟을까? 아마도 나는 탐구의 시작에선 천천히 걷고, 검증의 과정에선 더 천천히 머물 것이다. 그리고 확신이 선 후에는, 망설임 없이 달릴 것이다.